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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원 Apr 13. 2018

월매출 1억을 넘기며...

부제 : 빌어먹을 가난과 이별하며

2017년 초, 월매출 1억을 넘겼을 당시 필자의 생일날 작성했던 회고록입니다.


Founder(좌측)와 Co-Founders(우측)


14년의 나는 디자인밖에 몰랐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디자인으로 알람 서비스를 시작했었다. 그래픽이 뛰어나지 않은 많은 서비스를 비웃으며.




'경영학 입문'이란 책을 읽으면 '모든 생명체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의식에 따라 살아간다'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읽힌다. 그렇듯 우린 목적의식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으며 '매출'은 중요하지 않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가치'를 강조하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마치 우리가 실리콘밸리의 여느 주인공인 줄 착각하며.


스타트업에서 매출은 하나의 척도일 뿐이며, 그 외에도 이루려는 목표, 비전, 팀웍 등 무수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이 매출 없는 '가난' 속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손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장 중에 최악인 사장이 뭔지 아는가? 악덕한 경영으로 소비자들을 속이는 사장? 그보다 최악인 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사장이다. 그게 나였다. 그냥 루저. 나는 '가치'라는 단어로 팀을 희망 고문했고 시장을 보지 못했고, 사람들의 욕망을 읽지 못했다.


부모님껜 비밀로 하고 당시 월세 보증금이었던 1,000만 원을 뺐는데, 그 돈을 소진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을 허우적거리다가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한 채 5명의 팀을 해체해야만 했다. 팀이 모이기는 어려워도 해체하긴 참으로 쉽더라. 마치 사랑했던 연인이 이별하는 것처럼.


1년간 준비했던 사업은 정말 한순간 꿈처럼 사라졌고, 내 통장 잔고는 0원. 월세 보증금도 없으니 집을 구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고향인 부산으로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누웠다. 그곳은 마치 안드로메다 같았다. 희한하게 슬프지도 않고 화나지도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며칠 후 이것은 단순히 입문 과정이라고 나 자신에게 속삭이며(마치 실리콘밸리에서 실패가 기본이라고 하는 것처럼) 더 무너지기 전에 항상 꿈꿔왔던 데이팅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어떤 직장이든 어떻게든 삶은 유지하겠지만, 만약 여기서 창업을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영영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죽기 전에 뒈지게 후회하겠지.


안드로이드, 서버, 그리고 나 디자이너. 그렇게 3명의 팀을 꾸렸다. 그리고 얘기했다. 매출이 나기 전까지 절대 팀원의 확장은 없을 것이고 망해도 우리만 망하자고. 또 우리는 언제든 망할 수 있다고. 3,000만 원의 빚을 냈다. 물론 연대보증 옵션은 기본. 가뜩이나 집안도 힘들었기에 좋은 형세의 배수진이었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건 서비스가 잘 될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혹시나 서비스가 망하더라도 어떻게든 3,000만 원 정도는 살아가면서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우린 정말 헝그리했다. 그리고 정말 악착같았다. 매주 월화수목금토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우리 집 반지하 방에서 합숙하며 서비스를 개발해나갔다. 매일 그 빌어먹을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5개월 간 CS를 포함해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할 때 깨달았다. 100시간 일하는 건 다 개소리다. 3개월이 지날 즈음엔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고 팀원들도 온갖 잡병에 시달렸다. 그래도 일했다. 물론 1년간 우린 아무런 월급도 없었다.




2015년 10월 베타 서비스를 런칭했다. 출시 10일 만에 3,900원을 벌었다. 하루에 390원을 번 꼴이다. 하루에 15명~30명의 인원이 가입했는데 최소 기본 인원이 되지 않아 가입 직후 이탈했다. 참담했다.


창업에서 가장 많이 망하는 이유가 '사용자들이 필요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이게 사용자들이 정말 필요한 제품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답이 없는 고민을 하면서 그 땐 꽤나 심적으로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힘드니 팀원들과도 마찰이 있었다. 정신적으로 꽤나 힘들어하며 자책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마찰이 없었으면 인간도 아니다.




창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 아는가? 통장 잔고가 주는 압박도, 팀원과의 마찰도 아니다. 그건 바로 자존감의 상실이다. 그건 나에 대한 의심을 불러온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학창시절 전교 1등, 대학 전체 수석에 총학생회장이었던 화려한 인간은 과거로 사라지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대출금의 압박을 느끼는 한낮 나약한 인간만이 남아있었다.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꺼렸으며 가족과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합숙을 끝내고 창업 무료 공용시설에서 일했는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자주 울었다. 이상하게 가난한 래퍼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래도 자존감은 지켜야 했다. 통장 잔고는 외주를 해서라도 채울 수 있지만 나 자신을 놓아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표는 항상 이런 불안을 숨겨야 한다고 들어왔지만 나는 팀원들에게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 팀원들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 담아내기엔 너무 힘에 부쳤다. 그때 팀원들의 담담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1년간 제대로 월급 한번 못받은 그들이...나에게 아주 담담히 말했다. 그냥 해보자고. 뭐 어찌 되지 않겠냐고. 어설픈 위로나 희망보다는 그런 담담한 모습이 많이 힘이 되었다.


오히려 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준 건 힐링이라는 이름의 어쭙잖은 희망 고문이나 청춘이니까 아픈 거라는 개소리가 아니라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 인간도 저렇게 성공하는데 나야 못하겠어?'라며 되지도 않는 착각에 자존감을 회복하곤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월매출 1만 원에서 1년 후 월매출 1억 원을 넘기기까지. 0에서 1을 넘기니 1에서 100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문제는 수없이 터졌지만 그런 순간순간마다 최악을 함께 했던 팀원과의 견고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우린 서로를 놓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한창 힘들 때 팀원 중 한 명이 얘기했다.

"월매출 1억 같은 날이 올까요?"


1억. 경제 세계에선 사소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겐 생존을 알리는 매우 감사한 숫자다. 앞으로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겠지만 지금처럼만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3년간 불편했던 생일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우리 큐피스트 팀원들을 위해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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