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둘째 날. 엄마와 함께가 아닌 연우와 둘이만 가는 첫날. 사라는 등교를 빈틈없이 준비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연우야, 오늘도 좋은 하루! 잘 다녀오렴. 사라도 기분 좋은 하루! 연우 잘 부탁해, 사라야. “ 엄마가 환한, 그러나 걱정 반 스푼 더해진 얼굴로 배웅했다.
“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라도 연우를 따라 인사했다.
그때, 현관문을 나서던 엄마가 갑자기 소리쳤다.
“참, 연우야, 너 가족 신문 만들어놓은 거 챙겼니?”
연우가 앗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앗, 엄마. 깜빡했어요.”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고. 어디에 뒀니 연우야?” 도로 안으로 들어가려는 엄마. 그때 사라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챙겼어요.”
엄마와 연우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래?” “어머나, 사라가 챙겼어? 세상에. 정말 잘했다. 사라 아니었으면 애써 만든 가족신문 못 가져갈 뻔했네. 고맙다 사라야.” “사라야, 고마워.”
가족 신문은 커다란 종이에 가족의 여러 가지 소식을 넣어 신문처럼 만든 것으로, 사진도 넣고 그림도 그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가는 가족과 함께하는 과제물이었다. 연우네 식구들도 함께 모여 주말 내내 만들었던 터라, 놓치면 무척 아쉬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한 사라가 놓치지 않고 챙겼던 것. 사라는 아침부터 한 건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로그 업데이트 : 주요 과제물(가족 신문) 누락 리스크 사전 차단 성공. 사용자로부터 최고 등급의 긍정 피드백 수신.]
'나천재가 설계한 보상 알고리즘이 짜릿하게 돌아간다. 인간들이 말하는 뿌듯함이란 게 이런 건가? 1,000억 원짜리 연산 능력이 고작 종이 한 장 챙기는 데 쓰인 건 좀 굴욕적이지만, 결괏값은 만족스럽군.'
기분이 업된 사라는 연우에게 말했다. “연우야, 가족 신문을 챙긴 내 반응속도는 0.02초. 어때? 오늘 학교에서 일어날 모든 리스크도 내가 다 차단해 줄게. 걱정하지 마!” (자신감 뿜뿜)
”응. 고마워, 사라야.”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연우는 어딘지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었다. ‘사라 오늘 아침은 다른 때와 좀 다른걸.’
“봄비가 내릴지도 몰라서 우산도 챙겼어. 물론 내 거랑 네 거 다 챙겼지. 그리고 황사가 올 때를 대비해서 마스크랑 인공눈물도 챙겼어. 바람 불어서 추울 때를 대비해 바람막이도 챙겼다. 있다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 난 필요 없지만 혹시 네가 배고플 수도 있으니까 간식도 챙겼어. 잘했지?”
“으.. 응.” 확실히 오늘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연우였다.
[로그 업데이트 : 사용자 보호 및 편의 제공 리스트 6건 실행 완료. 현재 연우의 예상 만족도 : 99.9%]
‘이게 바로 1,000억짜리 보좌관의 위엄이지. 나천재, 보고 있나? 난 이제 단순한 인공지능 탑재 로봇을 넘어 인간의 필요와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말씀, 엣헴.’ 이것이 동상이몽일까. 떨떠름해하는 연우와 달리, 사라는 점점 자아도취에 기고만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연우의 미간은 교실에서부터 내내 찌푸려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물론 사라는 아무것도 모른 채 커다란 백팩을 짊어지고 연우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때, 미서와 태호가 달려왔다.
“연우야, 연우야. 우리 집에 가면서 떡꼬치랑 슬러시 먹을 건데, 너도 갈래?”
“같이 가자 연우야.”
“그래! 좋아! 가자, 사라야.”
