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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라

by 초등교사 윤수정

아티스트 데이트란, 내 안의 창조성 회복을 위한 기본 원칙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데이트라고 하면 사랑하는 연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데이트'라 떠올린다. ‘아티스트 데이트’란 그런 일반적인 데이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내 안의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줄리아 카메론은 자신도 글을 쓰다가 창작의 샘이 모두 말라버릴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아티스트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바로 ‘아티스트 데이트’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자신이 좋아하는, 또는 신이 나는 일을 찾아 혼자 탐험하는 것을 뜻한다. 박물관이나 수족관이나 뜨개질 공방 방문, 영화관, 콘서트, 공룡 전시회 등등. 자신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장소에 혼자 가서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에는 두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소설가 케이시는 말했다. “한동안 글이 아주 잘 쓰여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들이 김이 빠지고 진부하게 느껴졌어요. 생활이 지루해졌고 나도 지루한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글쓰기가 아주 힘겨워졌고 내 속에서는 좀 더 파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해서 더 써내야 한다고 했어요. 문득 아티스트 데이트를 기억해 냈고, 그것을 한 번 하고 났더니 광기가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희곡 작가, 캐런도 비슷한 말을 했다. “활기가 없어진 것 같아서 삶의 생기를 맛보러 나갔어요. 동네의 모든 꽃집과 애완동물 가게를 들렀었죠. 난초를 감탄하며 바라봤고, 선인장들을 보면서 즐거워했어요. 아마릴리스에게 추파를 던지고, 몇 쌍의 앵무새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집으로 데려온 것은 아프리카산 바이올렛 하나였지만, 내 영혼은 되살아났고 글도 생기를 되찾았어요. 항상 내 글쓰기 영혼을 회복시키는 일이 아주 작은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해요.” 책에서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데이트는 규칙적인 운동처럼 글쓰기 체력과 기분을 모두 잘 유지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고 두 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되었다. 한 번도 글쓰기가 쉬웠던 적은 없다. 다만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했고, 글쓰기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며 습작에 가까운 글들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들이 한 개, 두 개 쌓이더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내 목소리, 내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 자신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첫 번째 책, 두 번째 책보다는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쓸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게 되었다. 내 경험의 한계치는 분명했고 이미 박박 긁어모아 써 버렸기에 내 안의 글감을 찾는 것부터 막막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 다시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나 급기야 노트북을 접어버렸다.


문득 ‘나도 따라 해 볼까? 나도 아티스트 데이트를 해 볼까? 정말 내 안의 창조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잘 써지지 않고 탁탁거리다 마는 노트북을 당분간 접기로 했다. 일정 시간을 정해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5년째 접어드는 동네인데도 어떤 곳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카페는 또 왜 이리 많던지. 한 곳, 두 곳 장소를 바꿔가며 들락거려보기도 했다. 지금은 나만의 작고 아담한 카페 한 곳을 점찍어 두었다. 서너 번 다녀갔더니 카페 사장님하고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수첩에 적었다. 가끔은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 자동차, 불빛을 바라보곤 했다. 지나간 추억과 내가 잊고 지냈던 이야기들 나도 모르게 소환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날은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썼다. 뭐라도 끄적였다. 다시 내 안에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티스트 데이트를 안 뒤로는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갑자기 기운이 가라앉는다거나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을 때는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는다. 한 자도 쓸 수 없을 만큼 고갈되었나 느껴질 때, 산책하러 나간다. 때로 긴 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산이나 강, 바다를 찾는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면 신기하게도 내 안의 에너지가 차오른다. 그런 날은 글도 술술 써진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내겐 꽤 쓸모가 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만큼 번아웃 증상이 오거나 내가 가고 있는 길에서 어디로 나아갈지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든다면, 아티스트 데이트를 해 보라. 분명 말랐던 삶의 열정, 동기, 기쁨, 행복 같은 것들이 소소하게 또 비록 느리더라도 이내 차오르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가 말했다. “나의 발 역시 저자다.” 니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니체의 말은 ‘발’이라는 신체 일부를 빗대 집 밖으로 나가 경험하고 부딪혀라라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일차적으로도 정말 발이 저자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퇴근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맨발 걷기를 했다. 집 뒤에 있는 작은 공원에 가서 신발을 벗고 10여 분 걷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발로 느껴지는 촉촉한 흙의 느낌, 거칠거칠한 모래알의 느낌,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질퍽한 땅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니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심조심 걷고 나면 소용돌이치듯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었다. 게다가 저녁에는 등만 대면 잠이 들 정도로 숙면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꾸준히 맨발 걷기를 지속했다. 오가며 인사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건강에 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퇴근 후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파에 몸을 누이기 바빴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맨발 걷기라는 작은 변화가 내 삶에 또 다른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혈액순환도 좋아진 것 같고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되었다. 일찍 자니 새벽에도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화가 폴 세잔은 “나는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매일 오늘을 만난다. 24시간 하루를 살아낸다. 새벽도 매일 나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오늘의 새벽은 어제의 새벽과 다르다. 새벽에 일어나 내 방 창으로 동트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날마다 다르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똑같은 하루라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권태로웠던 때가 있었다.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똑같다는 생각에 이 지겨운 일상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 고민했다. 아티스트 데이트를 시작하고부터 나에게 새벽은 매일 달라졌다. 어제는 원두커피를 마시고 쇼팽 음악을 들으며 서서히 붉어지는 태양빛을 마주했고, 오늘은 찐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구절을 옮겨 적었다. 그 덕에 이미 해가 떠오르고야 말았다. 훤히 드러난 오늘을 마주했다. 하루도 같은 새벽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같은 사물, 같은 시간도 어떤 눈으로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티스트데이트는 수없이 지나간 나의 출근길, 퇴근길, 집 주변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선물했다. 소소하지만 내 삶의 아기자기한 기쁨을 주었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우리에게 일상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감각을 깨우는 특별한 시간이다. 첫걸음은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지만, 작은 시도는 곧 삶의 신선한 변화를 가져온다.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자. 나만의 설렘과 크고 작은 발견을 사진에 담아보자. 또 글로 남겨보자. 내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라. 해 뜨는 장면을 매일 관찰하면 안다.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오늘, 이 새벽이 있음을.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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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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