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오래전에 브런치를 알았지만 가끔 들어가서 글을 읽는 게 전부였지, 글을 쓸 엄두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언제나 약점처럼 또는 열등감처럼, 내 인생에는 소재가 부족해서 남들보다 전문적으로 아는 분야도 거의 없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만한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사를 하고 서재를 정리하면서 책장에 꽂혀 있던 노트들을 꺼내보다가, 20대, 30대에 써왔던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20대의 일기장에는 치열했던, 그러면서도 허세에 차서 몸은 게으르되 마음만 바빴던 그 시간들이 잘 남아있었습니다. 30대의 일기장에는 나름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여행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이 주로 쓰여 있더군요.
20대의 저는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한 학기를 휴학하고 학교 앞 고시원에 창문 없는 방을 얻어 생활했으며, 반년 동안은 매일 그 고시원과 도서관에서 전공과 상관없는 책을 보면서 놀았습니다(고시원, 도서관, 책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놀았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나머지 4학기를 휴학하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공부를 했고 결국 낙방하여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졸업을 한 후에 바로 취업을 했습니다.
내 흥미와 관심사와는 별개로, 내가 보낸 20대의 시간 자체가 평범하다고 보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가 있듯, 제가 살아온 삶도 자세히 보면 그 시간 하나하나가 특별했기에, 비슷한 시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겠다 싶어 도전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마당에, 10년이 넘은 날들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적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 시절 썼던 일기장을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때의 일기를 지금 읽어보면서,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써봐도 좋겠고, 먼 훗날 내 딸이 나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글은 저에게 거의 유일한 취미입니다.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글짓기 상 몇 번 받아본 것 외에는 누구에게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어, 내 글이 읽기 편한 글인지, 재미있는 글인지도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오랜 시간 업무용 보고서를 곧잘 써왔으니 두서없는 글을 쓰진 않을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가 있고,
그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재미없는 사람, 삶에 소재가 몇 개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일상에서 소재를 짜내고 찾아내는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