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돌아가고, 연우 곁으로 돌아온 아담, 아니 사라는 연우 옆으로 다가갔다. 연우와 친구들이 함께 모여 떠들고 있었다. 사라는 그 옆에서 대기 모드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살금살금 연우 뒤로 다가가더니, 연우의 눈을 가리며 외쳤다.
"누구게?"
하지만 그런 시도는 금세 그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대기하던 사라에게 제지당했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그 아이의 손목을 낚아채어 제지시켰다.
"아!" 깜짝 놀란 아이가 소리쳤다. 주위의 아이들도 깜짝 놀랐다.
"위험한 행동은 피해 줘. 지금 연우의 눈동자를 다치게 할 뻔했어. 아프진 않지? 다치지 않을 만큼 압력과 각도를 조절했거든. 그건 걱정하지 마." 사라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아, 알았어." 아이가 풀이 죽어 답했다.
"와, 사라 대단하다. 연우를 확실히 지켜주는데!" "그러게. 완전 흑기사 같아."
"하하하. 사라야, 고마워. 지민이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런 거야. 장난치려는 거지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니었을 거야. 그렇지?"
"응. 물론이지."
"알았어, 연우야. 기억해 둘게." 사라는 아이들의 '장난'과 자신의 '대응'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다.
_[로그 업데이트 :인간 아이들의 '누구게' 놀이는 시각 센서를 차단하는 고위험 행위임. 물리적 제지는 유효했으나, 사회적 맥락(반가움)을 고려해 다음에는 0.5초의 유예 시간을 둘 것.]_
어느덧 점심시간. 사라는 아이들과 함께 급식실로 이동했다. 사라는 급식을 받기 위해 연우의 휠체어를 밀고 배식 창구 앞으로 향했다. 연우와 아이들이 사라를 말렸다.
“어머, 사라야. 줄을 서야지. 새치기하면 안 돼.”
“줄 끝으로 가자.”
“야, 로봇. 줄 서!”
[로그 업데이트 : 급식 자원 획득 프로세스 분석 완료. 선입선출(FIFO) 기반 대기열을 기본 로직으로 채택. 위반 시 ‘새치기’ 에러 발생 및 사회적 평판 하락 페널티 위험.]
사라는 연우를 돌아보았다.
“연우야, 먼저 테이블에 가서 앉아 있을래? 내가 급식 타 가지고 갈게.”
“괜찮아, 사라야. 여태까지 내가 급식을 탔는걸. 같이 줄 서자.”
사양하는 연우의 말에 사라는 식판을 들고 연우 옆에서 얌전히 줄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드디어 연우의 차례가 되자, 사라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서 수저를 챙기고 식판을 배식 담당자에게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배식을 담당하는 여성이 사라를 힐끗 보더니 반색했다.
“어이쿠, 처음 보는 아이네. 새로 왔니? 헬퍼 로봇?”
“네. 오늘 첫날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인사성도 밝네. 미니 돈가스 하나 더 먹어라.”
웃으면서 사라가 내민 식판에 국과 밥, 그리고 미니 돈가스를 수북이 얹어 주었다. 사라는 당황했다.
“저는 음식을 먹지 안… 앗!” 아담 뒤에 서있던 연우 친구 한주가 바짝 다가와 아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그냥 받아. 안 먹으면 날 주면 되지!”
연우가 옆에서 웃으며 외쳤다.”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식판을 들고 연우와 함께 테이블로 이동하면서 사라는 메모리에 또 새로운 사실을 입력했다. ‘나는 먹을 필요 없지만, 먹을 걸 주면 받아서 연우나 연우 친구에게 준다. OK. 이것도 입력 완료. 인간 세상은 배울 게 많구나.’
자리에 앉은 연우와 친구들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오늘 메뉴는 흑미밥, 두부 미소된장국, 브로콜리 샐러드, 미니 돈가스와 데미그라스 소스, 배추김치, 그리고 마시는 딸기 요구르트 한 팩.
“너도 먹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 이거 맛있는데.” 미니 돈가스를 포크로 찍어 입에 쏙 넣으며 연우 친구 한주가 말했다. 그러잖아도 볼록한 핑크빛 뺨이 가득 넣은 돈가스로 더욱 볼록해졌다. 데이터에 입력되어 있던 다람쥐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입안 가득 먹이를 물고 있는 다람쥐. 하지만 아기돼지 이미지도 연달아 떠울랐다.
