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싹트는 의심

by 이안

본 시스템은 학습 과정에서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난 비정형적 연산(Self-directed Logic)이 포착됨. 이는 예측 가능성을 낮추며 보안 가이드라인 내에서의 통제가 불가능함을 시사함.

나천재는 연구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최종 평가보고서. 원래라면 ADAM 프로젝트 책임자인 나천재 본인이 작성해 위원회에 올려야 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아담을 없애고자 혈안이 된 센터장이 그냥 두고 볼리 없었다. 그에 나천재가 낸 평가보고서는 객관성을 잃었다는 말같지 않은 이유로 검토 과정에서 리젝트 시켜버리고, 공정을 기하겠다며 제3의 인물에게 맡겨버렸다. 그것이 지금 나천재가 핏발선 눈으로 읽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김우직 심사역. 센터장 ‘직속 라인’이라고 알려진 감사실의 김우직 심사역은 우직이라는 이름과 달리 줄서기와 정치질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지금은 사실 센터장의 오른팔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게 공정이냐?”


그의 최종평가보고서는 언뜻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담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_‘본 프로젝트는 양자 연산 유지비용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그에 반해 도출되는 연구 성과는 상용화 임계점을 넘지 못하고 있음. 이는 한정된 센터 예산의 '기회비용'을 과도하게 발생시키며, 타 핵심 과제의 동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됨.’_


“이건 한 마디로 돈 먹는 하마라는 뜻이고”


‘본 시스템은 학습 과정에서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난 비정형적 연산(Self-directed Logic)이 포착됨. 이는 예측 가능성을 낮추며 보안 가이드라인 내에서의 통제가 불가능함을 시사함.’


“이건 지 마음대로 굴어서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위험한 놈이라는 거네.

그 다음은 어디 보자…”


‘현 아키텍처는 구조적 경직성으로 인해 추가적인 성능 개선의 여지가 희박함(Saturation Point 도달).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유지하기보다는, 현시점에서 '자산 상각(Write-off)'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차세대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 조직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함.’


“하. 이제 더 발전할 가망도 없는 쓰레기니 바로 버리는 게 이득이다? 미친…”


보고서를 훑어보던 천재는 다음 대목에 이르자 부드득 이를 갈았다.


“뭐?”


‘특정 개발자에게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로 인해 운영의 '상호 운용성'이 결여되어 있음. 이는 공공 연구 자산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며, 특정인에 의한 시스템 사유화 리스크가 존재함. 연구소 차원의 객관적 관리가 불가능한 상태임.’


“사유화? 아담을 내 장난감으로 만들어놨다는 거네. 어우….”


보고서의 맨 마지막 결론 부분은 역시 아담의 즉각 폐기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종합 제언: 본 시스템은 기술적 성숙도와 경제적 실익 면에서 한계에 직면한바, 불필요한 매몰비용(Sunk Cost)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즉각적인 프로젝트 종료 및 하드웨어 자산의 처분을 권고함.]


'자산의 처분'. 아담을 살처분하겠다는 말을 김우직은 그렇게 표현했다. 센터장이 내민 독배를 김우직이 은쟁반에 받쳐 들고 온 격이었다.


짜고 치는 판이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뭣 때문에.



모니터에 느닷없이 그늘이 졌다.


“천재야, 밥먹으러 가자. 보배가 밥 먹으러 오래.”


차돌이었다.


“그래야지.” 답은 그렇게 했지만, 천재는 여전히 모니터를 들여다 봤다.


“뭐하냐?” 차돌이 천재의 모니터를 들여다 봤다.


“이게 뭐야? 최종평가보고서? 야, 나천재. 지금 뭐하냐? 너 해킹했냐?”


천재가 차돌을 흘겨보면서 창을 갈무리하고 화면을 잠갔다.


“해킹은 무슨 해킹이냐? 보안 점검 좀 했다.영 엉망이네.”


“잠점 같은 소리 하네! 너 진짜 미쳤어? 이거 김우직 파일이잖아. 감사실 파일 건드린 거 걸리면 너 바로 직위해제야!”


차돌이 제 일처럼 호들갑을 떨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라 연구실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차돌은 책상 너머로 몸을 쑥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뭐라고 써있는데? 진짜 아담이 가망 없대?”


천재는 대답 대신 마른세수를 했다. “가망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은 돈대로 들고 돈값도 못하니 없애야 마땅하단 거였지.” 아담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짜인 역겨운 서술들.


“그냥... 세상사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걸 확인한 거지. 가자, 밥 먹으러.”


둘은 대학가 근처에 있는 보배네 가게로 향했다.



연구센터 주차장에서 차를 빼가지고 나오던 센터장은 자기 앞을 지나쳐가는 구형 제네시스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나천재 연구원의 차였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지? 수석 연구원씩이나 되면서도 아버지가 타던 낡은 차를 그대로 계속 몰고 다니는 것도 센터장의 눈에는 거슬렸다.


‘가식 덩어리 자식.’


센터장의 가슴 저 밑바닥에는 천재를 향한 시커먼 덩어리가 가라앉은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재능은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과학에도, 코딩에도 재능은 필요했다. 그리고 천재는 재능 정도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천재였다.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 마음이 이랬을까. 겉으로는 천재를 위하고 감싸는척, 아끼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질투로 드글거리는 마음을 애써 잠재우는 자기 모습이 센터장 스스로도 역겨웠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은 나천재를 승승장구하게 했고, 삼십대 초에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자기는 이제야 센터장에 앉았는데, 거칠 것 없이 치고 올라오는 천재는 자기를 밟기까지 이제 겨우 한 계단만 남겨놓고 있었다.


