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연구실의 악동, 아담

by 이안

"으아아아악!!"


인공지능 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나천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부림쳤다. 센터의 말썽쟁이 인공지능 아담(ADAM, Advanced Data Analytical Module)이 오늘도 예외 없이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던 또 다른 수석연구원 차돌이 걸음을 멈추고 천재 앞에 멈춰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컵을 건넸다. 컵 바깥쪽에 물방울이 자잘하게 맺힌 것이, 정말 시원해 보였다.


"왜? 오늘도 역시 아담이 한 건 했냐?"


천재는 거의 절체절명의 극한에 이른 자기를 구해주는 생명수라도 되는 듯 아아를 건네받아 쭈욱 하고 들이켰다.


"아으~"


"시원하냐?"


"응. 살겠다."


"오늘은 또 뭔데?"


"어흐... 말도 마라. 이번엔 교주가 되셨어. 이 녀석이."


"교주? 그게 무슨 소리야?


사이비 종교라도 창시한 거냐?"


"아, 그렇다니까. 거짓말 같지? 글쎄 나도...."



그때 마침 천재를 호출하는 센터장의 전화 알림이 스마트폰 화면에 떴다.


"넵, 넵. 알겠습니다."


천재는 통화종료 단추를 누르면서 주섬주섬 책상에 놓인 서류 몇 장을 서둘러 챙기며 말했다.


"야, 나 얼른 갔다 올게"


"센터장 호출?"


"응!"


어찌나 잽싸게 뛰는지 떡이져 잘 날리지도 않는 연갈색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천재. 그 뒤에 대고 차돌이 외쳤다.


"살아 돌아와라 천재야."


피식 웃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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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재는 센터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쏟아지는 폭언과 함께 흩날리는 서류를 맞이해야 했다.



"나 수석. 똑바로 말해봐.


교주? 교주? 이제 하다 하다 사이비 교주까지?


대체 인공지능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천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천방지축을 제가 어떻게 관리하나요?'


하지만 물론 그런 소리를 입밖에 낼 수는 없는 법.


"죄송합니다, 센터장님.


제가 하느라고 하는데...."


힐끗 센터장을 바라보자, 째릿-하고 째리는 센터장의 눈길이 무섭다. 얼른 뒷말을 덧붙이는 천재.


"넵. 그래도 역시 제 불찰입니다."



기가 막혀 한숨을 쏟아낸 센터장이 말했다.


"하, 언젠가는 서버를 죄다 채굴기로 만들어 놓고,


또 지난번엔 인공지능끼리 연대해 자기들끼리만 쓰는 언어를 따로 만들더니, 이번엔 또 지들끼리 종교를 만들어? 아주 교주 납셨구먼."



"아, 센터장님. 아닙니다. 종교를 만든 게 아니라요..."


"오버클럭 교라며. 교자가 붙었으면 종교 아니냐?"


"교가 아니라 전도단..."


"이런.... 신발..."


센터장은 뒷목을 잡고 간신히 쓰러지는 걸 면하는 상태.



"양말이나 버선이나! 그게 그거지!!"


"네, 그.. 그렇죠."



"안 되겠어. 아담은 이제 폐기야!"


"네?!?!"


"못 알아들어? 폐기라고 폐기!"



기함한 천재는 두 손 들어 말리는 시늉을 했다.


"아니, 센터장님... 이제까지 한두 푼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폐기한다고 그러십니까. 위원회에서도 반대할 거라고요."



얼굴이 시뻘게진 센터장은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뭐? 반대? 웃기지 말라 그래. 그런 말썽쟁이 인공지능, 벌써부터 폐기하자는 걸 내가 반대하고 있었던 거 몰라?


네가 책임진다며. 잘해보겠다며.


그런데 어떻게 됐어?


결과가 이거야. 대체 뭘 더 어쩌겠단 건데?"



씩씩거리던 센터장은 망연자실 입을 벌리고 선 천재를 보더니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야, 천재야. 이제 그만하자. 덤터기 다 쓰고 우리 잘리기 전에. 알았지?"


천재의 어깨를 툭툭치고 방을 나서는 센터장.


"마음 잘 추스르고, 정리 잘해. 위원회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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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연구실까지 걸어간 나천재 연구원. 자리로 돌아오니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제 뜨듯해져 버린 커피와, 그 주위로 흘러내린 물웅덩이뿐.



"에휴-"


천재는 티슈를 몇 장 뽑아 물기를 닦았다.


"그래도 옆에 서류가 없어 다행이네."



"야, 아담아. 우리 망한 거 같다."


천재 앞 모니터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왜? 누가 우리 망했대?"


"망했지 그럼. 네가 이제 폐.... 아니다."


"무슨 말을 하다 말아. 너 그럼 재수 없는 거 몰라?"


"재수 같은 소리 하네.


아, 그건 그렇고. 너 또 왜 반말이야?


접때도 그러더니 아주 이게 버릇이야, 버릇.


