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나는 기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새해가 되면 으레 다이어리를 샀지만 한두 장 기록하고는 처박아 두곤 했다. 블로그 기록도 2007년, 비교적 일찍 시작했으나 내 글을 공개한다는 것이 두렵고 부끄러워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었다. 기록하는 일도 꾸준하게 하지 못했고 나를 알리거나 내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심심할 때면 내 책장 한 편에 모셔둔 빛바랜 초등학교 시절 내 일기장을 꺼내 보곤 했다. 일기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내가 이런 아이였구나.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기록은 왜 할까? 내가 기록을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담고 그때의 내 마음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새해 다이어리와는 달리 기록하고 또 기록했던 시절이 있다. 바로 육아일기이다. 첫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아이의 웃는 모습이며 웃음소리까지, 아니 내 아이와 관련된 그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 웹페이지에 사진도 올리고 그 밑에 아이 이야기와 내 마음, 내 생각을 열심히 썼다. 나만의 책으로도 만들어 소장했다. 그 덕에 오늘까지도 아이와 함께 그 육아일기를 꺼내 본다. 또 그 육아일기를 보며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한다. 가끔은 엄마가 너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노라며 큰소리치기도 한다.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첫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세밀한 하루하루는 다 과거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기록해 두었기에 그날의 작은 일, 그때의 내 마음,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자기 계발 강의를 듣던 중 블로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블로그 하나 정도는 가지고 계시죠?” 하는 강사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했다. 있기는 한데 비공개로 되어 있고 오랜 시간 잊고 지내 언제 글을 올렸나 한참을 떠올려야 할 만큼 까마득하기만 했다. 내 블로그는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긴 시간 잠을 자고 있었다. 온갖 덤불과 죽은 나무 넝쿨, 묵은 먼지가 뒤섞인 인적 없는 오래된 고성처럼. 철벽을 두른 채 아무도 찾지 않는 블로그였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 개인 정보가 노출 등에 대한 걱정으로 나만의 비밀일기장이 된 지 오래였다. 블로그는 꽤 오래전에 개설했는데, 왜 처음 시작과 달리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하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잘 써서 올려봤자 독자 없는 글이고, 나만 읽을 뿐이고, 아무런 피드백도 없었다. 마음은 편했을지는 몰라도 계속 글을 써야 할 이유, 원동력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글 쓰는 일도 멈추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한다. 아이들은 공책에 다양한 주제로 저널 쓰기를 한다. 한 주에 한 편 글쓰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대다수 아이가 제법 글쓰기에 흥미를 붙이고 쓰고 있다. 처음부터 저널 쓰기 활동이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쓰라 하니 마지못해 쓴 아이들도 꽤 있었다. 잘 쓰는 아이들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반면 단 세 줄 쓰기도 어려워 주저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요. 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럴 때일수록 아이들을 다독였다. “괜찮아. 단 세 줄도 좋으니까 글을 써보자.”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의 공책을 다 걷고 아이들이 쓴 글을 잘 읽은 후, 정성 어린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단 석 줄을 쓴 친구의 글에도 내 생각을 적어주었다. 내가 독자가 된 셈이다. 아이들과 저널 공책을 통해 작가와 독자로 소통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처음 글보다 내용도 길어지고 자기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실력이 점점 좋아졌다. 가끔 어떤 아이들의 글을 읽다가 혼자 킥킥댈 때도 있었다. 아이들만의 천진한 생각이 좋았다. 혼자 읽기 아까웠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님도 글을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말 과제를 내주었다. <부모님께 저널 글 읽어 드리고 확인받고 한 줄 감상평 공책 밑에 적어오기> 부모마다 아이의 글에 반응하는 정도가 제각각이었다. 부모가 자기 글의 독자가 되어 읽어주고 긍정적 한마디를 받아 온 아이들은 모두 표정이 밝았다. 이후에도 계속 이 활동은 이어졌다. 이미 두 명의 독자가 확보된 셈이다. 담임교사와 부모님. 아이들은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예전보다 더 열심히 글쓰기 활동에 참여했다. 조금 더 독자를 늘려보기로 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모둠원들끼리 돌려 읽고 그 밑에 긍정적 한마디를 쓰게 했다. 선생님, 부모님, 친구들. 내가 쓴 글을 나만 보고 끝내는 활동이 아니라, 공유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아이들의 글이 훨씬 더 풍성해졌다. 독자가 생기니 혼자 쓰는 글보다 나아진 셈이다.
이제는 블로그 설정을 공개로 바꾸었다. 글을 쓰고 내 글을 공유한다. 긍정적 댓글이 더 많이 달린다. 가끔 내 생각과 달라서 문제를 제기하는 댓글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 기록하고 나만 보는 글쓰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내 글의 독자가 있을 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록만 해서도 안 된다.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 나의 기록이 나만의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 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의 실패담조차도 타인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기록한 글에는 선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배움을 기록해 두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 공동체 전체의 성장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고 말했다.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는 뜻이다. 개인적 기록은 각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록해 두면 나의 과거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록한 것을 알리는 것이다. 나만의 경험, 생각, 실패담을 알릴 경우, 그 결과는 달라진다. 개인의 삶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유산이 될 수 있다. 알리면 달라진다. 공자도 말했다. “어둠을 밝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다.”라고. 잘못이나 문제를 알림으로써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작은 움직임은 개인의 변화를 뛰어넘어 집단의 변화,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다. 혹시 아나? 내 글이 어떤 변화의 시작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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