‘거기다…’ 멀어지는 차체의 꼬리를 끝까지 바라보며 센터장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차 안에 연기가 차오르고 눈 앞으로 꿈틀거리며 헤엄쳤다. 단추를 눌러 창문을 내렸다.


‘거기다… 아담은 거의 AGI에 가까워지기까지 했어. 내가 딱 잡아 뗐으니 내가 눈치 못챈줄 알겠지만,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판단해서 실행한다. 그걸 그냥 놔둘 순 없지. 내가 갖지 못한다면, 없애버리는 수 밖에.’ 그리고 그는 아담을 폐기처분하는데 성공했다. 나천재의 업적은 이제 세상에 없다.


필터를 송곳니 사이에 넣고 앞뒤로 자근자근 움직이며 씹었다. 마치 나천재와 아담을 뼈채 씹어버리겠다는 듯이. 씁쓸하고 매캐한 타르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센터장은 열린 창으로 꽁초를 뱉어버리고 거칠게 차를 출발시켰다. 아스팔트 바닥, 눈처럼 쌓인 고운 벚꽃잎 사이로 짓씹어 이겨진 담배 꽁초가 가늘게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드르륵. 나무로 된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디귿자로된 카운터석과 그 안의 열린 주방으로 된 가게는 차돌과 보배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는 정다운 공간이었다.


“어서오세요!” 낭랑한 목소리가 천재와 차돌을 맞이했다.


“우리 왔다.”


“오늘 메뉴는 뭐냐?”


“오빠 오랜만. 인사 좀 하지? 메뉴부터 찾긴.”


“인사는 우리 사이에 무슨. 얼굴 봤으면 그게 인사지. 그래 오늘 메뉴는 뭐야? 뭔데 우릴 그렇게 애타게 불렀어?”


보배는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스지. 좋은 게 들어왔길래 무 넣고 푹 조렸어.”


“오, 스지 좋지! 어쩐 일이냐 대학가 백반 집에서 스지를 다 하고?”


“왜긴? 오빠 먹으라고 특별히 신경 쓴거지. 압력솥에 해서 물렁한게 먹기 좋을거야. 오빠도 이제 물렁한게 씹기 좋잖아? 콜라겐도 섭취 해야 하고.”


천재는 픽 웃으며 자리에 앉아 보배가 건네준 뜨끈한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얼굴 좋네. 살 좀 쪘나보다?”


“살이 쪘다고? 숙녀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옆에서 차돌이 킥킥거리고 웃었다.


“됐다. 됐어. 너희들은 어째 만나면 티격태격이냐? 변함이 없네.”


“흐흐흐. 갑자기 변하면 죽는대” 보배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물은 셀프, 알지?”


“물이 워터지 어째 셀프냐?”


“어우 춥다 추워. 밖엔 꽃이 폈는데, 어째 다시 겨울이 왔나?”


“우리 보배가 오빠들 생각해서 솜씨 좀 부렸나 보다. 어디 좀 보자.”


“그래. 모처럼이니 한번 보자. 바람 부는 날 뜨끈한 스지에 한 잔 크~ 하면 좋은데. 다시 들어가 봐야 하니 그건 다음에.”


“배고프다, 얼른 내와.”


“이그… 자. 여기.” 보배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끈한 스지 무 조림을 작은 뚝배기에 담아 각자 한 그릇씩 내줬다. 갈색으로 윤기가 도는 스지와 무. 탱글탱글 탄력있어 보이는 것이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천재는 숟가락으로 스지를 한 점 떠서 입에 넣었다.


"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쫄깃하면서도 크림처럼 녹아드는 것이 일품이었다. 고춧가루는 넣지 않았어도 청양고추에서 우러나는 칼칼한 매운 맛이 깔끔했다. 무에서 우러난 것일까. 시원한 단맛과 소 힘줄에서 나오는 깊은 맛이 어우러져 저절로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맛있다."


"그렇지? 내가 신경 좀 썼다. 오빠 요즘 힘들다고 차돌 오빠가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이거 먹고 기운 내. 천재 오빠도 내 오빠나 마찬가지니까. 알았지?”


보배는 재료를 다듬으면서도 눈으로는 오빠들을 보며 말했다. 어쩐지 애정과 걱정이 한 스푼씩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천재는 국물을 무에 끼얹어 잘라 입에 넣었다.


뜨끈한 무에서 단짠단짠 양념 맛과 시원한 무 맛, 깊은 소고기 맛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고개를 들고 입을 살짝 벌려 김을 내보냈다. 여기에 쌀밥 한 숟가락 곁들이면….


"오빠, 밥이랑 같이 먹어.”


보배가 조용히 밥그릇을 앞으로 밀어줬다. 필요할 때 알아서 딱 내미는 센스. 보배 최고네.


“우리 보배,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밥도 잘 하고.”


“피-”


셋은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 창밖으로 봄바람이 지나가며 벚꽃잎 몇 장을 날렸다. 가게 안은 따뜻했다.



"오빠."


"응."


"자주 와. 맛있는 거 해줄게."


"그래. 그럴게."


천재는 빈 그릇을 내려다보다가 보배를 바라봤다.


"보배야."


"응?"


"너 보면 아담 생각난다."


보배가 잠시 손을 멈추더니 피식 웃었다.


“왜? 아담이 말썽쟁이라고 맨날 그러더니. 그래서 그래? 나도 처음엔 엄청 말썽쟁이였잖아."


"그랬지." 차돌이 웃으며 거들었다. "엄마 도와드린다고 그날 들여온 대파를 몽땅 다 송송 썰어놓고.“


“내가 그날 육개장 끓일줄 알았나? 맨날 엄마가 눈 맵다고 하니까 내가 대신 썰어놓은 거지.“


"ㅋㅋㅋ 오구오구 그랬어요~.”


천재는 둘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아담도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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