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육아휴직 동안 공인중개사 시험 보기
드디어 육아휴직 기간 중 첫 번째 목표였던 공인중개사 시험날이 왔다.
그동안 여러 번 모의고사를 보며 준비했지만 점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결국 현실적인 결정을 내렸다.
“올해는 2차는 미루고, 1차에 집중하자.”
그래도 2차 시험은 본다. 공부하지 않은 상태로.
이 시험 자체가 지금의 나를 증명하는 과정이니까.
1차에 집중한다고 해서 공부 시간이 여유롭진 않았다.
오히려 더 확실히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시험은 오전 1차, 오후 2차로 나뉘어 있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나는 온라인 강의로 준비하다 보니,
시험장 정보나 준비물은 전부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래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공인중개사 커뮤니티에 들어가 물었다.
그곳에서 의외의 준비물을 발견했다. 핀셋.
시험지를 넘길 때 페이지가 섞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용도라고 했다.
기발했다.
그 외에도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방석,
점심시간을 대비한 도시락,
그리고 기본 준비물인 컴퓨터용 사인펜, 신분증 등이 있었다.
그렇게 정말 시험날이 다가왔다.
전날에는 9시에 자려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책을 조금 더 보다가
결국 11시에야 잠들었다.
시험날 아침 7시 반, 시험장에 도착하니
다른 시험과는 다르게 확실히 연령대가 높았다.
학교 문이 열리기 전이라 모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조용히 공부할 거리들을 보고 있었다.
나도 빈자리에 앉아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암기노트를 꺼내들었다.
잘 안 외워졌던 부분을 슬쩍 보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8시가 되어 고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표를 확인하니, 맨 앞줄 한가운데.
‘하필이면…’ 하는 마음이 스쳤지만, 태연한 척 앉았다.
카톡방에서 알려준 대로
방석을 의자에 깔고 앉았다.
아마도 방석을 준비한 사람은 없었다.
맨 앞자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시험 보는데 유난 떤다는 생각을 할까 봐
괜히 뒤를 최대한 쳐다보지 않고,
그냥 아무 일 없는 듯 서둘러 방석 위에 앉았다.
컴퓨터용 사인펜, 볼펜, 수정테이프, 핀셋, 계산기를 책상 오른쪽 위에 정리하고
공부할 책을 꺼내 마지막으로 훑어봤다.
감독관이 들어오고, 시험 준비가 시작됐다.
맨 앞자리라 그런지 괜히 눈치가 보여
결국 핀셋은 쓰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1차 시험이 시작됐다.
다행히 생각보다 외운 범위 안에서 문제가 많이 나왔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시험이 끝난 뒤 아내가 “어땠어?”라고 물어봐주길 살짝 기대했지만,
그녀는 괜히 부담 줄까봐 “고생했어.” 한마디만 했다.
아이와도 잠깐 통화했다. 그 한 통이 꽤 위로가 됐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실에 도시락을 싸온 사람은 세 명 정도뿐이었다.
나는 맨 앞자리라 도시락을 꺼내 먹기가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밖에 잠깐 나가 있는 척 한 바퀴 돌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시 분위기를 살피다 용기를 내서 자리에 앉았다.
아내가 싸준 유부초밥을 조용히 꺼냈다.
역시 아무렇지 않은 척, 천천히 먹었다.
1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2차 시험 내용을 가볍게 훑어봤다.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오후 5시, 모든 시험이 끝났다.
후련했다.
3달 동안 육아휴직 중에 스터디카페만 오갔던 시간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공부로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시험이 끝나자 희미하게 사라졌다.
“이제는, 진짜 육아휴직을 즐겨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 아내가 말했다.
“오늘 고생했어. 우리 외식하자.”
집 앞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아이 손에 작은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아빠, 시험 끝났지? 축하해!”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에겐 가족뿐이구나.
가족만이 진짜 내 편이야.’
하지만 그 마음은 숨긴 채,
무뚝뚝하게 “가자” 한마디만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으며 시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채점을 해보기로 했다.
겉으론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자신감이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채점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틀렸다.
찍은 게 맞은 것도 있었지만, 애매했던 문제에서 오답이 꽤 나왔다.
1차는 민법과 부동산학개론 두 과목.
부동산학개론은 예상보다 점수가 낮았지만 선방했고,
민법은 생각보다 점수가 아쉬웠다.
공인중개사는 절대평가다.
평균 60점만 넘으면 된다.
채점을 마치니 평균 60점.
딱 커트라인이었다.
“이런…” 하는 탄식이 나왔다.
다시 한 번 차분히 채점했다.
아! 잘못 체크한 게 있었다.
한 문제를 더 맞혔다.
결과는 평균 61.25점.
참 대단하다. 대~단하다.
한 번 더 확인하고, 그 사실을 아내에게 전했다.
기쁨과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내 남편이지.”
그래, 다행이다.
통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첫 번째 육아휴직 목표였던 관문을 넘었다.
그 사실만으로 마음이 즐겁다.
이제는 잠시 책을 덮고,
진짜 나를 위한 휴식과 가족과의 시간을 다시 품을 차례다.
오늘만큼은, 그저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수고했어. 정말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