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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글 Jul 18. 2024

무디어진다는 것.

우리의 마음이 계절이었다면 너로부터 무디어지는 일은 겨울이었어. 흐르는 물줄기도 삽시간에 얼어붙을 만큼 아주아주 추운 겨울.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었던 우리 계절의 끝에서 너라서 좋았고 너라서 나빴으며 너라서 아팠던 모든 찰나를 마무리하자 나의 마음에는 극심한 한파가 몰아쳤어. 안팎으로 일었던 수많은 것들이 그대로 멈추어 버린 것 같아.


처음에는 닥친 추위를 어떻게든 이겨 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어. 난방도 해 보고 두꺼운 옷도 껴입어 보고 따뜻한 음료도 마셔 보고 손난로도 꼭 쥐어 봤어. 그런데 있잖아, 겪어 보니까 이런 추위는 이겨 내는 게 아니라 적응해야 하는 거였어.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 지나간 날들은 지나간 대로 두라는 말. 구태여 포장할 필요도 없고 등한시할 이유도 없었던 거야. 그래서 사방팔방 어질러진 너와의 모든 시간을 한데 모아 첫머리에는 나의 전부라 적었고 끝머리에는 나의 일부라 적었어. 그렇게 너를 유달리 내색하지 않으며 세월과 더불어 서서히 낡아지기로 했어.


이제는 여러 조각으로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과 우연히 대면하더라도 하염없이 울음을 쏟지 않아. 가끔 술에 취해 이성보다 감성이 한 발짝 더 앞선 날에도 무턱대고 너의 목소리를 찾지 않아. 이런 계절이 나에게만 찾아왔던 것은 아닐 테니까. 분명 너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너만의 시린 겨울이 있었을 테니까.


오늘은 모처럼 눈이 내렸어. 언뜻 너와 크게 다투었던 여름이 생각나더라. 그날 밤은 나의 눈물만큼 비가 내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우리의 추억만큼 눈이 내리고 있어. 그날의 비처럼 언젠가 모두 사라질 것들인데 참 부지런히 내린다. 부디 내일 아침에는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이 겨울이 너무 길거나 춥지 않았으면 하고. 정말 마지막으로 너에게 나 나에게나 좋은 날이 많았으면 해.


책 <나는 너의 불안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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