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 디테일 스터디 #1
결론: 수동태가 무조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수동태가 글쓰기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아실 겁니다. 번역체다, 수동적이어 보인다, 책임 회피의 소지가 있다 등등의 이유로 '써서는 안되는' 문장으로 여겨지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보통 번역체고, 보통 화자를 적극적이기보단 수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보통 책임 회피를 위해 쓰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장을 능동태로만 써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특히 UX라이팅에서는요.
수동태로 된 문장은 보통 화자를 수동적으로 보이게끔 합니다. 보이스톤에 '명확한' '신뢰를 주는' '자신감 있는' 등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많은 서비스에게, 수동태는 좋지 않다는 거죠. 반대로 능동태는 잘 어울립니다. 아래 예시를 볼게요.
커머스에서 물건을 샀는데 이런 화면이 뜬다면? 일반적인 사용자는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갈 겁니다. 틀린 문장도 아니고, 쇼핑에 불편을 주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UX라이터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 문장으로 우리 서비스는 사용자의 주문을 직접 결제해주는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결제는 저 어딘가에서 알아서 되고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죠.
물론 조금 과한 해석입니다.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이런 문장 하나하나가 쌓여서 사용자의 무의식에 서비스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이미지가 앞으로도 이 서비스를 쓰냐 마냐를 결정하는 데 분명 영향을 끼친다고요.
이제 조금 편안하죠. 이제 우리는 스스로 결제할 줄 아는 능동적인 서비스가 됐습니다. 똑같은 문장이지만, 사용자와 그의 주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자 수도 한 글자나 적습니다. 이 예시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예시를 하나 더 볼게요.
확실히 좀 더 이상합니다. '동의되었습니다'? 이런 문장은 보통 본 적이 없죠. 왜냐면 안 쓰는 말이니까요. 억지 수동태입니다. 마치 '난 잘 모르겠는데~ 어쩌다 보니 동의가 돼버렸네~' 하는 것 같아요.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보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일견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런 수동태를 지양하고, 아래처럼 능동태로 바꿔 줘야 합니다.
우리는 능동적인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데, 그럼 능동태만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장을 능동태만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아래 예시를 볼게요.
저희 서비스는 라이브 커머스를 운영합니다. 따라서 방송이 종료되면 라이브를 보던 사용자에게 노출될 화면이 필요하죠. 그 때 노출되는 문구가 [라이브를 종료했습니다]라면 어떨까요? 뭔가 어색하죠. 분명 틀린 것 없고, 능동태로 썼으니 능동적이어 보이는 것도 맞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위의 [결제를 완료했습니다]와 비교해볼게요.
두 화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사용자의 의도죠. 정확히는 화면을 보게 된 사용자의 상황과 맥락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용자가 결제 완료 화면을 보기 전으로 되돌아 가볼게요. 사용자는 물건을 골랐고 - 주소와 결제 수단을 입력했고 - 결제를 하고 싶어서 결제 버튼까지 눌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결제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우리는 받은 요청을 수행했고, 사용자에게 결과를 보고합니다. '(요청하신) 결제를 완료했습니다'라고 말이죠. [결제를 완료했습니다]에는 (요청하신)이 숨어 있는 겁니다. 서로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생략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제 라이브 종료 화면을 볼게요. 사용자는 이 화면을 보기 전까지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방송이 끝났습니다. 방송이 끝난 데에 사용자의 의도가 들어갔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용자는 라이브를 끝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죠. 그렇기 때문에 [라이브를 종료했습니다]는 뭔가 어색한 겁니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 후에, 다 했다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다르게 쓰여야 합니다. 사용자가 요청한 일을 능동적으로 수행하고 결과를 알려주는 상황인지, 아니면 사용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리의 일을 한 상황인지에 따라 능동태와 수동태가 바뀌는 것이죠.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무 자르듯 확실하게 갈리지 않는, 심화 케이스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같이 고민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와 ‘배송을 시작했습니다’ 중 무엇이 더 알맞을까요? 정답은 없고, 각자의 기준만이 있을 것 같네요.
라이팅 디테일 스터디
- UX라이터로 일하며 깨닫는 디테일을 적습니다. 깨달음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자주 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초보 UX라이터라 제 글은 진실 또는 진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고민하고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