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교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교사의 이야기
AI와 교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교사의 이야기
얼마 전의 일이다. 오전 내내 과학실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출근할 때부터 인터넷이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접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산 실무사님께 급히 연락을 드리고 기다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날 오전 수업은 인터넷 없이 진행하게 되었다.
수업의 도입을 위해 준비했던 영상,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의 과학송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가까스로 PPT와 교과서만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했다. 두 가지 실험—볼록렌즈로 다양한 사물을 관찰해 보는 실험과 간이 확대경을 만들어 작은 글씨를 찾아보는 활동—은 다행히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동기 유발 영상을 보여주고, 실험 과정을 설명하는 시청각 자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에 오로지 내 설명에 의존해야 했다. 말도 훨씬 많이 해야 했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해 주의 집중을 자주 환기시키며 가까스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날 느꼈다. 이제는 인터넷 없이는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컴퓨터란 것도 대학에 가서야 접할 수 있었고, 초임 시절 교실의 인터넷 속도는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으며, 자료도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교실에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고, AI 교실이라 불리는 공간에서는 첨단 에듀테크 앱을 활용한 수업이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 교사 연수에서 GPT-4 활용법을 배우며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오픈 AI가 개발한 GPT 시리즈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에 활용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에 방해되거나 정서적으로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앞섰다. 그러나 막상 몇 가지 기능을 배우고 나니,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지난 공개수업을 준비하면서 GPT를 활용해 수업 지도안을 짜고, 수업 아이디어를 묻고 답하며 준비를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융합 수업을 구상할 때 교과서와 지도서를 일일이 뒤지던 일이 GPT를 통해 훨씬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성취기준 검색은 물론, 정보 검색과 객관적 자료 수집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덕분에 수업 준비의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수업에 적합한 PPT 구성 아이디어까지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지향하는 수업의 방향성, 타 교과와의 연계, 융합 아이디어 등 다양한 요구에 따라 GPT의 답변은 달라졌고, 질문의 수준과 깊이에 따라 그 질 또한 달라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어느새 초등 교실에서도 단순한 인터넷을 넘어 생성형 AI가 수업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26년 차 교사로 살아오며 지금처럼 빠르게 교실 풍경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AI 수석이 임명되고, 대통령은 '소버린 AI'를 언급하며 AI 강국으로 나아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제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우학교'에서는 AI 관련 도서 《나는 AI와 공부한다》를 함께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살만 칸은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로, AI를 교육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AI를 통해 평가 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동일한 자원으로 더 많은 문항을 생성하고, 문해력 저하와 교사의 탈진 문제를 AI로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평가에 AI를 도입할 수 있다는 그의 제안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의 평가 방식은 종종 인간의 편향성에 노출되기 쉽고, 평가가 오히려 학생들을 규격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표준화와 포괄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투명성과 접근성이 확보된다면, AI는 새로운 평가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창의력, 호기심, 의사소통 능력까지 측정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살만 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류의 운명을 동전 던지기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AI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그는 AI 기술이 몇몇 대기업의 손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공공선의 방향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우리는 AI를 두려움이 아닌 책임감으로 마주해야 한다.
AI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마치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고 있다. 우리는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를 타고 나아갈 것인가? 이 기술을 책임 있게, 선의로 사용해야 한다는 명확한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통제가 필요하다. 개인교사 역할을 하는 AI가 한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학급 내 다양한 아이들에게 맞춤형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교육의 길을 만들 수 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말했다.
“무엇을 하든지 과거에 발목을 잡히지 말라.”
지금이 바로 그때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준비하며,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AI라는 인류가 처음 만난 ‘외계 지성’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는 길목에 서 있다. 그 기회를 선의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두려움으로 만들 것인가. 선택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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