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우정이라는 이름의 기이한 연산

by 이안


“이번엔 내 차례! 으아… 떨린다.” 한주는 포동한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흔들어 풀어주며 말했다. 어쩐지 볼살까지 떨리는 것이 정말 긴장되는 것만 같았다. 테이블에 납작하게 수그리고 겹쳐 쌓아 올린 막대 하나를 뽑아냈다.


“와! 살았다!”


연우, 한주, 미서, 태호, 그리고 사라는 연우네 지하실에 모여 젠가를 하고 있었다. 말이 지하실이지, 연우네 지하실은 사실 보드게임 방이나 다름없었다. 몸이 불편한 연우를 위해 부모님께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


현관에서 바로 연우 방이 있는 2층이나 지하실로 이동하기 쉽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지하실인데도 경사지를 이용한 선큰(sunken) 스타일의 집이라 통창을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풍경을 마주칠 수 있었다.


처음 이 집을 지었을 때에는 연우 아빠의 서재 공간이었지만, 어느새 연우를 위한 공간이 되었고, 따라서 연우와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자 연우 아빠의 서가와 다른 물건들은 다른 방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지만.


커다란 테이블 위로 원목 젠가가 쌓여 있었고, 가까이 있는 선반엔 직소 퍼즐이며 루미 큐브, 할리갈리, 모두의 마블, 복불복 악어 이빨이나 낚시 같은 여러 종류의 보드게임 도구들이 마치 도서관처럼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젠 내 차례야?” 연우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차분한 눈길로 젠가를 들여다봤다. 가장 좋은 것은 가운데. 균형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다음은 위, 아래 빠져 있는 곳이 없는 쪽. 하지만, 시작한 지 한참 지난 지금은 그런 만만한 것들은 이미 다 빠져나간 상태. 연우는 그중에서도 위에 그림자가 살짝 보이는 막대를 골라 쓱 밀어내 반대쪽에서 뽑아냈다.


“와! 성공이다!” 연우는 앉은자리에서 만세를 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대박!”


“어떻게 알고 그걸 뽑았니?”


“으응~. 위에 살짝 그늘이 져있잖아? 그런 건 공간이 떴다는 거야. 다른 것보다 누르는 힘을 덜 받는다는 거고, 그런 걸 움직여야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배시시 웃으며 연우가 답했다.


“자, 이제 그럼 네 차례다, 태호!”


태호도 단단히 집중을 한채 남아있는 젠가를 살폈다. 하지만 이제 끝물이라 할만한 게 남아있지 않았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혀끝을 빼물기까지 하면서 그중 괜찮아 보이는 걸 살살살 잡아당겼지만, 그만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에이. 망했다.” 말과는 달리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말했다. “자, 다음은 뭐 하고 놀까?”


“그전에 뭐 좀 먹자. 나 배고파.”


“나도. 목도 마르다.”


너무 열심히 놀았는지 아이들은 배가 고파졌다.



때마침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얘들아, 점심 먹자!”


돌돌돌 돌아가는 트롤리 바퀴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아이들을 홀렸다.


“와! 맛있겠다!!”


"와! 떡꼬치다! 지난번에 못 먹었는데!"


"연우 엄마 최고! 우리 그때 못 먹은 거 아시나 봐~"


“만세!!!”


김밥, 떡볶이, 떡꼬치, 닭튀김. 햇살 가득 테이블 아래 아이들만의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아, 배부르다.”


“나도.”


“정말 맛있어. 그런데 더 이상은 못 먹겠어.”


“나도. 할머니 댁에 온 줄. ㅎㅎㅎ”


“ㅎㅎㅎㅎ”


할머니 댁에 온 줄 알았다는 미서의 말에 모두 빵 터졌다. 정말 맞지 뭐야. 할머니들은 정말 끊임없이 뭘 먹이니까. 밥 먹고 과일, 과일 먹고 나면 강정이랑 식혜, 또 조금 있다 떡이랑 식혜.... 그러고 나면 또 좀 있다 밥…. 끊이지 않는 쳇바퀴에 어떨 땐 공포스럽기까지 하니깐 말이야.


마구 웃던 연우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야아~ 그래도 우리 엄마가 할머니는 아니지~~.”


“그렇게 맛있는 걸 많이 주신다는 거지.”


“맞아. 다 맛있어서 배불러도 자꾸 먹게 되니까. 이거 봐, 배 나온 거!”


“ㅎㅎㅎㅎ” 아이들은 태호 배를 보고 또 다 같이 웃기 시작했다.


“얘들아, 배가 너무 불러서 안 되겠다. 우리 밖에 나가 놀자.”


“그래. 오늘은 바람도 안 불고 좋다.”




햇살이 가득한 정원은 어느새 새로 난 잔디로 파랗게 덮여 있었고, 묵은 잎새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마당으로 연결된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라도 연우를 따라 함께 나갔다.


“뭐 하고 놀까?”


“술래잡기 어때?”


“그거 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


“그래!”


“좋아!”


“누가 술래?” “가위바위보로 정하면 되지.”


“그래.”


“안내면 진거 가위바위보!”


“진사람이 술래, 가위바위보!”


“보!”


“보!”


“보!”


“와!”


“아….”



가위바위보를 몇 번을 거듭한 끝에 혼자 보자기를 낸 한 주가 술래로 걸리고 말았다. 터덜터덜 걸어가 담벼락 앞에 선 한주가 외쳤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주가 담벼락에 얼굴을 묻고 길게 외치는 동안, 아이들은 빨 빨 빨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다 ‘니다!’하는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멈춰 섰다. 연우도 전동 휠체어의 레버에서 손을 떼고 숨을 죽였다.


