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EPC, 엔지니어링 입사기

by 이안 문과PM

선택은 하나였지만,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최종 합격한 세 곳 중에서 선택한 건 엔지니어링이었다.
기술영업이나 해외영업도 나쁘지 않은 옵션이었지만,


결국 나는 PM이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판을 그리는 자리”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1. EPC 기업이라는 세계


내가 택한 엔지니어링사는 흔히 말하는 EPC 기업이다.

Engineering(설계), Procurement(조달), Construction(시공)

말 그대로 설계부터 구매, 시공까지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맡는 회사다.


국내에는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인 EPC 플레이어다.

이들은 플랜트, 에너지, 조선, 인프라 등 거대한 프로젝트를 움직인다.

내가 몸담게 된 회사도 규모는 작았지만, 그 연장선에 있었다.


2. 엔지니어링의 주 업무


EPC에서 가장 앞단에 있는 건 엔지니어링이다.
이전까지는 설계가 전부 엔지니어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엔지니어링’은 단순히 설계 도면을 그리는 게 아니다.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 :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기본 구도를 그린다.

Basic Design : 프로젝트의 뼈대를 설계한다. 구조, 전기, 계통 같은 큰 틀.

Detail Design : 실제 시공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면과 사양을 구체화한다.


처음 들었을 땐, 어차피 시공에 가면 다 달라질텐데, 그게 그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내 역할은 이 모든 설계를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설계가 흘러가는 과정을 조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설령 시공에 가서 달라지더라도, 그 전까지 발주처와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이들에게 프로젝트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는 걸.


3. 해상풍력 속 엔지니어링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해상풍력 사업개발과 기본설계였다.


풍력단지의 위치, 해상 변전소(OSS) 설계, 케이블 루트 같은 것들이 모두 기본설계 단계에서 다뤄진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전기, 토목, 해양 분야의 전문 언어로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전문 용어를 다 알지 못해도,


흐름을 정리하고,

이해관계자를 조율하고,

보고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4. PM으로 들어선 첫 걸음


입사 첫 주, 나는 확실히 느꼈다.
PM은 설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설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일정과 리스크를 관리하며,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문과 출신도 충분히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전문지식을 깊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하고 흐름을 관리하는 역할.
그게 PM의 자리였다.


아직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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