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상을 시작한 지 5년 차가 되었다. 2020년 11월 31일. 새벽 기상을 시작한 첫날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무작정 새벽에 일어나 거실 한구석에 앉아 베란다 창으로 뜨는 해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새벽에 일어났을 뿐인데, 내 안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에 홀로 깨어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 기상은 이제 내 삶의 큰 틀이 되었다. 루틴을 넘어 습관이 되었다. 새벽 기상과 함께 독서를 시작했다. 글쓰기도 시작했다.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토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새벽 기상이다.
한동안 홀로 깨어 이것저것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계속 지속될 줄 알았다. 아니 혼자서도 잘할 줄 알았다. 어떤 일이든 권태기가 오는 법, 그렇게 좋던 새벽 시간, 새벽 기상이 슬슬 왜 일찍 일어나야 하지? 일찍 일어나서 뭘 한다고 정말 달라질까? 하는 의문들이 점점 생겨났다. 급기야 ‘더는 힘들어서 하기 싫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권태기를 가까스로 이겨내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 또 다가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오랫동안 새벽 기상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순간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속담 하나가 있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떠올랐다. 인간은 혼자일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많은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며 서로 믿고 서로 협력으로써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나의 부족함과 필요를 채워 줄 사람을 만나야 했다. 나에게 힘을 보태줄 사람과 함께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혼자일 때보다 더 높고,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특히 이 좋은 새벽 기상을 나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웠다. 고민 끝에 2023년 1월 11일 교원학습공동체, 나우학교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 모임은 새벽 기상을 토대로 교사 자기 경영법을 익히고 학급경영 노하우를 함께 나누고 배우는 모임이다. 현재 32기 운영을 하고 있다. 이미 새벽 기상을 하고 있어서 익숙하게 참여하는 사람도 있고 생전 해보지 않은 새벽 기상을 시도하느라 진땀을 빼는 회원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내 기상 패턴에서 1주에 10분씩 당겨보는 시도였다. 한 달, 길게는 3개월 동안 나에게 맞는 새벽 기상 루틴을 찾고 66일 이상 반복하여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나우학교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선생님의 삶을 접할 수 있었다. 타인의 삶에 자주, 깊게 얽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일렁였다. 사회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마음과 행동으로 주변을 밝게 빛내는 이들이 있다. 선한 영향력은 영향력의 크기보다 선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행동력이 중요하다. 작은 민들레 홀씨가 퍼져서 민들레 밭을 이루듯 타인에게 감사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선한 영향력이 세상 곳곳에 퍼져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하고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재키 로빈슨은 “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만이 인생에서 유의미하다.”라는 말을 했다. 사회 속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부모를 비롯한 타인에게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끝없이 사회가 규정한 가치들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자아는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과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라는 심리 현상을 거쳐 특정 상황이 주어질 때, 특정 판단과 행동, 선택에 이른다. 사회신경과학자인 김학진은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에서, 자기의식이 “태어난 이후 만나온 수많은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자아를 떠올리고 이에 따라 반응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면, 자기 인식은 “객관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왜곡된 자아를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평가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 ‘자기의식’이라면, 그 평가에 대해 돌아보고 그에 맞춰갈 것인지,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원래의 자아를 세우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다. 김학진은, “때때로 자기의식을 멈추고 자기 인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인다. 자기 인식이 나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결국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본인의 역경을 이겨내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삶에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나영 박사이다. 그녀는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했다. 미국 의사 국가고시를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 하버드 의과대학 뇌 영상 연구소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 정신과 레지던트에 합격했고, 소아정신과 펠로우 과정까지 이수했다. 그 뒤 존스홉킨스대와 연계 병원인 케네디크리거인스티튜트에 소아정신과 교수진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탄탄대로 같았던 그녀의 인생에 제동이 걸렸다. 현대의학으로는 증상 치료만 가능한 ‘기립성빈맥 증후군’과 ‘신경 매개 저혈압’에 걸린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율신경계의 장애로 설명되는 이 질병으로 인해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 됐다. 그녀의 말을 빌린다면 그야말로 ‘땅바닥에 붙어’ 지내야 했다. 사람이 세게 아파보면, 다른 곳에서 얻지 못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나 보다. 그녀의 경우, 정말 하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고 땅바닥에 붙어 지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만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된다. 그 시간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자신의 삶 중 20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또 한국에서 25년을 살면서 상당히 다른 두 문화 속에서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말했다. “사람의 성취, 자아실현, 욕구 충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주어진 삶이다. 누가 볼 때 초라하건 말건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라고 하고 싶다.”
지나영 박사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나에게 좋은 사람이지 않고,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 영향력을 펼쳐 누군가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기에 앞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여기고 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시선에 갇혀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내가 반듯하게 살아야 하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삶이 내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말이 있다. 영어 명언으로 알려진 위 문장은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라는 뜻이 된다. 영어권에서 ‘레몬’은 불운, 불량, 엉망인 상황처럼 부정적인 뜻을 담은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따라서 강한 신맛으로 그냥 먹기는 힘든 레몬이 주어진다면 상큼하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버리라는 말의 속뜻은, ‘삶에 불행이 찾아왔을 때 인생에 관한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원하지 않은 힘든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지만, 불운한 상황을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갑자기 다가온 불운이라는 ‘레몬’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레몬’을 짜서 달콤하고 상쾌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방법은 나의 힘으로 나만의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
바다에 빠지는 최악의 순간에도 진주를 캐오는 사람처럼 레몬을 가지고 그 시고 강렬한 맛에 나가떨어지지 말고 그 맛을 이용해 상큼하다 못해 톡 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 레모네이드를 한 번 맛본 사람은 또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레몬으로 어떻게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할 것이다. 궁금하다 못해 직접 자신의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만든 달콤 새콤 한 레모네이드를 목마른 누군가에게 내어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타인의 삶을 주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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