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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느 Jan 22. 2024

우리 집은 우리의 까시타였다

우리 집을 판다는 것


 


이 아파트는 나의 첫 부동산이었다. 남편과 공동명의로 지분율 50%만 소유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다.

친정어머니께 아이 돌봄을 부탁드릴 생각으로 친정집과 같은 단지 아파트를 골랐고, 평수와 층수 정도만 골랐다. 단지가 정해져 있다 보니 고려할 것이 많지는 않았다.

 2017년 11월에 아이를 낳고, 12월에 이사를 했다. 2018년 3월에 복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와 친정엄마가 일찍부터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았고, 몸을 추스르고 적응하는데도 이른 이사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 이사를 했다.

 

 아이는 그곳에서 자랐다. 백일잔치를 집에서 했고, 첫걸음마를 그곳에서 배웠고, 기저귀도, 아기 변기도 그곳에서 뗐다. 그 집 앞 어린이집을 2년간 다녔고, 근처 유치원을 2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학군과 환경이 좋은 곳에서 학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나이까지는 친정어머니 근처에 있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이 동네에 조금 더 살기로 결정했다.


 집은 지내기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에 곰팡이가 많았고, 창 밖으로 지하철 소리가 크게 났다. 특히 지하철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집에서 느껴야 할 안온함을 빼앗기는 느낌이라 이사를 하고 싶었다. 밥도 식탁에서 먹고 싶었고, 로봇청소기도 돌리고 싶었다. 바닥 마루가 벗겨진 것도 나뭇가지가 튀어나오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아이는 여행을 가거나 다른 사람의 집에 다녀올 때면, 우리 집이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아이의 취학 전 단지 내 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집을 내놓은 지 두어 달이 지나고, 그간 대여섯 번 정도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짐이 많고 지저분하면 집이 좁아 보이게 되니, 볼품없이 상처 난 소파를 버리고 벤치수납장을 사서 짐을 쑤셔 넣고, 남편 방의 잡동사니도 숨겼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갑자기 집이 팔렸다.

 

 그날 오전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가 집을 보고 갔고, 그날 오후 500만 원 가계약금을 보내더니, 저녁이 되자 바로 계약을 하자고 했다. 정신없이 계약서를 보고 도장을 찍고 바로 넓은 평수의 매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매물을 둘러보고 나니, 내가 제법 뷰도 좋고 깔끔한 우리 집을 너무 싸게 팔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곰팡이는 많이 있었지만 그건 내가 깔끔하지 못해서였어, 지하철 소리가 크긴 했지만 탁 트인 마운틴 뷰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줬어, 식탁을 둘 곳은 없었지만 밥상을 차려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했던 시간들이 참 즐거웠어, 로봇청소기는 못 돌렸지만 어차피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하는데 무선청소기면 충분했지, 바닥 마루 하나가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어.

 우습게도 이사를 하고 싶게 만들었던 많은 이유들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고, 우리의 추억과 아이의 시간이 오롯이 배어 있는 이 집을 떠날 일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헤어진 남자친구, 옛날 상사와의 갈등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미화되고, 나름 좋은 사람이었어 라면서 너그럽게 평가하게 되듯, 집도 같았다.


나와 우리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 중에 '엔칸토'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과 그 가족들이 사는 집은 '까시타'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진짜로' 살아 있다. 바닥과 벽이 움직이기도 하고, 마치 말을 하듯 표현도 하고,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할 일을 상기시키거나 무언가 할 것을 재촉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집은 자기의 이름을 갖고 있고 가족의 일원처럼 산다.


11동 1001호는 비록 이름은 없었지만, 우리의 까시타였다. 아이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울 시기에 따뜻한 공간이 되어주었고, 회사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왔을 때 아이의 미소만큼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집이었다. 집 화장실에 누워서, 앉아서, 서서 샤워를 하는 아이의 모습이 장면마다 남을 테고, 작은 방 이불에서, 자기 침대에서 곤히 잠자는 아이 모습도 그대로 남을 테고,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추억들이 남을 것이다, 이 집과 함께. 이곳에서 사는 동안의 추억을 남기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나중에 아이가 커서도, 11동 1001호가 어땠었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게 될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나와 남편이 처음으로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가지게 된 집이니 의미가 있고, 아이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울 시기에 따뜻한 집이 되어 주었으니 의미가 있고, 의미를 부여하자면 너무나 많은 사연을 담을 수 있는 우리 집, 두 달 후면 우리 집이 아니게 될 우리 집.


어쩌면 매수할 집을 아직 고르지 못해 심란한 마음이 드니 더욱 미련이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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