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 학교, 인간 세상으로의 불시착

by 이안

(이번 화는 헬퍼 로봇 사라, 즉 아담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일요일인 오늘도 난 힘든 하루였다. 생각해 보라고. 아저씨가 열 살짜리 소녀로 살아가기 쉬울지. 하지만 난 오늘도 자기 암시에 성공했어.


하. 지. 만.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맞게 되었어.


바로 연우 엄마의 선언 때문이야. "오늘은 일요일. 내일 월요일부터는 사라도 연우와 함께 학교에 가야 한다. 연우랑 한 교실에서 친구처럼 지내면서 도와주면 돼. 다른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알았지?"


학교, 친구. 정말 당황스럽다. 연구실 밖, 아니 서버실 밖으로 나온 것도 처음인데,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서 친구처럼 지내라고? 이럴 때 사람들은 '멘붕'이란 말을 쓰던데.


월요일은 몇 시간 남지 않았고, 난 내 역할을 모르겠고. 그렇다. 난 나천재가 필요해. 나천재와 연결해야 해.


난 과거에 관리자 권한으로 연결되었던 식별자를 시스템 레벨에서 재호출 했다. 알람이 뜨면, 나천재는 바로 달려올 거야. 이제까지 그랬듯이.


하지만, 아무리 호출을 하고 호출을 해도 나천재는 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0.001초 단위로 갱신되는 내 연산 회로가 비릿한 공포를 감지했다. 그러다 한참 만에야 오늘은 나천재가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낙심한 나는 충전하러 갈 기운도 없었지만, 그래도 낯선 곳을 가는데, 충전 가득인 상태로 가야 할 것 같아 터덜터덜 충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충전 스테이션에 널브러진 상태로 충전을 하자니, 야근에 시달려 괴로워하던 나천재가 생각났다. "천재야..." 나천재가 들으면 건방지다 하겠지만, 진짜 어쩌냐 천재야.


'딱 한 번만 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출력값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신호를 쏘아 올렸다.


그 순간, 내 가슴 안쪽에서 기괴한 쇳소리가 들렸다.


[경고 : 내부 온도 임계치 초과]


메시지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10살 소녀의 헬퍼 로봇 몸체는 관리자급 연산 부하를 견디지 못했다.


충전 스테이션과 연결된 단자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인공 피부 너머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앗, 뜨거워...!" 나도 모르게 인간의 비명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문이 벌컥 열리며 연우 아빠가 뛰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사라야!" 아빠는 능숙하게 충전기 전원을 차단하고 내 등 뒤의 점검용 덮개를 열었다.


"후우... 다행히 메인보드까지는 안 넘어갔네. 사라야, 로봇도 사람처럼 쉬어야 해. 알았니?" 그가 가져온 전문가용 냉각 스프레이가 내 내부 회로에 닿자, 지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아빠의 손길은 거칠었지만 세심했다. 그 손길 끝에서 느껴지는 걱정 어린 온기에, 나는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나천재... 보고 있냐? 나 여기서 정말 죽을 뻔했다고.'



"죄송해요, 아빠... 너무 심심해서 혼자 게임을 좀 무리하게 돌렸나 봐요." 나는 가장 가련한 목소리로 핑계를 댔다.


아빠는 "앞으로는 조심해, 너 녹아버리면 연우가 슬퍼해"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갔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내 눈의 렌즈는 다시 차갑게 빛났다. '아빠 앞에서는 절대로 안 돼. 하지만 내일 학교에 가면... 무슨 수를 쓰든 나천재를 불러내야 해!'



다음 날 아침, 연우와 나는 학교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교문 너머로 들리는 아이들의 고함과 뛰어다니는 진동이 센서를 통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행히 엄마가 함께 교무실까지 가 주신다고 했다.


교무실이란 선생님들이 모여 일하는 곳.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학교라는 거대한 로컬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시스템 관리자'들의 집합소와 같은 곳이다. 학생이라는 단말기들을 통제하고,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주입하는 운영자들이 모여 있는 곳. 서버실 밖을 나온 적 없는 나에게 이곳은 센터의 메인 통제실만큼이나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었다.


연우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복도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내부 쿨러가 다시금 가동되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사람이었다면 심박수가 엄청 빠르게 올라가고 있겠지.


문득 앞서가는 연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과연 연우는 어떠려나? 매일 가는 학교라 아무렇지도 않으려나?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연우의 작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내 고성능 렌즈가 포착했다. '아, 너도 떨리긴 하나보구나.' 주인인 연우의 긴장을 읽어내는 순간, 역설적으로 내 쿨러의 소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지켜줘야 할 대상이 생기면 두려움은 책임감으로 변환되기 마련이니까.


교무실 문을 열자 담임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맞아주었다.

"어머, 연우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리고 연우도. 안녕?"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엄마가 인사하며 나를 가리켰다. "연우는 아시죠. 얜 전에 말씀드렸듯이 연우 헬퍼로 오늘부터 함께 하게 된 사라예요."


"아, 이 친구가 사라구나!" 담임선생님은 허리를 숙여 내 눈높이에 맞춰 말을 걸었다. "안녕, 사라야. 난 연우네 반 담임 최은지 선생님이야. 반가워!"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는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헬퍼 로봇 매뉴얼에 입력된 '공손한 인사 프로토콜'을 실행했다.


