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후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었다. 입덧도, 산후 우울감도, 딱 평균적인 임산부들이 겪는다는 것만큼만 겪었다. 임신과 관련한 베스트셀러들에서 말하는 기간만큼, 증상만큼 겪었으니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가끔 회사에서 임산부와 점심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나는 이 에피소드를 꼭 이야기한다. 나처럼 성격이 무디고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도 산후 우울감은 이길 수가 없더라, 우리는 호르몬의 상대가 못된다, 하면서.
나는 아이를 무난하게 낳았고 산후 조리원 생활도 잘 적응했다. 하루 2번 신생아실을 소독하는 시간에 아기와 단 둘이 있을 때면 데면데면하게 굴긴 했지만, 우는 아기를 안아보기도 하고 똥 기저귀를 갈아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이것이 무슨 말인지 엄마들은 알 것이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까지는 엄마도 아기와 낯을 가린다). 컨디션도 좋아서 틈틈이 유축을 하면서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괜찮았다.
조리원 퇴소를 하는 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는 남편이 있으니 친정어머니께서 월요일부터 와주시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내가 애정하는 책인 '베이비 위스퍼'에서 제안한 것처럼 아기를 안고 집 안을 돌며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여긴 부엌인데 네 밥을 탈 거야, 여긴 안방이고 여긴 서재야, 별 거 없지?
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이 아기 침대와 대부분의 물건을 세팅해 줬는데, 막상 집에 오자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유패드가 왠지 아쉬웠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아쉬울 뿐이었다. 집에 새로 온 손님에게 최고의 성의를 보이고 싶은 마음이랄까. 나는 분명 그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며 남편에게, 근처 마트에서 수유패드를 하나 사다 줄래요? 내 친구 영배한테 사서 보낸 적이 있는데, 웬만한 영유아 브랜드가 있는 대형마트에는 다 있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도 새로운 손님과 낯을 가리는 중이었다. 낯선 상황에 그도 경황이 없었던 모양인데,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미션을 받은 군인처럼 수유패드를 사러 떠났다. 그리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대형마트가 근처에 있는 서울이고, 그는 아주 잘 터지는 최신형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1시간이 지나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고, 2시간이 지나자 사고가 생긴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3시간이 지나자 분명 남편에게 사고가 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유를 타야 하는데, 아기를 재워야 하는데, 이미 머릿속이 남편의 사고로 가득해 계속 울기만 했다. 다른 가능성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울감이 나를 완전히 지배한 것 같았다.
너도 울고 나도 울고
그리고 3시간 반정도가 지났을 때 남편이 자기 몸의 반 만한 수유패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이제 왔냐고 울며 소리치자, 이천에 있는 어느 매장에서 수유패드를 크게 할인하길래 거기에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차가 밀렸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잔소리를 들을까 봐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에 신대방에서 경기도 이천이라니, 수유패드를 구하러 그 먼 길을 떠나다니.
아무리 무딘 사람이어도 호르몬을 이길 수는 없다. 산후 우울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은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굉장히 힘든 날이다. 마치 엄마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허수아비 같은 아빠라도 반드시 옆에서 대기를 해야 하며, 먹을 물이 없는 등 비상 상황이 아닌 이상은 외출을 해서는 안된다.
이 이야기를 반드시 남편에게 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해야 한다고 나는 임산부들에게 꼭 강조하여 말한다. 그리고 수유패드 따위를 사러 먼 길을 떠나려는 남편들에게는, 당신의 마음과 성의를 부정하는 아니지만 뭣이 중한지를 잘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나의 남편은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있긴 하다. 필요하다는 수유패드를 싸게 사다 줬는데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