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벽이다. 이 시각 깨어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100일 글쓰기’를 실천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어제는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학교는 신학기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요란하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흔들림 없이 내 소신껏 살 수 있을까? 급한 일들에 정신이 팔려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뒤로 미뤄둔 때가 많았다. 그런 일 중 하나인 ‘매일 글쓰기’도 일순간 무너지곤 했다.
교사로서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 본 적은 없었다. 다행히 좋은 학부모와 학생을 만났다. 감사할 일이다. 특히 몇 해 전 ‘내가 학급경영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참 운이 좋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다. 힘들수록 교사로서 내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다행히 그 해는 그것이 통했다. 그 일 이후, 학급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학급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 중, 담임교사임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교사로서 나는 무엇이든 잘해야 했다. 또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자책도 컸다. 그해 나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내 힘으로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도 있음을 받아 들었다. 나쁜 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이였던 그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해 온다. 잘 컸으면 좋겠다.
학교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진다. 내 삶의 시계가 학교 안, 가속도와 만나면 급속도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된다. 예정된 수업 외, 불쑥 찾아드는 업무, 그것도 항상 바쁠 때. 각본 없는 학급경영. 모든 것이 예측 불허다. 가끔 내 예상과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26년 차 교사로서 건재한 나의 판단력과 선택에 우쭐해진다. 그것도 잠시, 잠깐의 쉬는 시간도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여러 가지 민원(?)을 응대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수업 종이 울린다.
시끌벅적했던 교실도 아이들 하교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이 흐른다. 이 고요한 시간은 은둔의 시간이 된다. 잠시 짬을 내어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수업을 준비한다. 이 시간을 통해 다시 뛸 힘을 저장한다. 내일 다시 마주할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웃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마저도 어려운 것이, 부장 교사인 나는 수업 준비 외 번외의 일들에 상당 시간을 쏟아내곤 한다. 교무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다. 헐레벌떡 복도의 정적을 깨고 학교를 빠져나오곤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교단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AI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교수법도 익혀야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학생, 학부모, 학교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 배워야 한다. 학교도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듯하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속도를 내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뛰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교사에게 시간을 허했으면 좋겠다.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을, 또 끄적끄적 낙서하고 글 쓰는 시간을 내어주면 좋겠다. 교사로서 내 삶을 되돌아보고 충분히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 또한 여유로울 텐데.
충분히 기다려주고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려는 마음은 멈춤과 성찰의 시간에 비례한다. 바쁜 일상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하는 이유이다. 아이들이 떠나간 오후의 텅 빈 교실도 좋지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있다. 바로 새벽 시간이다. 내가 새벽 기상을 고수하는 까닭이랄까. 이 시간을 통해 학교에서 또 일상에서 찾지 못하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뱉은 별로인 말들, 가벼운 행동, 조금 더 참고 기다려주었다면 좋았을 순간들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것을 실수했는지 알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들에 대한 되새김질이 가능해진다.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순간, 세상은 무한 감사로 다가온다. 감사 일기를 쓰고 긍정 확언을 통해 ‘더 좋은 교사, 더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명심보감』 입교 편을 보면,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그러므로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하루에 무엇을 할지 판단한 바가 없게 된다.”라며 계획을 세우는 것과 특별히 새벽 기상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곡 이이는 스무 살 때 평생의 지침으로 삼으려고 지은 『자경문(自警文)』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침나절에 할 일을 생각하고, 밥을 먹은 뒤에는 낮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스스로 경계하고자 했던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 또한 “새벽은 어른의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새로워진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18년이라는 긴 유배 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새벽에 일어나 몸을 바로 세우고 자신이 해야 할 일, 이루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기 삶으로 그리 살면 스스로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아닐까? 다산에게 새벽은 어떤 의미였을까? 다산 정약용의 삶을 조명하는 글을 쓴 조윤제는『다산의 마지막 습관』에서 “어른은 매일 쌓이는 세월의 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주는 동굴이 필요하다. 홀로 깨어나 하루의 시작과 끝을 돌아보는 새벽은 그래서 자신만의 동굴이 된다.”라고 새벽 예찬을 하기도 했다.
맹자는 맑고 신선한 새벽의 기운인 ‘평단지기(平旦之氣)’를 말했다. ‘평단지기(平旦之氣)’는 ‘평온한 새벽 기운’을 뜻하는 말이다. 이 표현은 새벽이 밝아오는 평온한 순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내면이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한다. 그에게도 새벽은 낮과 밤을 지내는 동안 잃어버린 마음을 돌아보기 좋은 때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새벽은 비움과 채움의 교차점이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의 군더더기를 빼고 본질만 남길 수 있을까?’ 오늘도 그 답을 찾기 위해 새벽 기상을 한다. 어제와 결별하고 새로운 하루를 새벽과 함께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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