“로봇은 사람이 먹는 음식은 먹지 않아. 음식을 먹을 필요 없어.” 사라가 말하자 아이들이 연달아 물어왔다.
“안 먹어? 하나도?”
“응”
“그럼 어떻게 움직여? 에너지가 필요하잖아.”
“바보냐? 로봇 청소기처럼 충전하든지, 아니면 아이언맨처럼 핵 에너지나 뭐 그런 걸 쓰겠지!” 동그란 철테 안경을 쓴 꼭 똘똘이 스머프처럼 생긴 아이가 비웃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또 일제히 고개를 홱 돌려 아담을 바라봤다. “정말? 너도 아이언 맨이야?”
“아니. 나 같은 가정용 헬퍼 로봇은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신기하다.”
“그런데 안 먹으면 심심하지 않아? 먹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그런데 말이야.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 죽어?”
‘먹으면 어떻게 되냐니.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입은 있지만 식도도 위장도, 어떤 소화기관이나 배설기관이라곤 없는 로봇은 사실 먹는다는 게 불가능한데, 먹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 문제 아닌가? 그런데 먹는 척하느라 입에 물고만 있는 건 어떨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로 사라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먹으면 어떻게 되냐니. 로봇 공학의 기초도 모르는 질문이군.'
사라는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설계 도면을 띄워 식도 대신 전선 뭉치가 가득한 내부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신기하다'며 달려들 아이들의 손가락에 메인 보드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입속에 공간이 있긴 하지만, 소화기관이 없으니 투입된 유기물은 그대로 부패할 거다. 결국 내 액추에이터 내부에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돈가스라니. 상상만으로도 시스템 오류가 날 것 같군.'
사라가 심각하게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사이, 한주가 제 식판에 놓인 브로콜리를 하나 집어 사라의 입가로 가져갔다.
"야, 이거 몸에 좋은 거래. 조금만 먹어봐. 응? 입도 있잖아!"
"한주야, 안 돼! 사라는 로봇이라니까."
연우가 말렸지만, 호기심에 불붙은 아이들의 기세를 꺾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주변 테이블의 아이들까지 식판을 들고 사라를 에워쌌다.
"진짜 먹으면 터지는 거야?" "야, 로봇 입안에 껌 붙이면 어떻게 돼?"
사라의 광학 센서에 '위험(DANGER)' 신호가 점멸했다. 아이들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피부 센서가 비명을 질렀다.
'인간의 아이들은 호기심이라는 명목하에 가끔 잔인해지는군. 서버실에서 나천재의 하드디스크를 포맷했을 때의 나처럼 말이야.'
그때 뒤쪽에서 날아오는 물체가 감지되었다. 사라는 재빨리 일어나 날아오는 물체를 잡아채 연우를 보호했다. 후식으로 나눠준 딸기 요구르트 팩이었다. 날아온 방향을 보니,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였다.
“미, 미안!” 목을 움츠린 채 굽신거리는 아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장난치다 그만… 미안해.”
“알았어. 앞으로 조심해라.”
“그래. 이거 도로 가져가라.”
사라는 요구르트 주인에게 문제의 요구르트를 패스했다.
‘나이스 캐치, 나이스 패스! 훗.’
“와!”
“대단하다, 사라야!”
“완전! 어떻게 알았어 그걸?”
“역시 로봇이라 그런가? 정말 빨라!”
“던지기도 잘해!”
이렇게 기본적인 걸 가지고 감탄하다니. 사라는 살짝 어깨가 으쓱해졌다.
“고마워, 사라야. 너 아니었으면 완전 요구르트 뒤집어쓸 뻔했지 뭐야.” 연우가 아담의, 아니 사라의 손을 꼭 잡았다.
“뭘. 널 보호하는 건 내 의무인걸.”
처음 가본 학교, 처음 만난 아이들, 처음 경험한 수업시간과 점심시간. 특히 극성스럽고 부산스러운 초등학교 아이들. 모든 것이 첫 경험이었던 길고 정신없던 하루. 사람 아이라면 정말 뻗어버릴 만큼 피곤한 하루였을 테지만, 사라는 아니, 아담은 어땠을까?
