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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Fong Apr 24. 2020

꿈이라는 양날의 검


  내가 승무원이라는 꿈을 꾸고, 승무원 지망생을 거쳐 그 꿈을 이루고 비행을 할 때까지.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승무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번의 좌절을 맛보면서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망생 때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겠다.


  글쎄, 그때도 힘든 건 사실이었다. 무언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암흑 속에서 계속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며, 그 과정이 길기도 긴 승무원 시험은 흔히 승무원 고시라고 까지 한다. 하지만 승무원 시험은 일반 고시들처럼 시험 준비를 해서 고시 날짜에 합격 점 이상의 점수가 나오면 합, 불합이 갈리는 게 아니다. 점수로 환산할 수도 없는 그 시험.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형상을 잡기 위해 허공에 손을 마구 휘젓는 느낌이다.


  승무원이 되면 이걸 할 꺼고, 저걸 살 거고, 여길 갈 거고, 저걸 먹을 거야. 온갖 기대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승무원이 되면 정말 이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일 것 만 같았다. 더 이상의 고민은 없을 것 같았다. 승무원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막상 승무원이 되어보니,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승무원의 삶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꿈을 이룬다는 것에 있어서 내 인생에서 커다란 성공을 얻을 것 만 같았다. 입사 후 초기에는 일 배우는 재미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선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이 손에 익을 때쯤, 내가 생각한 것과 이 일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얻은 동기들은 하나둘 씩 이직을 하거나 회사를 떠난다. 남아 있는 나는 계속 불안해진다.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건가? 여기에서 이렇게 내 청춘을 보내는 게 맞는 건가?



  나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차라리 승무원이라는 꿈을 가지고 달려 나갈 때에는 적어도 희망이라는 게 있었는데, 막상 되어보니 희망조차 없었다. 앞길이 오히려 더 막막하다. 승무원이라는 경력을 딱히 쳐주는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서 여기에 발이 묶여버리니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지 뭐. 여기서 잘해보면 되잖아. 적어도 이직 고민은 안 해도 되잖아. 여기서 잘해보자. 라며 하루하루 스스로를 위안했다.


   


   오랫동안 승무원이라는 꿈을 꾸면서, 승무원이 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독이 되었다. 막상 승무원이 되어보니, 그다음의 단계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사춘기 소녀처럼 꿈이 없어 방황했다. 하루하루가 허무했다. 그 허무함을 물질적 욕구로 충족시키려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소용이 없었다.


  생각 없이 나간 비행에서 지쳐 쓰러져 가족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내일 있을 비행을 위해 잠을 청했다. 매일매일 똑같은 비행, 똑같은 장소,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들. 타성에 젖은 나날들을 보내며 의미 없이 일을 나갔다.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니, 난 좋은 승무원도 아니었고, 좋은 아내도 아니었다.



   내가 승무원이라는 꿈을 위해 쥐고 있는 이 직업. 그리고 나쁘지 않은 보수. 직업적 이미지.


나는 이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많은걸 놓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이 직업이,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더 큰 것들을 놓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하루하루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소소한 것들을 즐기며 살다 보니 내가 그동안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는 신랑에게 모닝커피를 타 주고, 며칠 새 밀린 빨래를 보송하게 말려 개어 놓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바이올린을 배우며,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 한 잔 하며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을 읽고, 저녁에 신랑이 먹고 싶다고 한 메뉴를 하기 위해 장을 봐서 저녁을 만든다.



   모든 걸 내려놓으니, 그때 내가 아팠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그 일을 너무 사랑해서는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회사가 맘에 안 들어도 절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진작에 퇴로를 준비해놓고 있었겠지. 거짓말 같이 회사를 떠나니 좋은 기억만 남았다. 좋은 일도 있었고 물론 나쁜 일도 많았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지금은 좋은 기억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떠나야 할 때 떠났기에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떠난 지금도,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둔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떠나야만 배울 수 있던 것들을 느끼고 있다. 이것 또한 내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승무원이라는 직업 좋아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얘기할 수 있다.


“네,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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