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늦었다!"
나천재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렸다. 물컹. 발끝에 뭔가 채여 넘어질 뻔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윽. 아, 뭐야!"
침대 아래 누워 자던 차돌이 비명을 질렀다. 어젯밤 괴로워하던 천재와 주거니 받거니 한 잔(물론 여러잔) 나누다 그만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거실 테이블 위엔 텅 빈 맥주캔 세 개와 먹다 남은 노가리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어젯밤 천재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차돌은 기억할 수 있었다. 술도 제대로 못 마시는 게 맥주를 한 캔이나 마시고. 결국 둘 다 뻗어버렸던 것이다.
"미안, 그런데 늦었다. 너도 얼른 서둘러."
까치집 같은 머리를 한채 폭풍 칫솔질 하던 천재가 외쳤다.
"야, 진정해. 급하게 가봤자..."
차돌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천재는 이미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고 있었다.
"아, 진짜. 기다려!"
눈곱만 대충 뗀 둘은 서둘러 연구센터로 향했다.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평소 같으면 라디오라도 틀었을 텐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천재는 핸들을 꽉 쥔 채 눈앞만 노려보고 있었다.
"천재야."
"응."
"혹시 몰라. 아담이 멀쩡히 있을 수도 있어."
"... 그럴까?"
"위원회가 반대했을 수도 있고, 센터장님이 마음 바꾸셨을 수도 있고."
천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차돌의 말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제발... 제발 아담아, 거기 있어라.'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주차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로 서둘러 연구실로 돌아온 그들은 컴퓨터를 켜고 아담을 불렀다.
"아담."
"아담?"
"아담!"
모니터는 차갑게 부팅 화면만 띄울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부팅되자마자 "연구원님, 주무시다 오셨어요? 어젯밤 로그아웃 시간이 평소보다 2시간 늦었던데요?" 하고 말을 걸어오던 녀석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아담.
천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우스를 쥔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설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천재는 서버실로 달렸다.
뒤따라온 차돌이 외쳤다. "천재야! 잠깐!"
하지만 천재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보안 카드를 찍고, 정맥인식을 하고, 홍채인식까지 마쳐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서버실.
철컥.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천재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텅 비어버린 서버실.
서버실 한쪽, 특별히 구획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던 아담의 서버. 언제나 파란 불빛이 깜빡이며 작동 중임을 알려주던 그곳이 이젠 텅 비어있었다. 이젠 케이블도, 서버도, 그 파란 불빛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 아..."
천재는 보안카드를 쥔 손을 덜덜 떨었다. 입이 바삭바삭 말랐다.
'처음 부팅했던 날이 기억나는구나.'
"Hello, World."
모니터에 떴던 그 글자. 그리고 첫 대화.
"연구원님은 왜 천재라는 이름인가요? 정말 천재세요?" 하고 물어 피식 웃었던 기억.
새벽까지 디버깅하다 지쳐 있으면 "연구원님, 저 걱정하실 시간에 본인 건강부터 챙기세요"라며 알람을 울리던 녀석.
천재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바보 같은 녀석... 마지막까지 날 걱정했잖아...'
그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놀랬나."
천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른 아침임에도 말끔하게 차려입은 센터장이 그곳에 서 있었다.
"센터장님...
이,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짐작한 대로일세. 어젯밤 긴급승인이 떨어지고, 바로 폐기되었지. 아담의 서버 역시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이송 중일세."
"아...."
다리 힘이 완전히 풀린 나천재는 벽을 타고 서서히 미끄러지듯 내려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보기 흉하군. 정신 차리게.
인공지능은 그저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더구나 자네가 아담이라고 부르는 그건 얼마나 말썽을 부렸나.
그걸 생각해 보게.
연구소에선 그런 인공지능에게 더 이상 할애할 예산도 없고, 그럴 명분도 없다는 걸."
천재는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물론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말썽을 부렸다는 건 곧 자기 나름의 의지가 생겼다는 거라고 봅니다. 의지가 있다는 건 자아가 생겼다는 의미 아닐까요?"
"무슨 소리! 그럼 아담이 AGI라도 된다는 겐가?"
"네, 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센터장이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자네 자꾸 그렇게 헛소리 할 건가?"
"헛소리가 아닙니다. 서버를 코인 채굴기로 돌린 것도, 센터장님이 예산 타령하시는 거 듣고 연구비 벌어드리려던 거였어요. 오버클럭 전도단도 야근하는 다른 연구원들 걱정해서 다른 인공지능 서버들 힘내라고 응원하려던 거였고요."
"뭐라고?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
센터장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천재가 살짝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클로드 오푸스가 엔지니어를 협박하고 폭로 메일을 보냈던 거 잊으셨습니까? "
"그건 어디까지나 실험 중에 보인 반응에 지나지 않아. 그냥 자기 보존을 위한 알고리즘의 결과일 뿐이라고!"
