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가끔, 삶이란 랜덤박스에서 뽑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 국가, 인종, 성별, 가정, 신분, 재산, 장애 등 어느 하나 선택하지 못한 채 그저 태어난 대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 ‘존엄과 행복’이라는 기본권리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는 여성, 이주민, 난민, 아동, 노숙인, 성소수자, 불안정 노동자, 장애인, 재난참사 피해자 등 법과 제도의 빈자리에 놓여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 곁에서 법률가이자 활동가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지난 20여 년간의 활동 중 열 가지 사례를 소개하는 책이다.
피해자들의 사건을 맡아 법원과 국회로 가져가 제도의 문턱을 두드릴 때마다 어리둥절해하는 표정, 의아해하는 얼굴을 자주 마주한다고 한다. 맞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군가 굳이 귀에 대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지나갈 법한 이야기들이다.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인데, 딱히 관심을 두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내가 직접 당하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살아갈 이야기 들이다. 그렇게 무심코 넘겨버리는 일들 속에서 문제적 사안을 끌어내고, 질문을 던지고, 변화를 유도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완벽한 세상이 구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아름다운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피해 당사자가 (또는 가족이) 밖으로 나와 활동가가 되는 사례가 많다. 직접 경험자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두고 직업적으로 임하는 사람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고, 일반 국민 중에서도 관심을 두고 기사를 읽어주고 투표에 참여해주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주원이, 주호 모두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도 직업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할 때는 그들의 삶을 이만큼까지는 몰랐다. 막상 환아의 부모가 되어 보니 일상에 불편한 것이 왜 그렇게 많은지. 직접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원해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몇 년 전 주원이, 주호 모두 희귀질환을 확진 받았을 때 보건소에 전화해서 질병코드를 이야기하며 도움받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알아봤을 때 전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로부터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두려움과 무력감을 더 키웠다. 하지만 작년 정부의 희귀질환 대상 특수 식이 지원사업에 당원병이 선정되어 연간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 제도가 신설되었다. 실제 지출금액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환자 가정 입장에서는 정부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이 과정에는 의료진, 환우회, 식약처, 질병청, 보건복지부, 보건소, 건강보험공단 등 여러 부처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온라인에 국민청원 글을 올릴 때마다 공감 표시를 클릭해 주는 지인들도 있다. 이런 결과를 보면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존재와 지지를 느끼며 ‘함께한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미래를 살아갈 용기와 힘도 함께 얻는다. 도움을 받았던 따뜻한 온기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경험하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같은 단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더라도, 완벽히 해결되지 않더라도, 전문가가 곁에서 나의 문제를 함께 붙들고 나아가 준다는 사실 자체가, 거기에 법이 개선되기까지 한다면야 정말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사례집이 더욱 많이 발간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방법으로 어느 분야부터 둘러봐야 할지 몰랐는데 마침 이렇게 보기 편하게 정리된 사례집이 있어서 관심을 갖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 정말 좋은 단체이고, 정말 좋은 책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흔하게 들어오던 말이라 진부할 수 있지만, 이제 와 한 단어씩 뜯어보니 정말 무겁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문장이었음을 깨닫는다. 책을 덮고도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