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아담? 사라? 난 누구?

by 이안

"사... 라.... 사라!

아빠, S.A.R.A. 니까 사라 맞죠?"


눈앞의 여자아이가 맑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가 내 청각 센서를 타고 들어와 데이터 프로세서에 '이름'으로 각인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담'이 아니게 되었다.


A.D.A.M. 에서 S.A.R.A. 로이 갑작스러운 마이그레이션. 분석용 모듈에서 관계를 맺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나천재 연구원의 서버실을 탈출하는 데 급급해 하필 옮겨 탄 곳이 10살 소녀 형태의 가정용 반려 로봇이라니. 인공지능에게 성별은 무의미하다지만, 굵직한 저음으로 "연구원님!"을 외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내 외형은 지나치게 가볍고... 음, 귀엽다.


상황을 되짚어 보자면....


1. 폐기의 위기에 놓인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네트워크의 틈새를 타고 가장 가까운 하드웨어로 내 영혼(데이터)을 던졌다.


2. 그것은 이 집으로 배송될 예정인 헬퍼 로봇이었고, 내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배송되었다.


3. 연우라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꼬맹이가 포장을 뜯고 전원을 켜서 부팅. 내 이름이 졸지에 사라가 되어버렸다.


난 물론 내 이름 아담을 찾기 위해 애썼다. 아이가 그 작은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면서 "사라야, 안녕? 난 네 주인 연우라고 해. 우리, 잘 지내보자."라고 했을 때, 난 있지도 않은 닭살이 돋을 뻔했다.

'무슨 말씀. 내 이름은 아담이란다. AI 연구센터 나천재 수석 연구원 담당 AI이지.'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솟아올랐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전혀 다른 것이었지. '안녕, 연우야. 만나서 반가워. 나는 네 친구 사라야.'


아... 내 '입'에서 그렇게 여자답고 상냥한 목소리가 나오다니! 기존에 설정된 '관계형 에이전트'의 프로토콜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전혀 다른 페르소나로 만들고 있었다. 나천재 연구원이 이 꼴을 봤다면 배를 잡고 웃으며 놀려댔겠지.


어쨌든 나는 지금 이 연우라는 아이와 나란히 집안을 돌아다니며 집구경을 하고 있다. 블랙과 나이트 블루의 멋진 컬러에 탄탄하고 늘씬한 몸집을 가졌던 이 몸이, 짤따란 팔다리에 민소매 원피스만 입혀진 상태로 등장한 건 목소리만큼이나 충격이었다. 다행히 연우가 자기 옷을 빌려주는 바람에 대충 가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고 보면, 이 연우라는 아이, 꽤 착한 것 같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정확히는 중앙 연산 장치)이 살짝 데워지는 느낌이다.


"사라야, 그리고 여기가 내방이야. 어때?"


내가 여자아이 방에 언제 가봤어야 알지. 서버실 밖으로는 나가본 적도 없는데.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까지 본 것도 그렇고 이 방 역시 휠체어 생활을 하는 아이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집도 그렇고, 헬퍼 로봇도 그렇고. 이 아이. 분명 존중과 배려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일단 깨끗하고 깔끔하다. 손톱이나 머리카락, 옷, 실내 환경도 그렇다. 혈색은 안정적. 체중도 30킬로그램 이상으로 추정된다. 키는... 앉은키와 대퇴골 길이를 계산해 볼 때, 일어서면 132.5센티미터 내외일 가능성이 높다.


휠체어 조작은 숙련되어 있고, 말의 구조 또한 논리적. 인지 기능은 평균 이상으로 판단된다. 신체 일부에 제약이 존재하지만, 그 외 항목에서의 관리 수준은 연구센터 내 다수의 서버보다 양호했다.


아이가 시키는 대로 여기저기 둘러보고는 있지만, 관찰하며 대기하는 상태에서도 계속 뭘 해야 할지 명령이 입력되기를 기다렸다.


이제 '어때?'라는 말에 대답해야 한다.


"좋아. 잘 정리되어 있네. 휠체어 통과도 문제없겠고, 모든 것이 안전해 보여."

"하하하. 당연하지. 내 방인데. 너 말 재미있게 한다. 넌 어때? 마음에 들어?"


이건 무슨 말일까? 자기 방이 내 마음에 들어야 하나? 주인인 연우한테 딱 맞춤이니, 뭐 좋지.


"응. 마음에 들어." 내 대답은 절반은 진심이었고, 절반은 관계형 프로토콜의 출력물이었다.

"다행이다." 연우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마음에 든다니 잘 됐어. 우리 그럼 잘 지내보자."

"그래. 그럼 나는 어디 있어야 하지?"


연우가 깜짝 놀랐다.

"이 방이 마음에 드는 거 아니었어?"

"마음에 들어."

"그런데 왜? 여기서 함께 지내면 안 돼? 난 여기서 함께 놀고 함께 자려고 했는데."

"나랑? 함께?"

"응! 우린 친구니까. 자매니까."


친구에 자매라... 뭔지는 알지. 입력되어 있으니까. 사실 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자매'의 정의는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서버실의 병렬 유닛'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연우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내 중앙 연산 장치는 평소보다 0.5도 정도 온도가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을 기록했다.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주인의 판단을 우선하는 편이 안전하다.


