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림 Nov 20. 2020

당신은 소중한 사람인가요, 중요한 사람인가요?

#1. <변신> + <매미>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그들 중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까 세 사람을 적어본다.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사람, 세 사람을 적어본다. 중첩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까, 중요한 사람일까?

 오늘 함께 읽은 책 <변신>과 <매미>는 존재에 관해 질문하는 책이다.


 <변신>의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벌레로 변해버린 첫 문장이다. 왜 갑자기 흉측한 해충이 되었을까.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을 사랑하는 성실한 가장이자 아들이며,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여동생을 뒷바라지하려는 듬직한 오빠이다. 5년간 일하면서 아파본적도 없는 근면한 외판사원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변신은 모든 상황을 혼란에 빠뜨린다. 판매직원으로서의 사회적 활동이 정지되고, 집안의 가장이던 그레고르는 방안에 고립된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주었지만, 점점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벌레로 변한 그를 괴물로 여기며 부담스러워한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잃은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냉대 속에 죽어간다. 가족들은 그가 죽자,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어린 줄만 알았던 여동생 그레테에게 새로운 희망을 본다. 마지막 그의 죽음을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을 떠나는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씁쓸해진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그레고르의 변신에 또 다른 변신으로 응대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벌레와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딱딱한 껍질 속에 여리고 여린 살덩이로 가득 찬 벌레와 단단한 뼈에 살을 붙인 인간의 모습, 대비되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마치 삶이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모습을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속살을 밝혀져 드러나듯. 벌레는 그동안 드러내지 못한 그레고르 잠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실체가 아닐까. 현대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한 인간의 모습이란 자신이 인간인지 벌레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깨닫지 못한 채 정해진 일과대로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갈 따름이다. 벌레라는 자각을 하고 그 모습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그레고르의 모습, 여동생의 바이올린 음악소리에 저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몸을 움직인 그는 벌레이지만 사람이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벌레의 모습이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이었다.     


 사람이지만 외면 받는 사람들, 오늘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맞아 우리 곁의 ‘노동자’들을 떠올려본다. 사람이지만 벌레처럼 외면 받는,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우리 현실 속 주인공들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산업재해 국가라는 사실을 아는가. 매해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 때문에 숨진다. 최근 연달아 발생한 택배기사의 죽음, 비대면 시대에 그 경계를 연결 짓던 노동자들은 택배 배달을 하다가 쓰러지거나 토막잠으로 버티다 못해 죽음에 이른다. 우리에게 그들은 ‘필수노동자’라면서, 정작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휴식과 임금은 제공하지 않는다.     

숀 탠,  <매미>, 풀빛

 숀 탠의 그림책 <매미>역시 외면 받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준 그림책이다. 회색빛 빌딩숲 속 빼곡한 책상 한 구석을 차지한 매미가 열심히 일을 한다. 그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원이다. 17년간 일했지만 승진도 없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하려 하지 않는다. 무시와 냉대 속에 매미는 옥상으로 향한다. 빌딩 꼭대기 ‘자살존’을 연상시키는 그 곳에서 매미는 뜻밖의 비상을 한다. 그리고 숲 속으로 돌아간다. 일종의 판타지다. 매미의 육신을 쪼개어 날아오른 붉은 매미의 날갯짓은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에 삽입된 바쇼의 하이쿠가 인상적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이 매미소리가 바위를 뚫는다.” 적막한 산 속 폐부를 찌르는 붉은 매미의 울음소리가 활활 타올랐던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처럼 들려온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나에게 묻는다. 나는 소중한 사람인가. 중요한 사람인가.

소중한 사람에 흔히 가족과 친구를, 중요한사람으로는 동료, 직장 상사, 파트너를 꼽는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소중한사람은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진 사람들이요, 중요한 사람은 도구적 인간이다. 기능을 대신할 사람이면 누구든 기계의 부품처럼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만나는 오늘날의 인간관계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변신>과 <매미>에서는 도구적 인간관계의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변신>에서 사랑의 공동체인 가족에서조차 그 역할과 기능으로 존재감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가 하면 <매미>에서는 빌딩숲 속 소외된 노동자 매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전태일 열사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훈장은 매미의 비상처럼 가치가 있는 일인가. 전태일이 말했던 ‘나’와 ‘다른 나’와의 연대를 생각한다. 노동자에게 ‘열정 페이’, ‘노력충’과 같은 말이 화석처럼 멀어지기를 절실히 바라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