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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글 Jul 15. 2024

그리워한다는 것.

우리의 마음이 계절이었다면 너를 그리워하는 일은 가을이었어. 그 세상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시간의 나무가 있었어. 줄기마다 알록달록한 감정이 물든 추억이 매달려 있었는데 야속하게도 세월은 그것들을 조금씩 떼어 내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그것들로부터 살짝 멀어진 거리에서 때로 웃기도 했고 때때로 울기도 했으며 나의 일이었지만 나의 일이 아니었기를 바라며 지난날을 부정하곤 했어. 미처 다 지나가지 못한 여름이 이른 가을에 남아 있듯이 우리는 사랑도 했고 이별도 했는데 너는 여태 서투른 나의 세상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어.


그 시기에 감정의 온도 차도 심해서 나는 자주 이별의 감기에 걸려 밤을 앓곤 했어. 밤새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사진첩에 머물러 있는 꿈같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이 모든 것이 악몽이라면 기필코 내일 아침에는 깨어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몰라. 남들은 이 계절의 하늘이 유난히 화창하고 높아서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하늘이 두렵고 무섭기만 했어. 암만 걸어도 너와 헤어진 하늘 아래였으니까. 나는 그곳 어딘가에 전처럼 멈추어 있어.


그러고 보니 나에게 있어서 너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모순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괜찮아진 것 같으면서도 사실 나아진 것이 아니었고 하루가 느리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덧 한 주가 지나가 있었으니까. 우리는 제법 오랜 시간을 반대로 걸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너는 나의 오늘이었어. 지금의 나는 시간이 아직 떼어 내지 못한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고만 있어.


가냘프게 흔들리는 바람에도 멈추어 너를 살피고 있어. 이게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책 <나는 너의 불안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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