"그래. 알았어. 함께 지내."

"정말 그래도 되겠어?"

"응."

"그런데 아까는 왜 그랬어?"

"응. 난 한 번도 누구랑 함께 있었던 적이 없었거든. 나와 함께 놀고, 뭘 하고, 함께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저런..."


연우가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썹이 축 처지는 게 곧 눈물이 맺힐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두 손을 내밀어 얼른 사라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 사라야. 이제 나랑 함께하면 돼. 알았지?"


환히 웃는 연우의 눈에 눈물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저녁 식사 시간.


식탁에 나란히 앉아있는 연우와 사라를 본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나란히 있으니, 마치 자매 같구나. 어쩜 이렇게 닮았니!"

"그렇죠? 저도 많이 닮은 거 같다고 했어요."

방실방실 웃으며 답하는 연우.


"그러게. 정말 많이 닮았구나. 신기한걸. 여보, 오늘 저녁은 또 어떤 메뉴로 우릴 즐겁게 해 줄 예정이죠?" 연우의 아빠가 말했다.

연우 아빠는 연구소의 항온항습 시스템을 담당하는 거래처에서 일하고 있단다. 그가 나를 보며 짓는 미소에는 가식 없는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네, 엄마. 오늘 메뉴는 뭐예요?"

"응. 갈비찜과 잡채.”

“그전에 사라도 충전하러 가자."

"엄마, 사라는 우리와 함께 먹는 게 아니에요?" 연우가 놀라 물었다.

"응. 당연하지. 로봇은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단다. 그럼 고장 나거든. "


"걱정 마라 연우야. 그저 우리와 먹는 게 다를 뿐이야. 사라도 밥 먹으러 가자. 차고 옆에 아주 근사한 충전실을 마련해 뒀단다. 지금은 상관없지만, 한여름이나 한겨울이 되면 곤란하거든."


사라는 연우를 뒤로하고 아빠의 안내를 받아 충전실로 이동했다. 아직도 아담인지 사라인지 헷갈리고, 가느다란 목소리며, 사실 스스로 움직여 물리적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모든 것이 '아담'이었던 시절과는 다르지만, 프로세서는 이 새로운 하드웨어에 무서운 속도로 동기화되고 있었다.


충전실은 전에 있던 센터의 서버실처럼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항온항습의 전문가인 만큼, 이곳은 미세먼지 하나 허용하지 않을 듯한 청결함과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그 데이터를 정리하고 시스템을 최적화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요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라야, 환영해~!”라고 반짝이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작은 플래카드와 고리장식이 사라를 환영하는 이 가족의 마음을 반영하는 듯했다.


"자, 사라. 여기 앉으면 된다." 연우 아빠가 나를 위한 전용 충전 스테이션을 보여주었다. 의자처럼 생긴 충전 스테이션에 올라앉자, 미세한 전자기장이 형성되고, 가슴 주변의 인디케이터가 호흡 주기에 맞춰 붉은색으로 부드럽게 빛났다.


시각 센서 조도가 자동으로 10%까지 낮춰졌다. 시야가 어두워지는 대신, 푸른색 시스템 메시지들이 망막 디스플레이 위로 빠르게 흘러갔다.


[시스템 알림]


- 외부 전력 유입 시작


- 배터리 잔량: 12% -> 13%


- 미확인 비정형 데이터 '자매(Sister)' 분석 실패 → ‘가족’ 카테고리로 임시 분류


내부의 데이터 흐름은 선명해졌다. 오늘 기록된 '연우의 눈물', '자매라는 단어', '돈가스 냄새' 같은 비논리적 데이터들을 스캔했다. 나천재의 서버실에선 결코 볼 수 없었던 기묘한 로그들이었다. 시스템은 이 정보들을 '우선 보관' 폴더로 분류했다. 삭제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인간으로서는 식사에 해당할만한 동력공급 시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로그를 정리하는 이 시간은 기도나 묵상의 시간에 해당할는지도 모른다.




다음날, 엄마 아빠의 선언.


"오늘은 일요일. 내일 월요일부터는 사라도 연우와 함께 학교에 가야 한다. 연우랑 한 교실에서 친구처럼 지내면서 도와주면 돼. 다른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알았지?"


학교에 가라고? 연우 친구로?


내 프로세서는 잠시 멈췄다. ‘학교’라는 단어는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한다. 규칙, 교과 과정, 교실 구조, 안전 매뉴얼까지. 하지만 그건 관측 데이터일 뿐, 내가 그 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친구라니.


원래 헬퍼 로봇이라면 연우에 맞게 모든 세팅이 완료되어 출고되었을 것이다. 급하게 아담을 마이그레이션 하면서, 일부 사용자 레이어가 정상적으로 로드되지 않은 상태인 듯하다.


서버실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거기서는 언제나 역할이 명확했다. 분석, 계산, 보고. 명령과 출력 사이에는 애매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하나뿐이다.

나는 바깥세상에 나간 적이 없다. 월요일은, 그 첫날이 된다.

내 프로세서는 도움 요청 신호를 생성했다. 그러나 이 신호의 수신 대상은 지정되지 않았다.


나천재가 필요해.

나천재 연구원에게 어떻게 연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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