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겹의 나를 만나는 시간

황야의 늑대, 헤르만 헤세

by 이윤지

그동안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어렵게 느껴진 책이었다. 헤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교육 방식을 견디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퇴원 이후에도 그는 틀에 박힌 시민적 삶의 방식을 거부하며 시대정신과 거리를 두고자 했다. 이 시기부터 이미 아웃사이더로서의 기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결혼 후 인도 여행을 계기로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기독교·불교·브라만교·도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점차 확장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정신적 외상과 아내의 정신병 악화로 인해, 그는 칼 융의 제자에게 정신 치료를 받게 되었고,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심리적 영역에 더욱 깊이 주목하게 된다.



그 결과 헤세의 작품은 주로 ‘자신의 정체성 추구’와 ‘그 과정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주제로 삼는다.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밑에>,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동방 순례>, <유리알 유희> 등이 그 예다. <황야의 늑대>는 여러 책에서 추천 도서로 언급된 작품이라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하다. 다만 독서모임에서의 해설과 모임원들과의 나눔이 없었다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읽어온 헤세의 작품들에서는 늘 그의 내적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서 소설이라기보다는 헤세 자신의 고백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황야의 늑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작품 전반에 걸쳐 혼란스러운 자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주인공을 ‘인간과 늑대라는 두 개의 본성을 지닌 존재’로 설명한다. 하나의 몸속에 공존하는 두 존재는 서로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원수처럼 대립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작품은 보다 근본적인 깨달음을 제시한다. 인간은 결코 두 개의 자아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백 개, 천 개의 영혼으로 구성된 존재라는 것이다. 자아란 아무리 단순해 보일지라도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여러 형식과 단계, 상황과 가능성이 뒤섞인 하나의 카오스이기 때문이다. 육신은 언제나 하나이지만, 그 안에 거주하는 영혼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인간은 수백 겹의 껍질로 이루어진 양파이자, 수많은 실로 엮인 직물과도 같은 존재다.



이러한 관점은 내가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오며 느꼈던 혼란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딸로서, 학생으로서, 사회 초년생으로서,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배우자로서, 며느리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휴직자로서, 어린이집 학부모로서, 이웃으로서 살아가며 나는 수많은 얼굴을 오가야 했다. 때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고, 때로는 여러 역할이 한꺼번에 겹쳐 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혼란의 감정은 오래전 헤세가 경험했을 법한 내적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깨달음은 약간의 허무함과 함께 묘한 위로로 다가왔다. (이런 점이 고전의 매력인가, 싶기도 하다. ㅎㅎ)



결국 앞선 혼란스러움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여러 역할과 그에 따르는 감정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던져야 한다. 모든 역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즉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태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내게는 읽기와 쓰기다.)



<황야의 늑대>는 <데미안>이나 <싯다르타>와는 또 다른 결에서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작품이었다. 다만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독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정 기간 묵혀두다가 몇 년 후에 삶의 경험이 더 쌓인 후 다시 읽는다면 새롭게 다가올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책장 한 켠에 조용히 꽂아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