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후, 쉼표 5

제5화. 안정감과 새로움의 고민은..

by 심행

반복된 패턴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지루함도 함께 주었다.

그래서 나는 2개월 동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하고 출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더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헤드헌터의 소개로 좋은 기회를 얻어 ‘PM(Product Manager)’이라는 새로운 포지션으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 해보지 못했던 도전에서 설렘과 성취를 느꼈지만, 그 끝엔 큰 에너지 소모로 인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6년 동안 ‘내’가 구상하고 행동한 대로 일을 진행하며 성과를 얻었으나,

이번 ‘PM(Product Manager)’ 포지션에서는 제품팀 리딩을 맡고 있음에도 실제 결론은 다른 사람들의 성과에 따라 좌우되는 역할이었다.


입사 당시, 20명 규모의 작은 부서에서 일하며 새로 배우고 적응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다. 대규모 인력 조정 이후 합류한 첫 기획자였기에, 모든 업무 프로세스와 문서가 부족한 상황을 조직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직무와 조직은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플랫폼 운영에서 쌓은 데이터 기반 운영 경험과 달리, IT산업에서는 고객과 시장을 대상으로 차별화된 포인트를 어떻게 표현할지 전략 기획하는 것부터, 실제 구현 과정에서 단계적 정책과 일정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다.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와 그들의 약속을 기록하는 회의록 작성, 그리고 공통된 공감대를 형성해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 대한 공유 방식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내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어느 것 하나 고정된 형태로 반복되는 것 없이 모든 것들이 새로움의 연속이었고, 모든 것들이 시간 단위로 바뀔 정도로 변화가 빨랐다.


하지만, 결국 정해진 일정 내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PM직무는 처음이라 ‘모른다’, ‘새롭다’라는 말로 이해받을 수 없는 전문 직종이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외부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관련 업계 사람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으며, 가설을 세워 설득한 뒤 도전을 통해 성과를 확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점점 조직이 확장되어 가며 인원이 90명으로 늘고(처음의 4.5배), 다른 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확장되면서 600명 규모의 회사에서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떤 성과도 이루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들이 빠르게 적응해서 바로 실무로 투입되어야 했기에 회사의 복지부터 기본적인 사항들을 모두 수집하여 온보딩 시간을 최적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여 제시하였고, 내향형의 사람들도 쉽게 다른 사람들과 융화될 수 있도록 타운홀 행사의 사회와 IT부문 가을 워크숍의 진행을 자원하여 사회도 봤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직무 전문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깊이 고민해 본 결과, 나의 강점은 조직을 조화롭게 융화시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되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했다.


