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함께 우는 법 : 인권 감수성을 배우다

디그니티 플랜, 양정훈 작가

by 이윤지

프롤로그의 한 장면이 오래 남는다.



“인권운동을 하며 가장 울컥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활동가가 물었다. 경찰에 연행됐을 때라던가 숙원 법안이 마침내 통과됐을 때, 혹은 피해자의 눈물을 볼 때가 아닐까 나는 짐작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거리에 나설 일 없던 사람들이 치열한 시위 현장 한복판에 서는 걸 볼 때예요.”


그것은 슬픈가, 감동적인가, 아니면 무참한가 생각했다. 9p



이어서 저자는 ‘연대의 본질을 탐색하고 싶다’라고 밝힌 후 ‘인권의 정의·주요 개념·특성, 약자·소수자의 정의·주요 개념·오해, 인권 감수성, 혐오·반인권의 사회적 기제 분석, 인권운동을 향한 다양한 동기, 네트워크의 의미, 집단적 정체성, 인권 마인즈’를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한다. 나는 본문을 통해 그동안 어림짐작으로 사용해 왔던 단어들의 정의와 쓰임을 다시 한번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인권운동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이전과는 다른 각도로 이동했음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크게 차별받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모태신앙의 영향일 수도 있겠고, 초등학생 때 장애 학교 봉사자를 자원하며 또래 장애인 친구와 일대일 짝꿍을 맺어 다양한 활동을 한 경험 덕분일 수도 있겠고, 대학생 때는 대학 RCY 활동을 하면서 적십자정신과 가까이 지낸 시간, 그리고 지금 의료인으로서 사람의 몸과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직업적 경험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권은 늘 나에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당사자의 에세이나 인터뷰집을 찾아 읽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에 읽어온 인권 관련 책들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 훨씬 깊이 다뤄졌으며 중반부부터는 사례와 연결 지으며 설명되어 있어서 더욱 이해하기 좋았다. 한 학기 분량의 교양수업을 듣는 느낌으로 읽혔고,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북토크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덮고도 오래 남는 단어는 ‘인권 감수성’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의 감각으로 문제에 다가서는 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권 감수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이다. 장소·시대·불의의 사고·사회적 참사·문화나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후천적으로 내가 언제든 혐오·배제·차별과 같은 상황에 놓일 위험을 인지하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39p 참고



문득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공식적으로 ‘살색’이라는 명칭이 ‘살구색’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첫째 아이는 내가 무심코 ‘살색’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거나 ‘살구색’이라고 정정해준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이 예전보다 많이 허물어지고, 당사자들이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기 삶을 드러내며 커밍아웃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속에서도 변화는 분명히 보인다. 유치원 생활을 다룬 한 그림책에는 흑인 어린이, 휠체어를 탄 어린이, 히잡을 쓴 선생님, 흑인 선생님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 모습이 유난히 반가웠다. 이것이 인권 감수성이 일상의 언어와 이미지 속에 스며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변화가 반갑다.



길 위에 우는 이.

그 울음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가장 먼 일이다.

저 울음을 닦아주는 것도 아마 먼 일이다.

그 전에 함께 우는 것마저도 우리에겐 요원할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것은 저 이가 운다고 “아는 일”이 아닐까? 10-11p


-> 이 문장을 읽으며, 인권이란 결국 ‘먼 미래의 해결책’ 이전에 ‘지금 여기에서의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인권과 관련된 논쟁이나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 책에서 배운 것처럼 우선 ‘바르게 아는 일’ 부터 해보려 한다.


-약자와 소수자는 누구인가?

-약자와 소수자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들려질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인가? 46p


-> 이 질문들을 마음에 품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연대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