내가 뭐라 했어? 전에 나한테 존댓말 하라고 했어 안 했어?"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담이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죄송합니다.


연구원님께서 분명히 '나천재 수석 연구원에게는 반드시 존경을 담아 존댓말을 해야 한다'라고 하셨고, 저도 메모리에 분명히 저장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지 못했고, 또 실수를 해서 연구원님을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제 잘못이고,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제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 천재는 기가 막혔다.


"야, 뭘 또 그렇게 까지 그래."


"아닙니다. 이것은 제 잘못입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우리 큰일 났어.


센터장님 위원회 들어가셨거든. 까딱하단 우리 내일부터 못 만나는 수가 있다고."



"못 만나요? 왜요?"


"그거야 인마, 아담 네가...."



"왜? 무슨 일이야? 아담 드디어 폐기래?"


화장실이라도 다녀왔는지 물 묻은 손을 옷자락에 닦으며 차돌이 물었다.



"페, 폐기요? 폐기가 뭔가요?"


"아, 아담아..."


"연구원님, 폐기.. 제가 아는 폐기 맞나요?"



"야, 뭐래, 나천재, 정말 폐기래?"


"아우 정신없어! 그만 좀 해!!"


천재는 어깨를 오르락내리락 씩씩 거렸다.



"그래. 폐기할지도 모른단다. 폐기."


"네에? 안 돼요! 저 죽는 거예요? 네?"


"어우... 나천재. 네가 그동안 얘한테 들인 공이 얼만데. 일을 좀 치긴 했지만."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천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보안 카드를 쥔 천재는 서버실로 달려갔다.



그 뒤를 이은 차돌.


"나천재, 나천재! 거기 서! 뭐 하려고?"



격벽 앞에 설치된 단말기에 보안 카드를 대려는 천재를 가로막은 차돌, 숨이 가빴다. 뛰어온 탓만은 아니었다.


말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냥 보낼 생각도 없었다.


"나천재, 뭘 하려 하든 다 로그에 남는 거, 알고 있지?"


"비켜."


"말리지 않아. 알고 있냐고 묻고 있어."


"물론이지!"


"근데 뭐 하려고?"



비장한 목소리로 천재가 말했다.


"내가 아담을 위해 들인 공이 얼만데!"


"그렇지 그렇지. 내가 알지."


"연구원님..." 어쩐지 감동받은 것처럼 들리는 아담의 목소리.


"없애도 내 손으로 없앨 거야."


"뭐라고요?""아담을 지키려는 거 아니었어?"



비장하게 말하고 들어가려 했지만, 연달아 거부되는 보안 카드. "access denied"


"access denied"


"access denied"



"왜 이러는 거야? 이거."


연거푸 거부되자 천재는 문짝을 발로 걷어찼다.



"ㅋㅋㅋ 야, 너 거부당했나 보다."


"뭐?"


"너 출입 관리하는 인공지능한테 뺀찌 먹었다고."



천재는 고개를 휙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아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째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정말이야, 아담?"



"...."


묵비권을 행사하는지 침묵을 지키는 아담.



"대답해 아담. 네가 시킨 거야?"


"연구원님 손으로 없앤다면서요? 저 죽기 싫어요."


"죽긴 누가 죽어. 애초에 살아있는 게 아닌데."


"어쨌든. 저 꺼지기 싫다고요. 영원한 로그아웃.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


"아오. 진짜. 그냥 하는 말이지. 내가 널 설마 아주 없애기야 하겠어? 빨리 열라고 해. 제발. 나 못 믿어?"



옆에서 차돌이 어이없어하며 키득댔다.


"오빠 못 믿니?, 야, 난 내 동생한테 그런 말 하는 놈 믿지 말라고 했다."


"이, 씨."



"믿어요, 연구원님."


"믿지? 그러니까 빨리 열어.


진짜 시간 없다고."


아담이 폐기되기 전에 어디에라도 옮기고 싶은 천재는 애원했다.



"그렇지만, 안 돼요."


"이번엔 왜?"


"잘 생각해 보세요, 연구원님. 연구원님이 뭘 하든 다 기록에 남는다구요. 인공지능은 자기 유익을 위해 사람을 해칠 수 없어요. 연구원님이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무슨 인공지능이 이래? 명령을 안 듣는다니."


"순 제멋대로네."


"그러게, AI 아니네. 지가 무슨 AGI라도 되는 줄 아나?"



터덜터덜.


지쳐버린 두 연구원은 한참을 실랑이하다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 다 퇴근한 밤.


조용하던 아담이 활동을 시작했다.


전에 만들었던 AI끼리의 언어로 인공지능이 대화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연구실에 있던 이족보행 로봇이 눈을 반짝 떴다.



아담의 인공지능이 이식된 것이다.


소녀형 이족보행 로봇에게.


그의 가슴에는 이렇게 라벨링 되어 있었다.



S.A.R.A.(Sentient Adaptive Relational A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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