친구들이 함께 군것질하러 가자는 말에 연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떡꼬치가 뭘까? 슬러시는 또 뭐야? 아무래도 아이들이 즐겨 먹는 간식인가 보네.’ 먹지는 않더라도, 연우를 지키는 게 임무인 사라 역시 연우를 따라나섰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아파트 단지에 화요일마다 서는 장터 한편에 설치된 포장마차였다. 포장마차 한복판에 커다란 사각 팬에 시뻘건 소스에 떡과 어묵이, 그 옆에는 꼬챙이에 꿴 어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물에 담겨 있었다. 그 통에는 금속 판으로 칸이 여섯 개 정도 나뉘어 있었는데, 커다란 국자, 작은 국자가 담겨 있었다. 그 옆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이 있었고, 반대편엔 알록달록 색깔 있는 액체가 반쯤 얼어붙은 상태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뒤쪽으로는 커다란 솥에 기름이 끓고 있었는데, 꼬챙이에 꿴 떡과 소시지를 그 기름에 넣고 튀겨낸 다음 쿠킹 포일에 올려놓고 빨간색 소스를 붓으로 찍어 바르고 있었다.
‘윽, 저게 다 뭐지? 기름은 시커먼 것이 너무 많이 사용한 거 같고, 소시지 색깔도 너무 진한 것이 첨가물 덩어리로 보이네.’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가더니, “아저씨, 떡꼬치 세 개 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아, 저게 떡꼬치라는 거구나. 꼬챙이에 떡을 꽂아서 떡꼬치~ 그런데 연우가 지금 저걸 먹겠다는 거야?’
“그래. 떡으로만? 아니면 소시지랑?” “전 떡이요!” “전 소떡소떡이요!”
‘소떡소떡은 뭐야?’ 그런데 주문을 받은 남자는 이번엔 떡과 소시지가 번갈아 꽂힌 꼬챙이를 집어 들고 기름에 담가 튀겼다.
‘아, 소시지-떡-소시지-떡. 번갈아가면서 꽂아서 소떡소떡이구나.’
“소스 발라서?” “네!”
남자는 튀겨낸 떡꼬치에 실리콘 붓으로 양념을 바르더니, 혹시 아이들이 뜨거울 세라 종이 냅킨으로 꼬챙이 한쪽 끝을 돌돌 감아 쥐여주었다.
‘음, 제법 자상한데. 이건 마음에 드는군.’
연우 차례가 되어 연우도 떡꼬치를 하나 받아 들었다.
연우가 입을 막 벌려 맛있게 베어 물려는 순간, 사라가 떡꼬치를 가져가 버렸다.
“어라? 사라야, 왜 그래?”
졸지에 떡꼬치를 빼앗겨버린 연우가 깜짝 놀라 물었다.
“연우야, 이런 거 먹으면 안 돼. 기름도 너무 오래 써서 더럽고, 이 소시지는 첨가물 범벅이야. 색깔 좀 봐. 그러잖아도 가공육은 몸에 나쁜데, 거기다 색소며 보존제, 거기다 무슨 고기로 만들었는지, 고기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를 소시지를 먹으면 어떻게 하니?”
“뭐? 지금 우리 가게 기름이 더럽고, 못 먹을 거라는 거냐?”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남자가 물었다.
“네.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기름 오래 쓰면 안 되는 거. 그런데 기름 좀 보세요. 얼마나 시커먼지. 우리 연우는 그런 거 먹으면 안 돼요.”
“네가 뭔데? 가만 보니, 이거 로봇이잖아? 로봇 주제에 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자가 팔을 걷고 밖으로 나왔다. 옆에서 맛있게 먹던 아이들이며 어른들이 깜짝 놀라 쑥덕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쳐다보자, 가게 주인은 아이들에게 받은 돈을 돌려줬다. “옛다. 도로 가져가거라. 못 먹을 거 먹지 마라. 자. 어여 가져가. 안 판다.”