다수의 인원, 그리고 처음 겪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목표를 설정하고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각기 다른 유전자와 환경에서 성장한 개개인은 서로 다른 성향과 소통 방식을 필요로 했다. 최근에 자기소개에서 빠질 수 없게 된 MBTI 성향 분석이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질문을 통해 상대가 먼저 물어보게 해서 알려줘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업부와의 대화에서는 시장분석이나 전략 수립, 서비스 기획자와는 제품 개선 정보 그리고 고객의 입장에서 경험과 기획 상세를 다루는 UX 디자이너와의 대화 등 대화 상대에 따라 표현과 공감 방식도 달라져야 했고, 각기 다른 입장에서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때론 침묵을 없애는 다양한 공통 관심사를 통한 소통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론 1시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을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도 고민하고 적용하였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유전자와 학습 환경을 거쳤기에, 그들의 성향에 맞는 소통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낚시에서 어떤 물고기를 잡으려면 적절한 미끼를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이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친해지기 위한 노력들은 결국 그들의 진심을 움직였고 나중에는 어떤 부분이 맞았고 어떤 부분들이 개선이 필요한지 그들의 진담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시도였었다고 생각한다. 역시, 생각만 하기보다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소수의 동료에서 다수의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커머스와 리워드 플랫폼에서 부동산과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서비스로 전환하는 ‘새로운 서비스’ 도전 또한 쉽지 않았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서비스는 ‘고객-매니저-관리자’라는 3가지 사용자의 관점을 모두 아우르는 복잡한 기획과 고도화가 필요했다. 실시간 고객 문의에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고객이 사용하는 앱에서는 가입, 구매, 확인 과정을 어떻게 하면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고, 매니저 앱에서는 이동과 정보 확인 및 체크 과정을 간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 두 데이터를 관리하고 권한을 조정하는 관리자 페이지에서는 데이터들의 연관된 연동에 있어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백엔드 시스템의 로직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수동으로 진행된다면 쉽게 기획하고 개발이 가능했지만 운영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기획을 세밀하게 해서 정책과 로직을 통한 자동화가 가장 좋은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깊은 고민은 관련 직무로 오랜 경험이 쌓여 노하우가 있다면 더 쉽게 되었을 테지만, 정말 새로운 시도였고 조직의 구성원도 모두 새롭게 세팅이 되고 있었기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바로 성과를 보여야 했기에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을 통해 목표했던 숫자만큼 모두 달성하였지만, IT직무적인 영역이 아닌, 회사의 근본적인 수익성과 자금의 상태로 인해 해당 프로젝트는 중단되게 되었다.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서비스를 담당하던 인력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과 또 다른 신규 서비스를 출시하는 2개의 제품으로 나눠서 전담되었다. 나는 새로운 서비스 기획의 경험을 인정받아, 상업용 부동산 매물 서비스 쪽으로 배정받았다.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담당 PM이 개인사유로 인해 부재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고, 일정과 우선순위에 대한 재조정을 위해 로드맵을 설정하였다. 기존에 신규 서비스에 대한 기획을 진행하던 경험이 있었기에 템플릿을 활용하여 그 과정을 최소화하여 3개월의 기간을 앞당겼다.


IT조직에서는 실시간으로 소모되는 유지 비용이 굉장히 컸다. 지라, 노션, 피그마 등의 협업툴 유료 결제와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QA 등의 인력에 대한 비용들은 다른 직무들보다 인건비가 비싸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기간에 대한 단축이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회사의 자금 사정이 생각보다 안정적이지 않은 것을 고려하여 MVP의 핵심 기능만 반영하여 빠른 오픈을 목표로 달렸다.


달리는 과정에 있어서 소수점 숫자까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되는 부동산 매물 서비스 역시 여러 방면의 정보 정확성을 검토하고, 법률 검토까지 필요해 지속적인 에너지 소모와 피로를 경험해야 했다. 직원들의 체력과 감정 소모를 뒷 바침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모션 데스크, 허먼밀러 의자, 2대의 대형 모니터와 맥북 등의 고급 장비 지원과 재택근무, 패밀리데이, 크리스마스 후 일주일 전사 유급 휴가 같은 복지 덕분에 중간중간 휴식과 동기부여를 얻으며 만 2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버티기도 상대적인 것들이었기에 회사에 처음 입사해서 회사 생활을 소개해줬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두 달마다 팀장이 바뀌면서 점점 헛헛함이 커졌다. 결국 화상회의 중 가슴이 콕콕 쑤시고, 숨쉬기 어려운 공황 증상이 나타나며 더 이상의 도전을 멈춰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지치지 않을 것 같던 체력과 건강 그리고 열정이 고갈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서비스로의 고독한 도전이 자신 없었다.


결국, 내가 원했던 안정적인 패턴과 새로운 경험 사이에서 고민하며, 다음 행보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아직 쉬기엔 아쉬웠다. 다양한 도전을 돌아보며, 다음은 쉬었다 갈지 아니면 새로운 것으로 해볼지 고민하던 차에 학창 시절 다른 사람들을 알려주고 조직을 운영하던 때에 즐거워하던 나를 떠올렸다. 조금 더 큰 조직으로 가서 다른 사람이 지시하는 것을 넘어 더 큰 의사결정권을 보유하고 있다면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하지 않고 내가 바랬던 것들을 알려주고 조직을 운영하는 포지션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관련된 포지션을 찾던 중, ‘신규 서비스 기획 팀장’ 제안을 받았다. 면접에서 만난 본부장님과 대표님과의 대화에서 나와 결이 맞고,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렇게 중요한 것들이 그렇게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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