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던 시간이 많았다. 나의 건강에 별 일이 없고(물론 지금도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코로나에 걸린 직후라 건강에 자신이 없어졌을 뿐), 딸에게도 별 일이 없고(물론 딸도 괜찮다, 잔병치레와 초등 준비에 대한 압박으로 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뿐), 이사나 휴직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던 그런 시간들이. 그럴 때쯤 브런치 글을 보게 되었고 나도 작가신청에 도전해 봐야지 마음을 먹었었다.
작가 신청에 필요한 목차를 보고 간략히 정리를 해보고, 개요가 필요하겠다 싶을 정도의 항목에는 개요까지 정리를 해두고, 대략적인 마무리를 해두었다. 이제 예시로 함께 보낼 글만 있으면 된다.
예시로 보낼 글이 없다. 평생 독서와 글쓰기 말고는 특별한 취미도 특기도 없었던 사람인데, 막상 어디에 제출하려고 보니 '쓸 만한' 글이 없다. 업무용 보고서는 수 백개가 있어도 보여줄 만한 이야기가 없다.
나는 원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기는 했다. 나름 굴곡 있는 삶을 살아서 남들보다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내 삶의 서사는 남들보다 길 수는 있겠으나, 순간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기분을 한 줄로 해서 중간을 그저 그런 기분, 왼쪽과 오른쪽 끝을 극한 슬픔과 극한 기쁨이라고 치면, 거의 매일 중간 어딘가에만 있는 사람이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삼십 대 중반을 지나오면서 종종 생각하는 것인데,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그 정도보다는, 얼마나 자주 그 감정을 느끼느냐가 삶 전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강도가 강한 기쁨과 슬픔은 우리의 기억에 남을지언정 내 삶의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는데, 얼마나 자주 기쁨을 느끼느냐는 나의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많이 만들어 두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순간을 '자주' 만들 수 있게,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꽃,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책과 작가, 좋아하는 날씨, 좋아하는 운동(정 없다면 그냥 좋아하는 옷이나 장신구라도)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창시절까지는 때마다 이벤트가 있어서 내가 굳이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기쁜일이 종종 있다. 별 거 아닌 일로도 상을 받는다던가, 칭찬을 받는 것 같은 그런 류의 것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그런 일들은 거의 없다. 보통 그때부터는 일상생활을 하며 기쁘다는 기분을 느낄일이 현저히 줄어드는데, 그때부터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를 예로 들자면, 진짜로 선호하는 색은 무채색이지만 무채색의 무언가를 샀을 때 기분이 좋아지긴 어려워서, 일부러 빨간색을 골라서 좋아하는 색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빨간색 지갑을 샀을 때 '진짜' 기쁨이 느껴지지 않아서 포기했다. 좋아하는 꽃으로는 리넌큘러스인가 달리아인가를 정했다가 결국 뭐를 좋아하기로 했는지 까먹어서 실패했다.결국 좋아하는 대상은, 경험과 그때의 감정과 스토리가 있어야 진짜가 되더라.
자라오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것을 많이 만들어두어야, 기쁨이 잦은 삶을 살게 된다.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지금 보니 그렇다.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것같아. - 빨강머리앤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신청에 낼 글의 소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변명처럼 길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글이 없고, 작가 신청을 1년째 준비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기에 창피해서 그냥 길게 적은 거다.
* 위 글은 작년 하반기에 쓴 글이고, 나의 게으름을 간파한 내 친구 강선생님의 직언 덕분에 드디어 올해 1월 작가신청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