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s Fong Apr 26. 2020

기내 안, 악마를 보았다.


  유난히 날씨가 습하고 태풍이 자주 오는 마카오. 그래서 종종 날씨 때문에 비행이 지연될 때가 많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서는 상황에 따라 색깔로 구별을 하는데, 레드 앰버 그린 블루로 구분한다. 만약 공항에 레드 라이트가 뜨면 지상에 근무하는 모든 지상직 직원들은 대피해야 하고 공항 지상 업무는 정지된다. 전에 마카오 공항에서 번개가 심한 날, 지상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번개에 맞아 사망한 이후로 생긴 정책이다.


  어쨌든 이 레드 라이트가 뜨면, 손님들이 이동해야 할 브릿지 (비행기에서 지상으로 연결해주는 다리 혹은 계단) 설치가 불가하므로, 기내에 있는 손님들과 승무원들은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한다.


  한 번은 태풍이 매우 심했던 날, 항저우로 가는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이미 음료와 기내식 서비스는 다 나간 상태. 손님들은 기내 안에서 무려 6시간이나 갇혀 있었다. 마카오에서 항저우로 비행을 가는 승무원들은 이미 전에 다른 비행을 하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듀티 타임 오버 (안전상의 이유로 승무원은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넘으면 비행을 할 수가 없다)로 승무원이 교체되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나는 그 교체 승무원으로 *스탠바이(집에서 대기 중에 전화가 오면 비행을 가는 것)에 불려 투입되었다. 일단 승무원들이 교체되기 위해 가방을 들고 빠져나가자, 손님들은 난리가 났다.


“왜 너네들만 나가!!! 우리도 나가게 해 달라고!!!!”


  하지만 손님들을 연착을 이유로 하기 하는 데는 그만큼의 절차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때는 엠버 라이트가 켜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손님들을 이동시킬 지상 업무도 불가한 상태였다. 나는 비즈니스 석 담당이어서 손님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욕설이 난무하는 기내 안.... 너네 엄마 아빠 찾고 난리가 났다. 나는 다행히 욕을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중국 사람들. 욕을 참 살벌하게 한다. 한 중국 손님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우리 동료 중 한 명에게 “칼로 니 창자를 꺼내겠다”라는 욕을 하기도 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6시간 동안 갇혀 있던 손님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았다. 진정을 시키려야 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손님 한분이 모든 손님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밀고 나가버리자!!! 나가자!!! 나가자!!!!!!”


  중국인들의 성향 중 한 가지는 화가 나면 저렇게 선동을 하며 동의를 구하는 행동을 한다. 그 손님이 선동을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나가자! 나가자” “밀어버려! 밀어버려” 하고 난리가 났다.


  밖은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나는 일단 필사적으로 이코노미 석에서 비즈니스로 전진하는 손님들을 막아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계속 밀고 들어오는 손님들. 나는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로, 비즈니스에서 비행기 입구까지 계속 밀려  나갔다. 비행기 문 앞까지 손님들이 밀고 들어와서 나는 온몸으로 비행기 문을 사수하고 “안됩니다!!!!!”를 외쳤지만 손님들은 나를 밀기 시작했다. 포기한 사무장은 나에게 그만둬도 된다는 제스처를 주었고, 내가 손을 떼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은 미친 듯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갔다.


  하지만 밖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비행기만 덩그러니 있는 상황이었고, 손님들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굳이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결국 기내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니.... 내가 말렸잖아요..... 어차피 갈 데도 없는데....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손님들은 우리에게 육두문자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정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이 소리를 질렀다. 비가 어느 정도 멈추자, 일단 손님들을 하기 하기로 결정했다. 손님들은 하나둘씩 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몇몇 손님들이 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기내 보안 문제상 하기를 결정하면, 모든 손님들이 다 내리신 후 기내 안전 점검을 실시, 후에 다 같이 일괄적으로 탑승을 다시 해야 한다.


  나는 내기리 싫다, 어차피 탈 껀데 왜 내리냐.. 설명을 해도 해도 내리시지 않았고, 우리는 결국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좋은 말로 타이르다가 말이 안 통하자, 양팔을 잡고 끌어냈다. 비행 시작도 전에 우리는 이미 기진맥진하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가까스로 다시 탑승이 시작되고 이륙했을 때, 손님들은 모두 기절했다. 그리고 우리들도 기절했다. 중국 사람은 무섭다. 그러나 화가 난 중국 사람은 더 무섭다.


  나는 그 날, 악마를 보았다.




#승무원 #외항사 #외항사승무원 #비행 #승무원썰전





매거진의 이전글 기내에서 쌍욕 먹은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