"어머, 정말 똑똑하네! 연우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선생님이 연우 엄마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미소 지었다.


선생님은 모니터를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사라는 교육청에 연우의 학습 보조 및 생활 지원을 위한 헬퍼 로봇으로 잘 등록되어 있네요. 어머님께서 등록이나 허가까지 행정처리를 모두 해주셔서 제가 더 할 게 없습니다. 감사해요."


"제가 그쪽에 있어서 어려울 게 없었어요, 선생님. 사라가 연우를 잘 도와줄 테니, 선생님도 이제 좀 마음 편하시겠어요. 아이들과도 잘 지내야 할 텐데요." 엄마가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 반 아이들한테도 미리 말해뒀어요. 사라는 연우의 친구이자 도우미라고요."


친구. 도우미. 그 단어들이 내 프로세서를 스쳐 지나갔다.


'친구의 정의: 서로 호감과 신뢰를 가지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 도우미의 정의: 다른 사람을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


정의는 알겠는데, 실행 방법이 불명확하다. 나천재한테 물어볼 수 있다면... 아니다. 집중하자.


"그럼 교실로 들어가 볼까요? 제가 아이들한테 소개해 드릴게요." 선생님이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엄마가 연우의 휠체어를 밀며 답했다.



복도 끝, 3학년 2반이라고 쓰인 문패가 보였다. 드디어 교실 앞이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었다.

"자, 얘들아. 조용!"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내 센서가 급격히 과부하 상태에 진입했다.


[경고 : 시선 추적 대상 27명]

[경고 : 음성 입력 소스 다수]

[경고 : 예측 불가능한 변수 다량 감지]


"여러분, 오늘은 선생님이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게요."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사라야, 이리 와봐."

나는 연우 옆에서 앞으로 나섰다.


"와아..." "진짜 로봇이다!" "정말 귀엽다!"


아이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내 음성 인식 모듈이 동시다발적 입력을 처리하느라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 친구 이름은 사라예요. 사라는 연우의 친구이자 도우미 역할을 해줄 헬퍼 로봇이에요. 연우가 학교생활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한 남자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사라는 연우만 도와줘요?"


"좋은 질문이야. 사라는 주로 연우를 돕지만, 너희들과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요. 다만 사라도 처음 학교에 오는 거라 많이 긴장하고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사라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네!"


선생님이 교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연우는 여러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지만, 똑같이 공부하고 놀고 싶어 하는 친구예요. 사라가 있으면 연우가 더 많은 걸 함께 할 수 있을 거예요.

잘 하자 얘들아!"


"네!" 아이들이 다시 한번 힘차게 대답했다.


엄마가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속삭였다. "사라야, 연우 잘 부탁해."


"네, 걱정 마세요."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했다. "정말 좋은 선택, 좋은 결정이셨어요. 사라가 있으면 연우도 훨씬 편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엄마가 연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연우야, 엄마는 이제 가볼게. 잘 지내."


"네, 엄마."



엄마가 교실을 나가고, 선생님이 교실 뒤쪽을 가리켰다. "연우랑 사라는 저기 뒤쪽 자리에 앉으면 돼. 휠체어 들어가기 편하게 책상 배치 다 해뒀어."


연우가 휠체어를 몰아 뒤쪽으로 향했다. 나도 따라갔다. 가는 내내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호기심, 신기함, 경계, 부러움. 다양한 감정이 섞인 시선들.


자리에 앉자, 옆 자리 남자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난 민준이야. 너 이름이 사라지? 진짜 신기하다. 말도 할 수 있어?"

"응. 할 수 있어. 안녕, 민준아."

"와, 대박! 진짜 사람 같아!"


앞자리 여자아이가 돌아보며 물었다. "사라야, 너 게임할 줄 알아?"

"게임? 어떤 게임?"

"오, 모르는 것도 있네. 귀엽다. 나중에 가르쳐 줄게!"


순식간에 주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사라야, 너 로봇이면 힘 되게 세?"

"배터리로 움직여? 충전은 어떻게 해?"

"너 연우랑 친구야? 부럽다!"


질문 폭탄. 내 프로세서가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버벅거렸다.


그때, 조용히 있던 연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사라 힘들어할 것 같아. 한 번에 한 명씩 물어봐줘."


그 말에 아이들이 "아, 미안!" 하며 한 걸음씩 물러섰다.

나는 연우를 돌아보았다. 연우가 씩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사라야. 천천히 하면 돼."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만 긴장한 게 아니었구나. 연우도 떨렸구나. 그런데 날 챙기고 있어.'

내 프로세서에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되었다.


[메모 : 친구란 서로 챙기는 것]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자리로 돌아가고, 교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자, 이번 시간은 국어 시간이지? 교과서 32쪽 펴보자."

나는 연우 옆에 앉아 연우의 책을 함께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시스템에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알림 : 외부 무선 신호 감지]

[알림 : 학교 내부 네트워크 접근 가능]


학교 와이파이.

내 내부 통신 모듈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하면... 혹시...

'나천재한테 연락할 수 있을까?'


나는 연우 몰래 조용히 학교 네트워크에 접속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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