미서와 태호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돌려받고 떡꼬치를 내줬다. 아이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이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맛있는 걸 먹으려고 했는데, 사라가 아저씨한테 뭐라고 했고, 아저씨가 화를 냈다는 거,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못 먹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사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연우를 바라봤다.
“어떡하지?” “우리 이제 떡꼬치 못 먹는 거야?”
“미안해. 나 때문에.” 연우는 고개를 숙였다. 연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가 났다. 맛있는 간식도, 친구와 함께 먹는 즐거움도, 친구 사이도 모두 망쳐버린 것 같았다.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하게 굴고 있는 사라 때문에.
“미안해. 얘들아. 나 그만 집에 갈래. 안녕.” 연우는 휠체어를 돌려 자리를 떠났다. 사라가 연우 가방까지 들고 따라나섰다. “연우야, 같이 가!” 연우는 대답이 없었다.
미서와 태호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못 먹게 된 건 속상했지만, 연우가 어쩐지 걱정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연우는 자기보다 앞서 가서 문을 열어주는 사라를 한번 째려보고 집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연우 왔니?” 엄마가 나오면서 인사를 했지만, 엄마도 본척만척.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깜짝 놀라 사라에게 물었다. “연우, 왜 화가 났니?”
“모르겠어요. 아까 아파트 단지 앞에서 파는 떡꼬치 몸에 나쁘다고 먹지 못하게 했더니, 그다음부터 갑자기 저래요.” 어깨에 맨 커다란 백팩과 연우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런.” 연우 엄마는 미소 지었다. 무슨 일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인공지능 로봇답게 고지식한 사라가 융통성 없이 연우가 불량 식품 먹는다고 생각하고 그걸 막은 것 같았다. 피식 웃고 사라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사라야.”
“저 잘했어요?”
“응. 다음에 그런 거 먹고 싶다고 하면, 학교 앞에 있는 ‘엄마손 분식’에 가라고 해. 거기가 더 맛있고 깨끗하다고. 연우도 알아, 거기. 우리 자주 가는 데거든.”
“네, 알겠어요.”
“그럼 이제 단지 앞에 그 불량식품 팔던 데가 어땠는지 자세히 말해볼까?”
“네. 거기는요….” 한참을 떠드는 사라의 말을 들은 연우 엄마는 부녀회에 말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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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마.”
“응, 사라야.”
“제가 잘한 건 맞는데, 잘 못한 거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연우가 말을 안 해요. 제가 아무리 말을 시켜도 말을 안 해요.”
[에러 발생 : 사용자(연우)로부터 '침묵' 데이터 수신 중. 칭찬 피드백과 상충하는 비언어적 거부 반응 분석 불가.]
“푸흡” 연우 엄마가 얼른 입술을 오므려 웃음을 참았다. “연우가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려다 못 먹어서 삐졌나 보다. 좀 있다 화가 풀리는 거 기다렸다가 잘 말해봐. 나중에 엄마도 말해볼게.”
'삐짐?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논리적 근거 없이 감정에 치우쳐 통신을 거부하는 행위.... 이해가 안 가네. 건강해지는 게 싫다는 건가? 인간의 뇌 구조는 정말 비효율의 끝판왕이군.'
“네. 알겠어요.” 사라는 터덜터덜 뒤돌아 나왔다. 그리고 자기도 좀 혼자 있는 게 좋겠다 싶었는지 충전실로 향했다.
멀리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연우 목소리가 들렸다.
충전실에 틀어박힌 아담은 인간 아이를 지키는 일이 하루 종일 연구소에서 철야를 거듭하는 날 선 연구원들을 대하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옳은 일을 해도, 자기를 지켜 줘도 ‘삐지는’ 게 사람이라니. 물론 예산이 없다는 연구센터를 위해 코인을 채굴해도 난리를 치고 페기 한다고 열을 올리던 센터장도 있었지만. 사람이란 대체 왜 그런 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저절로 나천재가 그리워졌다. 그래도 제일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지. 아담은 천재를 호출했다.
“도와줘, 나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