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국에서 친구 부부가 놀러 왔다.
마카오의 휘향 찬란한 모습을 보며, “와 넌 좋겠다. 마카오 너무 멋있다. 넌 이런 호텔에서 매일 쇼핑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또한 현재 나는 캐나다에서 온 남편을 따라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왔던 이 부부는 “우리도 캐나다 이민이 꿈이야. 넌 진짜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거기에 대한 대 답은 “글쎄, 한국이야 말로 살기 좋은 나라야”
한국에서는 흔히 말하는 ‘헬 조선’이라는 단어. 그 헬조선을 피해 내 나이 또래 즈음해서 이민 붐이 일었다. 물론 이민 붐은 지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한참 미국 엘에이 쪽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는 한국보다 벌이가 좋고, 자리 잡은 한국인들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다면, 지금은 답 없는 한국에서 사느니, 헬조선 한국을 벗어나 제3의 국가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고자 이민을 간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외국처럼 내 능력 껏, 학벌이나 출신 등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내 인생 즐겨보며 좀 인간답게, 이 지옥 같은 경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20대 초반부터 이미 ‘한국에서는 살지 않을 것이다.’라는 무언의 계획 아닌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산지 7년 차, 곧 8년 차가 된다. 이렇게 떨어져 살아보니 한국의 소중함도 하나 씩 느끼게 된다. 그리고 “왜 난 그렇게 한국을 싫어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한국은 경쟁이 심하고 팍팍한 삶은 사는 것은 맞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팍팍한 삶 이외에 장점도 많이 있다. 그 장점이 단점을 커버할 만큼 충분히 한국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한국은 생활비가 비싸다고 한다. 집값이 비싸다고 한다. 교육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차별이 심하다고 한다. 근무 환경이 열약하다고 한다. 여자는 애 낳으면 퇴사를 종용당하고 결국 경력이 단절된다고 한다. 은퇴 후 삶이 막막하다고 한다. 등등. 인정한다. 대한민국의 시스템 상, 뿌리 깊게 박혀 버린 병폐 혹은 아직은 부족하기만 한 복지 시스템은 살아가는 게 빡빡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자. 그럼 여기서 내가 한국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나쁘지 만은 않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집값. 한국은 집값이 비싸다고 한다. 강남에 있는 아파트가 일 년에 일억 씩 올랐다더라 어쨌다더라, 서울 원룸 월세가 너무 비싸다 어쩌다 한다. 마카오 홍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방 3칸짜리 아파트가 200이 넘는다. 방 4칸짜리는 300이 넘는다. 한국처럼 꽤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려면 그 정도는 줘야 한다. 내가 50만 원을 가지고 월세방을 구한다 치면, 쓰러져 가는 후진 아파트에서 심지어 방을 셰어 해야 한다. 홍콩은 더하다. 200만 원짜리 아파트가 원룸이다. 방 한 칸에 몇 백씩 한다. 그런 아파트를 구매하려면??? 20-30억은 넘는다. 쓰러져 가는 30년 넘은 처참한 아파트도 15억은 줘야 한다. 그리고 물가 상승률이 높기 때문에 보통 월세는 일 년에 10% 정도 인상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서울보다 집 값이 비싼 곳은 많다.
교육비. 물론 여기도 국가에서 무상 교육을 실시하기는 한다. 그런 무상 교육은 정말 너무너무 평범 그 자체인 사람들이 간다. 자녀가 외국인 이거나, 그래도 나는 내 자녀에게 좀 나은 사립학교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 학교는 일 년에 등록금만 몇천이다. 그것 마저도 자리가 없어서 정작 외국인인 아이들은 외국인 학교를 못 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여기도 사교육 장난 아니다. 한국처럼 과목마다 가르치지는 않지만, 피아노에 수학에 뭐에 뭐에. 학원보다 다 개인 교습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금액도 물론 상상 초월한다. 또한 마카오 사람들에게는 마카오가 너무 작은 도시이고, 교육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집이 많기에 보통 유학을 보낸다. 집이 그렇게 잘 살지 않는 평범한 집 자제라면 보통 근처로 보낸다. 대만, 일본, 한국 등등.
돈이 좀 있는 집 자제라면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로 나간다. 여기도 유학 열풍 만만치 않다.
생활비. 한마디로 정의 가능하다. 한국보다 많이 비싸다. 끝.
그럼 나는 한국의 어떤 점이 살기 좋다고 느끼냐,
1. 먹을 것이 매우 저렴하고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 그런 먹을 것을 새벽이든 언제 든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주문도 가능하다. 24시간 하는 식당도 무지하게 많다.
2.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돕고, 탑승은 줄 서서 하고, 돈보다는 인생의 참된 진리 혹은 꿈을 좇는 게 당연한 이상향이다.
3. 안전하다. 총기 소지가 있기를 한가, 곳곳마다 설치된 CCTV에, 한국도 요즘 흉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들 하지만 그런 흉흉한 일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4. 교육이 상당히 발전했다. 맘만 먹으면 질 좋은 수준의 교육을 학원이던, 일반 클래스던, 대학원이던, 평생 교육관이던, 심지어 동네 동사무소에서 까지 배울 수 있다. 그 수준 또한 매우 높으며, 심지어 가격이 저렴하기까지 하다. 끝없이 자기 계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나라다. (그 한 예로, 마카오에서는 1시간짜리 필라테스 수업이 시간당 4만 5천 원이다)
5. 친구와 가족이 가까이 있다. 여기서 나도 물론 가족이 있다. 친구도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내가 우울하거나. 힘들 때 “야 나와! 술 한잔 하자” 라 하며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는 많이 없다. 보통 마카오에 있는 몇 없는 친구들은 승무원이라 다 일하고 있거나 마카오에 없다. 그렇다면 친구를 사귀면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을 알아가는 것조차 귀찮고,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에 내 에너지를 딱히 쏟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결국엔 20년 지기 친구와 가족이 제일 그립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걸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랑 빼고.
6. 말이 잘 통한다. 나는 특히 마카오에 와서, 내 말뜻을 100%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말해도, 못 알아듣거나, 내가 중국어를 못 알아듣거나. 그러한 미스커뮤니케이션 때문에 똑같은 일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원하는 걸 얻어내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냥 말하면 바로바로 해결되는, 나는 그게 너무 행복했다. 사람들이 다 내가 뭔 말 하는지 알아듣는 게 너무 좋았다.
7. 저렴하고 질 좋은 것을 살 수 있다. 여긴 질 나쁜데 비싼 걸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저가 화장품 브랜드. 저가라고 해도 질 엄청 좋다. 지하상가에 파는 액세서리들. 아기자기 이쁜데 가격까지 싸다. 등등등.
이런 건 아마 내가 한국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얻는 소소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돈이 있어야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 원래 사람의 심리라는 게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뺏겨 봐야 소중함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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