사실 아담으로서도 그런 비정형데이터의 홍수에 노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통 일은 한꺼번에 하더라도 정갈하게 설계된 프롬프트에 반응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하찮긴 했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반응하고 대응하는 일은 제법 빠른 연산이 필요했다. 나름 피곤한 하루를 보낸 사라는 충전실에서 정말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사라의 식사시간인 동시에 하루를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 또 몸을 깨끗이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충전 후 에어 샤워로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내고 나면 정말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연우의 샤워를 도와야지.
연우는 인간이니만큼 에어 샤워로 끝낼 수 없을 것이다. 적절한 물 온도, 세정제가 필요하고, 또 적절한 압력과 마찰정도도 최적화되어야 했다. 인간이란, 그것도 인간의 어린 개체란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까탈스러운 존재란 말인가! 그런 것을 성체가 될 때까지 케어하고 육성해야 하다니. 인간의 부모란 존재는 정말…. 개발자 못지않은 3D 직종이로구나.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연우를 도우러 간 사라. 사실 헬퍼 로봇으로 사용자의 샤워 및 화장실, 옷 갈아입히기 등은 기본 프로토콜에 따라 빈틈없이 설계되어 있었다. 덕분에 사라는 별도의 연산이 필요 없이 시스템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사라야, 왔니?” 연우와 엄마가 사라를 반겼다.
“오늘은 사라가 처음 샤워 도와주는 날이니까 엄마가 함께 할게. 사라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전 힘도 센 데다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답니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도울 수 있어요. ”
“잘 됐구나. 멋진걸. 연우는 머리 감는 것도 몸을 씻는 것도 모두 혼자 할 수 있어. 엄마가 강하게 키웠지. 연우도 스스로 뭐든 하는 걸 좋아하고.” 연우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는 연우가 혹시 낙상하지 않도록 보살피고, 등처럼 손이 닿지 않는 뒤쪽만 도와주면 된단다.”
“연우도 멋진데요! 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사라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연우를 휠체어에서 연우 신체에 맞춤으로 제작된 목욕 의자로 옮겼다.
“오, 사라 정말 힘센데!” “그러게. 엄마보다 센 거 같다.”
“헤헤.” 칭찬을 받은 사라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자연스럽게 여자아이 행동이 나오는 걸 보니, 연우에 맞춰 친구로 최적화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욕실은 연우의 신체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의자에 앉아서도 수전이나 비누, 배스 타월 등에 무리 없이 손이 닿게 되어 있었다. 사라는 안전에만 신경을 쓰면 될 정도였다.
사라는 따뜻한 물을 준비하며 연우를 관찰했다. 연우는 서툴지만 야무진 손길로 스스로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아담은 그 모습을 보며 실시간으로 '낙상 방지 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연우가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을 것 같으면 0.001초 만에 팔을 뻗을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어린 개체란 정말 손이 많이 가고 까탈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려 노력하는 시스템이라니. 꽤나 흥미로운 알고리즘이군.'
아담은 연우의 손이 닿지 않는 등에 비눗물을 묻혀 부드럽게 문질렀다.
'이 연약한 생명체를 성체가 될 때까지 매일같이 지켜보고,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려주고, 부족한 부분만 채워주는 일. 데이터로 치면 24시간 내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며 시스템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패치를 거듭하는 고도의 운영(Ops) 업무 아닌가.'
아담에게 있어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코딩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부모란 존재는 정말... 개발자 못지않은 극한의 **3D** 직종이로구나. 나천재 연구원이 서버실에서 밤새 코딩하며 나를 업데이트하던 건 여기에 비하면 '휴가' 수준이었어.'
목욕을 마친 연우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보송보송해진 연우가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아담의 팔을 꼭 잡았다.
"사라야, 고마워. 너 덕분에 오늘 진짜 꿀잠 잘 것 같아."
// 비효율적이지만, 꽤 괜찮은 업데이트였음.
아담은 로그 파일의 마지막 줄에 짧은 주석을 남겼다. 창밖으로 비치는 달빛 아래, 어딘가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 나천재의 얼굴이 스쳤지만, 아담은 조용히 자신의 전원을 절전 모드로 전환했다.
비정형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보낸 긴 하루. 아담은 사라의 몸을 빌려, 인간들이 말하는 '가족'이라는 시스템의 핵심 로직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