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가 무서워하는 회사에 다닙니다, 이철우 작가
대학RCY로 활동하던 시절, 적십자 건물을 오가며 자주 마주치는 직원 한 분이 있었다. 인사를 건네면 늘 환하게 받아주고, “활동 열심히 하네요, 응원합니다”라고 말해주던 얼굴. 그때의 나는 그저 ‘다정한 어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충북혈액원 간호사로 입사했다. 첫 출근날, 총무팀에 인사를 드리며 고개를 숙이고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이윤지 간호사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딱! 그분이 그 자리에 계셨다. “어? 나도 오늘부터 여기로 부서 이동됐어!” 몇 년 만의 재회였다. 그는 여전히 차분했고, 따뜻했고,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학생일 때는 몰랐던 사실. 그 부드러움 뒤에는 일과 사람에 대한 단단한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철학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책 속에 녹아 있다.
2021년, 나는 <혈액원 간호사를 간직하다> 라는 직업 에세이를 출간했다. 적십자라는 조직 특성상 책 출간은 매우 보수적으로 검토되었고, 아예 “출간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부서 팀장님도 있었다. 결재 과정은 느렸고, 원고의 한 꼭지 전체가 삭제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이철우 팀장님이었다. 마지막 책임자 결재까지도 함께 챙겨주셨다. 바쁜 조직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같은 취미인 ‘글쓰기’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드라큘라가 무서워하는 회사에 다닙니다>는 적십자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마주한 수많은 사람, 재난 현장의 긴장, 헌혈의 최전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움직여 온 이들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학생 시절 내게 건네주던 작은 격려, 새내기 직원일 때 느꼈던 편안함, 출판 과정에서 보여주신 든든한 지지가 결국 이 철학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것을. ‘사람을 먼저 보고,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일.’ 그는 늘 그런 태도로 일해 온 사람이었다.
사실 국민 중 일부는 적십자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적십자라는 조직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움직여 왔는가’를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책이 많은 오해들을 조금이라도 걷어내고, 헌혈의 가치를 모르던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모여 헌혈 인구가 조금 더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책을 덮고 나니, 나는 다시 내 삶과 역할을 돌아보게 된다. 2021년도부터 계속 육아휴직 중으로, 아직 복직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신 두 자녀의 환우회 임원으로서, 간호사로서, 부모로서 지역사회와 환우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책 속에서 만난 이철우 팀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이 사람을 지켜주고, 작은 배려와 책임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그의 태도. 그가 보여준 철학과 실천이 지금의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비록 당장 복직해서 출근길을 걸을 순 없지만, 간호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우회와 지역사회에서 작은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사람들의 아픔과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내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누군가의 마음과 삶을 지탱해주는 간호사이자 어른으로 살아가겠다고.
선배님, 그리고 작가님. 당신의 길을 책으로 만나며, 저 역시 그런 존재가 되기를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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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앞에서 “엄마가 다니던 회사야” 하고 책을 보여주니, 하루에도 열 번씩 묻는다. “드라큘라가 무서워하는 회사가 엄마 회사야?” 그렇다고 직업이 간호사라고 하니, 첫째 아이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린다. 병원 갈 때마다 채혈하던 사람이 바로 엄마라니.. 어딘가 배신감 가득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