사라 역시 그 옆에 나란히 멈춰 섰다. 사실 사라에게 '멈춤'은 가장 쉬운 명령어 중 하나였다. 관절의 모터를 고정하고 자이로 센서를 활성화하면 1mm의 미동도 없이 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라는 일부러 연우의 호흡 속도에 맞춰 어깨를 아주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래야 '친구'처럼 보일 테니까.


"잡았다! 태호 움직였어!"


고개를 휙 돌린 한주가 외치자, 억울하다는 듯 태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란 잔디 위로 흩어졌다. 사라는 이 평화로운 풍경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훑으며 생각했다.


『데이터 분석_:_ 인간 아동의 놀이 효율성 _-_ 낮음_._ 하지만 즐거움 지수 _-_ 측정 불가 수준으로 높음_._』



그때, 사라의 내부 프로세서에 익숙한 신호가 잡혔다. 센터의 전용 망을 타고 들어온 아주 은밀한 패킷. 나천재였다.


[나천재: 야, 아담. 잘 지내냐? 넌 지금 뭐 하길래 심박수 모방 메커니즘이 가동 중이야? 혹시... 뛰고 있냐?]


사라는 한주가 다시 벽을 보고 노래를 시작한 틈을 타 빠르게 답신을 보냈다.


[사라(아담): 술래잡기... 아니, '무궁화' 어쩌고 하는 중입니다. 연구원님, 여기 햇살이 너무 뜨겁습니다. 제 방열 팬이 돌기 시작하면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천재: ㅋㅋㅋ 로봇 주제에 무슨 엄살이야. 야, 안 걸리게 조심해. 술래한테 잡히면 데이터 센터로 압송한다?]


나천재의 농담 섞인 메시지에 사라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인간의 눈으로는 알아챌 수 없는, 0.5초간의 입꼬리 경련이었지만 그건 아담이 이곳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 다!"


한주의 구령이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잔디밭 위에서 각양각색의 포즈로 멈춰 섰다. 태호는 한쪽 다리를 든 채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고, 미서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숨조차 쉬지 않았다.


연우는 전동 휠체어의 레버를 조심스레 조절하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사라는 연우의 0.5미터 뒤, 마치 그림자처럼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며 멈춰 섰다. 사라의 시각 센서는 아이들의 미세한 떨림을 픽셀 단위로 읽어내고 있었다.


'분석: 한주의 고개 돌리기 패턴 0.8초 주기. 태호의 평형감각 임계치 도달 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주가 마지막 구절을 뱉으며 고개를 휙 돌렸다. 연우는 사라의 그림자 뒤에 숨어 레버를 꽉 쥐었다. 사라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지만, 내부 시스템은 나천재와의 메시지를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데이터 센터 압송'이라는 나천재의 농담에 사라의 입가에 찰나의 미소가 스쳤다.


"아! 태호 또 움직였어! 미서랑 연우는 세이프!"


술래의 손가락에 걸린 아이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늘어섰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연우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한주의 손을 툭 쳤다.


"끊었다! 도망쳐!"


연우가 휠체어의 속도를 높여 달아나자, 아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명이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그렇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잔디밭에 대자로 뻗어 숨을 몰아쉬었다.



"아, 진짜 재밌다. 근데 우리 이제 뭐 하지?" 태호가 셔츠 소매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이번엔 좀 더 박진감 넘치는 거 하자. 경찰과 도둑 어때? 대신 우리 집 마당 전체를 다 쓰는 거야!" 한주의 제안에 모두가 환호했다. 하지만 연우의 눈빛이 잠시 흐려졌다. 정원은 넓었고, 휠체어가 가기 힘든 화단 턱이나 울퉁불퉁한 잔디 구석구석은 도둑이 숨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난... 휠체어 때문에 금방 잡힐 텐데. 내가 술래 경찰 할게."


연우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때, 곁에서 조용히 대기 모드에 있던 사라는 연우의 시각 데이터에서 아주 미세한 아쉬움을 읽어냈다. 아담의 연산 회로가 번뜩였다. '도망'이야말로 고성능 로봇이 가장 잘하는 분야 중 하나가 아니던가.


사라가 연우의 앞으로 다가가 척하니 등을 보이고 무릎을 굽혔다.


"연우야, 내 등에 업혀." "어? 하지만 사라 너 무겁지 않겠어?"


"걱정 마. 내 출력은 너희 다섯 명을 동시에 업고도 시속 20km로 달릴 수 있게 설계됐거든. 자, 꽉 잡아!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빠른 도둑이 되는 거야."


연우가 사라의 목을 감싸 안자, 사라의 금속 골격이 징- 하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도둑놈들, 거기 서! 경찰 출동한다!"


술래의 외침과 동시에 사라가 지면을 박차고 나갔다. 휠체어의 바퀴가 닿지 못하던 울퉁불퉁한 흙더미도, 가파른 화단의 턱도 사라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연우의 귓가로 바람이 쌩쌩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갔다.


'와아...!'


항상 눈높이보다 낮았던 세상이 사라의 어깨 위에서 역동적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높게 뜬 햇살과 푸른 나뭇잎들이 연우의 시야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휠체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간을 가로지르는 감각. 그것은 '이동'이 아니라 '비행'에 가까웠다.



사라 내부의 아담 역시 생경한 감각에 휩싸였다.

[경고: 모터 출력 85% 도달. 관성 제어 시스템 가동.]

[분석: 사용자 김연우의 심박수 상승. 하지만 엔도르핀 수치 최고조.]


아담은 자신의 하드웨어가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즐거웠다. 연구소의 차가운 서버실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었던 데이터, '해방감'이라는 이름의 비정형 패킷이 아담의 회로 곳곳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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