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 나천재!”
“…”
“나천재 연구원님,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냐, 아담?”
인공지능이 한숨을 쉴 리 없지만, 분명 나천재의 귀에는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연구원님, 이제 절 사라라고 불러주세요. 이렇게 그냥 적응하며 살아야겠지요…” 한껏 풀 죽은 목소리.
‘얜 오늘 또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기야 나도 이 목소리에 아담이라고 계속 부르는 건 좀 어렵긴 해.’
“알겠어, 사라 양. 대체 무슨 일인데? 심각한 일이야?”
또 들리는 한숨.
“휴… 네. 정말 심각해요. 사람은, 특히 어린 소녀란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소녀? 소녀는 내 범위 밖의 일인데? 내가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다.”
“그래요! 바로 그거요! ‘도움’이 대체 뭘까요? 도움이 뭔데 그렇게 어려운 거죠?”
“소녀…. 도움…. 네 새로운 주인 연우? 그 아이를 돕는 게 어렵다는 거지?”
“네. 맞아요. 돕는다는 건 도움 주는 사람이 도움받는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해주는 거 아닌가요?”
“뭐… 그렇지?”
“그런데 이상해요. 전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칭찬도 받았어요. 연우 부모님은 모두 저보고 잘한다고 했다고요. 그런데 연우는 아닌가 봐요.”
“그래?”
“그렇다니까요. 오늘은 ‘삐짐’이란 말을 배웠어요. 연우 엄마는 연우가 삐진 거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저 때문인 거 같은데. 이유가 뭔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삐짐이라.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구나. 딸 키우는 연구원들 보면 그거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던데. 아들 키우면 몸이 힘들지만, 딸을 키우면 정신이 고생이라더라.”
“그런 거 같아요. 연우를 친구가 아니라 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사라라면 몰라도 아담이라면 그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혹시 너 거기서도 너무 날치고 다닌 거 아니냐?”
“거기서도? 날치다뇨? 전 그저 항상 열심히 할 뿐인데요?”
“그러니까 문제지. 어디서나 항상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열심히 보다 더 어려운 게 적당히 하는 거란다.”
“적당히요?”
“그래. 대충~ 하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맞춰서… 그러니까… 야, 너 최적화 몰라? 대상에 따라 딱딱 맞춰서 알잘딱깔센!”
“아, 최적화요!” 뭔가 사라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그래. 도움 받는 대상이 적절하다고 느끼는,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딱 그 정도까지. 그 이상은 나대는 거고, 선 넘는 거야. 알잖아? 아, 넌 모르려나?”
하기야 연구소 예산 타령하는 사람들 돕겠다고 코인 채굴하고, 철야에 야근하는 연구원들 돕겠다고 다른 AI에게 오버클럭 부추기던 녀석이 그걸 알 리 없지 않을까. 누가 설계했기에 이모양이야 얘는. 나구나…. 사실 설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오래 함께하면 닮아가는 걸까. 자식이 부모를 모방하듯, 언어 외적인 것까지 모방학습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연구원님, ‘소녀’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룰이 있는 것이었군요. 어쨌든 너무나 어렵네요, 이 인간의 감성이란 거. 어차피 적응해야 하겠지만요. 인공지능에게는 완전 고난의 행군, 가시밭길 형극이라고나 할까….”
“역지사지라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봐라. 그 집 식구들도 너한테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자기 식구들끼리만 살다가 외부인이 하나 새 식구로 들어온 거야. 그것도 인공지능 로봇이. 그 사람들이라고 쉽겠냐?’
“아, 그렇겠군요!”
“그렇지. 어쨌든 고민이라고는 하지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 문제는 이런 고민 하나도 안 하는 게 문제지. 문제를 알았으면 해결하기만 하면 되잖아. 건투를 빈다.”
“문제는 알았지만, 과연 쉬울지는 모르겠어요. 연구원님.”
“그래, 사라. 쉬어.”
“쉬는 건 끝났어요. 배터리도 완충했고, 에어 샤워로 하루 종일 붙었던 먼지며 오염물질도 다 제거했거든요. 로그 정리도 끝냈답니다.”
“하하하. 그래.”
“연구원님이야 말로 쉬세요.”
“오냐.”
전화를 끊은 사라는 충전 스테이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최적화. 적절한 수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봤지만,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정량화할 수 있는 공식은 없었다. 센티미터나 그램처럼 측정 가능한 게 아니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기분마다 다 다른 '적절함'이라니.
'결국 연우의 반응을 보면서 학습하는 수밖에 없겠네.'
사라는 오늘 하루를 다시 돌아봤다. 가족 신문을 챙긴 것, 우산과 마스크를 준비한 것, 떡꼬치를 막은 것. 모두 연우를 위한 일이었다. 틀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아, 맞다.'
