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돌보는 세계, 조한진희 작가 등 공저
<돌봄이 돌보는 세계>를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나’를 재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자녀를 돌보는 엄마이고, 두 명의 희귀 질환 자녀를 돌보는 가족 간병인이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이고, 동시에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돌보려 애써온 작가다. 이 책은 그 모든 정체성이 한 지점에서 겹쳐 있는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돌봄은 따뜻한 미덕이나 개인의 선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이자, 그러나 가장 쉽게 사라지고 가장 늦게 보상받는 노동이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다. 엄마로서의 돌봄, 가족 간병인으로서의 돌봄, 간호사로서의 돌봄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취약함을 떠안는 일’이 있었다.
돌봄은 절박하고 중요한 필수노동이다. 그러나 돌봄 과로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도 그 문제의식은 잠시 머물 뿐, 노동의 주체와 보상, 더 근본적으로는 돌봄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와 대안에 대한 논의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외면하는 편을 선택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돌봄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다양한 분야의 기준과 근거를 통해 그 원인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사회에 분명한 경고를 던진다.
책 속에는 내가 오랫동안 막연하게 품어왔지만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왜 돌봄은 늘 개인의 책임으로 남는지, 왜 사랑·희생·사명이라는 말로 포장되어야 하는지, 왜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강해야 한다고 요구받는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장애, 시설, 노동, 의료, 교육, 젠더, 국적, 기후 등 여러 분야의 관점에서 돌봄을 깊이 재해석하며,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약자를 중심으로 돌봄 사회를 구상하는 일이 결국 인간 보편의 필연적인 문제를 직시하는 일’이라는 지점이었다(94p). 희귀 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자주 사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감각을 느껴왔다. 정상, 생산성, 효율이라는 기준은 언제나 우리를 비껴갔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취약함은 예외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상태이며, 돌봄은 그 취약함을 숨기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사회를 다시 설계할 출발점이라고.”
작가로서의 정체성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책임으로 다가왔다. 돌봄과 관련된 감정이나 경험을 단순한 피로나 개인적 사랑으로 덮어두지 말고, 반드시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문장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돌봄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회적인 언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그런 문장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책은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설령 정답처럼 보이는 해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의미는 분명하다.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일 자체가 이미 중요한 실천이라는 점이다. 이런 질문을 품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질문이 글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약자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확인했다.
책에서 제시한 다음의 질문들은 내가 ‘돌봄’을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접근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다.
-돌봄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사회의 돌봄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돌봄에 합당한 과정과 자세,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갈등이 발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원칙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82p)
나는 그동안 돌봄 제공자의 입장에서만 변화를 고민해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돌봄 대상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 또한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 돌봄 제공자·돌봄 대상자·제도가 균형 있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돌봄 사회가 성립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는 ‘돌봄–간병–간호–의료’의 개념을 그동안 모호하게 섞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은 왜 이 개념들이 분리되어 왔는지 그 사회적 흐름을 이해하게 만들었고, 복지의 겉모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와 정치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더 깨어 있어야겠다는 다짐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 책이 제시하는 돌봄 사회의 방향은 다음 문장들에 집약되어 있다고 느꼈다.
좋은 사회는 다양한 의존이 제공되고, 그 안에서 각자에게 맞는 의존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이다. 106p
사회참여와 행복의 전제 조건이 건강이어서는 안 되며, 아픈 이들에게도 사회참여가 보장되고, 그들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될 수 없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서 빨리 건강해지라는 요구가 아니라, 잘 아플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109p
밑줄을 그은 문장이 너무 많아, 이 책은 조만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