겨울에는 '튤립 키우기'

이제, 겨울이 오면 튤립 구근을 사러 가야지.

by 유우

오늘은 활짝 핀 튤립을 바라보며 겨울을 함께한 튤립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따로 일지는 적어두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두었다.


1월 중순, 혜정이의 추천으로 구근을 사보는 첫 경험을 하며 '튤립 키우기'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식물과 꽃을 키우는 시간에 관심 없던 내가 처음으로 해내보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한 노란 튤립을 낳는 구근이다. 조그맣고 귀여운 양파처럼 보이는 것을 구근이라고 한다는데, '여기서 잎이 자라고 꽃이 핀다고? 신비롭고 놀라운 진실을 꼭 두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겠다.'의 마음으로 시작된 나만의 프로젝트.

한 봉지, 다섯 알을 한 번에 사야 해서 처음 시도하는 내게는 부담스러움이 꽤 있었기에 당장 생각나는 친구에게 두 알을 나눔 하고, 더해진 기쁨과 기대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장 구근 키우기를 시작했다. 잘 커달라고 말해본 일은 또 처음이다. 식물에게 예쁜 말을 해주면 결과물이 다르다는 실험을 꽤 자주 보았기에 안 할 수가 없었다.

이틀 밤이 지나고 나니 물아래로 하얀 수염이 무성해지고, 너무너무 귀여운 연두색 잎이 머리 마냥 뾰족하게 위를 향해 밀어내고 있었다. 난 물을 준비해 준 것뿐인데 이렇게 나를 웃게 만들어주는 녀석이다, 기특해라. 튼튼해 보이는 연두색 뿔에게 기쁨을 느끼다니. 또 이틀이 지나고, 조금 더 단단하고 짙어진 초록색으로 올라오고 있는 줄기에 환호를 지르는 나를 만났다. 동시에 조금씩 탁해지는 구근을 발견하고서 울상이 된 채로 검색해 보았다. 겨울에 키우는 구근인 만큼 온도는 10도 아래에서 돌보아야 하는 정보를 보고선 화들짝 놀라 발 빠르게 적절한 공간으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한 달 가까이 다가오니 거짓말처럼 키가 쑥 크고 길게 자라 있는 줄기를 보게 되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새로운 기쁨을 알아가는 순간들이 모이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마음 안에서 채워지는 기쁨의 문장들을 중얼거리며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보다 거실로 들어갔다. 튤립 키우는 날들 덕분에 매일 아침, 커튼을 있는 힘껏 양옆으로 치며 거실로 들어오는 겨울 햇빛을 맞이했던 기억이 길게도 스쳐간다. 아침 햇살이 좋을 때면 곧게 선 줄기들이 즐거워하듯 무럭무럭 자라나기 일쑤였다. 딱 33일째 되던 오후 다섯 시쯤 꽃봉오리가 나를 반겼다. 아마도 꽃봉오리에 눈과 입이 달렸더라면 우린 눈을 동그랗게 마주치며 부드럽게 함박웃음을 지었을 테다. 노랗게 물들지 않은 이 상태를 오래 지켜보고 싶었다.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따라오길래 말이다. 낮이 길어진 2월 말이라 그런지, 꽃봉오리들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듯, 빨리 감기를 돌리는 것 마냥 시시때때로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루가 아닌 반나절만 지나도 노랗게 모습을 완연히 뽐냈다. 아주 폴짝폴짝 신이 난 것만 같았다. 직사광선에 가장 가까이 있던 아이가 노랗게 또렷해지자마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낮 시간, 성경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문득 마주친 튤립들. 이렇게 상하좌우로 활짝 핀 튤립은 처음 본다. 빛을 사랑하는 튤립이지만, 색을 띤 후, 계속 빛과 낮은 온도에 노출해 두면 구근이 지치게 된다는 정보를 보고선 얼른 거실로 데려왔다. 나머지 두 봉오리들도 노란 튤립이 되기까지 이틀 채 걸리지 않았다. 아침엔 잎들이 넓히며 빛을 온몸으로 받는 듯하더니, 밤이 되면 잎을 좁히며 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두세 번 어여쁜 모습을 반복하더니, 어제부터 잎을 닫는 힘을 쓰지 못하는 거 같았다. 한 송이의 줄기는 너무 휘어서 아래로 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꽃대를 잘라 힘들지 않도록 얕은 물에 심어주었다. 하루가 흐르고, 집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계속 내 눈에 밟히는 두 송이도 같은 방법으로 예쁘게 물에 심었다. 내가 오래 머무는 나무 탁자 위에 올려두고 이틀째 가까이에서 하고 지내고 있다. 큰 여섯 개의 잎들로 이루어진 튤립, 이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튤립 안에는 아주 진한 갈색, 어쩌면 검은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수술과 초록 암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 덕분에 성경공부 하는 내내, 일기를 쓰는 내내 - 기분 좋은 날들로 이어지고 있다.


'꽃이 피면 지듯이 - '라는 문장을 이제야 조금 더 묵직이 이해하게 되었던 겨울나기였다.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한숨으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들을 만나는데, 이 조차도 아끼고 싶은 기억이 될 것 같다.

친구 덕분에 시작과 나눔, 과정과 결과, 그 안에서 관찰한 만큼 배우게 된 내 마음과 경험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난 물을 뜨고, 평범한 컵으로 구근 받침을 만들고, 머물 곳을 옮겨주고, 몇 차례 물을 갈아준 것뿐인데, 신이 나는 마음과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고, 순간마다 피어오르는 생명력을 관찰하며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깊이 경험한 겨울을 매무새 하고 있다. 마침내 봄과 가까워지는 3월이 다가왔고 말이다. 이제 곧 겨울 그리고 튤립과 안녕을 이야기하게 될 테니, 미리 이곳에 인사를 적어둬야겠다. “또, 돌아올 새 겨울에 새롭게 만나러 갈게! 덕분에 참 많이 웃었어, 고마웠어, 내 첫 튤립 세 송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