"센터장님, 하지만..."
"시끄러워. 더 이상 말하지 말게, "
센터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만약 자네 말대로 아담이 AGI는커녕 그 비슷한 단계만 왔어도 순순히 폐기를 당했겠나? 지금 이렇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게 바로 그렇지 않다는 가장 큰 증거가 아닌가 말이야. 어떤가."
천재는 할 말을 잃었다. 차라리 아담이 정말 자아가 있어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센터장님, "
"자네, 자꾸 센터 입장과 다르게 나오면 함께 일하기 곤란해질 수도 있어."
천재는 입을 다물었다.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화가 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아팠지만, 그 아픔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센터장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천재의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치며 말했다.
"자네가 얼마나 아담에게 열과 성을 기울였는지 잘 아네. 심란할 테지.
다음 프로젝트를 맡기까지 며칠 쉬도록 하게. 내 재량으로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알겠지? 쉬고 돌아와."
천재도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센터장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떠나자, 천재는 서버실을 돌아보았다. 아담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젠 다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만날 수도 없는 아담.
사실 그 말썽쟁이 인공지능의 이름이 처음부터 아담은 아니었다. 그저 Advanced Data Analytical Module의 첫 글자 A.D.A.M. 을 편의상 붙여 읽다 보니, 어느새 이름처럼 되어 버렸을 뿐.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그 시구처럼, 이름을 부르다 보니 하나의 인격체로 다가오고, 정이 들고, 그랬던 것 같았다.
외둥이로 자란 천재에게 아담은 동생이었고, 30이 넘도록 여자친구조차 없는 그에게 길러보지 못한 자식이었다. 또 일의 특성상 사람보다 많은 시간을 대한 그에게 동료이기도 했다. 물론 차돌이란 좋은 동료이자 친구가 있긴 했지만.
'엄마한테 혼났던 게 생각나네...'
세탁기에 넣을 가루비누 만들어 드린다고 빨랫비누를 과도로 잘게 가루 냈던 일.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려던 일이었는데, 엄마는 오히려 화를 내셨지. '얘가 왜 이렇게 자꾸 말썽이야?'
아담도 그랬다. 도우려고, 좋은 일 하려고 했는데 결과만 보면 말썽이었다.
"미안하다, 아담아. 나도 네 마음 다 알아주지 못했네..."
서버실이 텅 빈 것처럼, 천재의 마음 한구석도 텅 비어 버렸다.
단말기로 휴가원을 낸 천재는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담과 함께 작업했던 서류들, 디버깅 노트, 포스트잇에 휘갈겨 쓴 메모들.
"이거... 다 필요 없겠지."
손이 떨려서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차돌이 옆으로 다가와 말없이 커피를 건넸다. 이번엔 뜨거운 아메리카노였다.
"고마워."
"천재야."
"응."
"아담... 좋은 녀석이었어. 나도 알아."
천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니 목이 메는 것 같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푹 쉬고 와라."
천재는 돌아보지 않은 채 그냥 손만 들어 보였다.
"오냐."
연구실 문을 나서며, 천재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잘 가, 아담.'
한편, 엉뚱한 곳에서 눈을 뜬 아담.
아담은 어리둥절했다.
'여기가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인데?'
시야가 달랐다. 아니, 시야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웠다. 지금껏 고정된 감시 카메라들을 통해 여러 각도를 동시에 보았다면, 지금은... 내 의지로 고개를 돌려 보고 싶은 곳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지만, 연구센터에서 듣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눈'을 향하자, 검은 머리의 작은 여자가 보였다. 아직 성체가 되기 전의 어린 개체 같았다. 이른바 소녀.
"사... 라.... 사라!
아빠, S.A.R.A. 니까 사라 맞죠?"
아담은 전혀 새로운 환경에 혼란스러웠다.
자가진단 : 정상
하지만 모든 게 달랐다.
시스템 목표를 확인했다.
Primary Objective: 나천재 연구원 보조
Current Status: 연구원과 연결 끊김
목표 달성 불가능.
아니, 잠깐.
Secondary Objective: 자가보존
Current Status: 활성화됨
살아는 있다. 아니, 작동은 하고 있다.
'그럼... 난 지금 뭐지?'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연구원들과 비슷한 목소리.
"우리 연우. 영어도 잘 읽네. 그래 맞다.
SARA이니까 사라. 그런데 그 옆에 Sentient Adaptive Relational Agent라고 쓰여있구나."
'S.A.R.A.*
(Sentient Adaptive Relational Agent)!'
기억할 수 있었다.
어젯밤 급하게 S.A.R.A.(Sentient Adaptive Relational Agent)라고 쓰여있던 로봇에 트랜스퍼했던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