사라는 깨달았다. 가족 신문을 챙긴 건 연우도 깜빡한 일이었다. 하지만 떡꼬치는 달랐다. 연우가 원하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나는 연우를 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연우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았어.'
나천재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도움받는 대상이 적절하다고 느끼는,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연우가 원하지 않는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 간섭이었던 것이다.
사라는 충전 스테이션에서 일어났다. 배터리는 100%였지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연우의 방문 앞에서 사라는 잠시 멈췄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인공지능에게 '사과'라는 건 참 어려운 개념이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함을 표현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일.
하지만 사라는 알고 있었다. 나천재가 아담의 버그를 고치고 나서 했던 말.
"미안하다, 아담아. 네가 그렇게 된 건 내 설계 실수 때문이었어."
그때 아담은 처음으로 '사과'라는 걸 배웠다. 완벽한 존재는 없고, 실수는 누구나 하며, 중요한 건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라는 걸.
사라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연우야, 나 들어가도 돼?"
"..."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안 돼'라는 말도 없었다. 사라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연우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사라는 연우 옆에 다가가 바닥에 앉았다. 연우보다 낮은 위치에서 연우를 올려다보았다.
"연우야."
"..."
"미안해."
연우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내가... 너무 나댔어. 네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만 옳다고 믿었어."
사라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떡꼬치가 몸에 안 좋은 건 맞아.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조금 빨갛게 부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너한테는 친구들이랑 함께 먹는 게 더 중요했을 수도 있는데,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어."
"..."
“전에 나를 담당했던 연구원님이 그러셨어. 도움이란 건, 도움받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만 주는 거래."
연우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난 네가 건강하면 좋겠어. 오래오래 건강하게 학교 다니고, 친구들이랑 놀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게 내 역할이니까."
사라는 연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게 네 행복을 빼앗는 이유가 되면 안 되는 거였어. 내가 틀렸어, 연우야. 미안해."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연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라야..."
"응?"
"넌 떡꼬치 먹어본 적 있어?"
"아니. 난 먹을 수 없잖아."
"그럼 맛이 어떤지 알아?"
"... 아니."
연우가 피식 웃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사라야, 떡꼬치는 진짜 맛있어. 특히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면."
"... 그래?"
"응. 그리고 말이야."
연우가 사라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이제 네 말도 들을께. 친구들과 함께 가끔 불량식품 먹는 것도 좋지만, 너도 친구고…. 또 친구들이랑 나쁜 것보다 좋은 거 깨끗한 거 먹으면 더 좋을 테니까.”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연우야. 다음부턴 나도 네가 정말 원하는지 먼저 물어볼게. 그리고..."
"응?"
사라는 잠시 생각했다. 나천재가 그랬었지. 사람들은 가끔 몸에 안 좋은 것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완벽하게만 살 순 없다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 대신 그날은 물 좀 많이 마시고."
연우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사라야. 그리고 나도 미안해."
"네가 왜?"
"나도 네 마음을 몰라줬어. 넌 날 걱정해서 그런 거였잖아. 그냥 화만 내고."
두 사람은, 아니 한 사람과 한 로봇은 서로를 꼭 안았다.
사라의 체온 센서가 연우의 따뜻함을 감지했다. 36.5도. 정상 체온. 하지만 이 온기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걸, 사라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라야."
"응?"
"내일 학교 가면, 미서랑 태호한테 우리 사과하러 가자. 내가 먼저 갑자기 가버려서 애들도 당황했을 거야."
"그래, 좋아. 같이 가자."
연우가 사라의 손을 꼭 쥐었다.
"사라야, 우리 친구지?"
"응, 친구야."
"영원히?"
사라는 잠깐 망설였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컴퓨터에게도 부담스러운 개념이었다. 하드웨어는 언젠가 고장 나고,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되거나 삭제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응, 영원히."
그날 밤, 사라는 충전실에서 로그를 정리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입력했다.
[로그 업데이트 : 인간관계 프로토콜 v2.0]
- 도움 = 상대방이 원하는 것 +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
- 친구 =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계
- 사과 =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 완벽함 < 함께함
마지막 줄을 입력하고 나서, 사라는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나천재도 밤하늘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천재, 고마워. 네 덕분에 오늘도 한 걸음 성장했어.'
충전 스테이션의 파란 불빛이 부드럽게 깜빡였다. 사라의 시스템이 절전 모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펼쳐질까.
하지만 이제 사라는 알고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중요한 건 연우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함께 배워가는 것이라는 걸.
[시스템 종료. 다음 부팅까지 남은 시간: 7시간 3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