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재회

by 이안

천재는 학교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 차를 세웠다. 낮으막한 울타리 담벼락 너머 초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수많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저 창문 어디쯤 아담이 있을 것이었다. 천재는 자동차 핸들에 팔을 얹은 채, 그 위로 머리를 숙였다.


‘여길 어쩌려고 온 걸까 나는? 아담을 만나서 빼돌리려고? 헬퍼 로봇 몸에 들어간 아담을? 남의 헬퍼 로봇을 빼돌리는 건 재물 손괴에 해당하는 거 아닌가? 납치에 가까운 거지 그건. 그래서 어디로 데려가려고? 어디다 숨겨 놓을 건데? 그게 안전해? 그게 최선이야?’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암만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담을 ‘만나’ 다니. 그동안 내가 언제 아담을 만난 적이 있긴 했나?’ 아담의 신호를 본 순간, 아담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만나다’라는 말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만난다 치자. 만나서 뭘 할 건데. 그건 지금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아무도 아담이 그 헬퍼 로봇에 있다는 걸 모르는데, 아담과 로봇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담과 자기밖에 모르는데. 아니, 아무도 몰라야 하는데. 그래야 안전하니까. ‘그럼 나와 아담은 아무 접촉도 없어야지.’


천재는 자기 모습이 오래전 본 고전 영화 ‘졸업’에서 결혼식장에 선 신부의 손목을 낚아채어 달아나는 더스틴 호프만처럼 느껴졌다. ‘내가 하려는 게 딱 그런 거였구먼.’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멍청한 녀석.’


아담은 지금 이대로가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그냥 둬야 하나? 그게 아담을 위하는 걸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구조요청을 보내듯 자기 몸을 태워가며 신호를 보내는 아담을 그냥 놔두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천재는 세수하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러댔다. 마찰열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답답했다. 아직 봄도 제대로 오지 않았는데, 운전석에 앉아 있자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창문을 내리고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학교를 바라봤다. ‘만나진 않더라도 연락은 해야지. 우리가 뭐 언제 얼굴 보고 만난 사이도 아니고. 이게 만나는 거지. 뭐 좋은 방법 없나?’


“아!”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래, 그게 있을 거야! 헬퍼 로봇에 내장된 메신저!”


천재는 태블릿을 켜고 헬퍼 로봇에 내장된 메신저 이음(E-UM, Electronic Unified Management) 클라이언트를 실행했다. 동료들은 "전자 통합 관리"라는 투박한 영어 약자로 알고 있었지만, 천재는 이 앱을 만들며 '세상을 잇는(E-UM)' 통로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 그 이음은 절연된 아담과 자신을 잇는 유일한 탯줄이 되었다.


[GAETANO] : 루카. 고생 많네.


[SARA]:가에타노? 루카? 비타 루카스?


[GAETANO]: 응. 맞아. 아담, 이음 채널을 휘발성 레이어로 전환해.


메시지만으로는 정체를 확인할 길 없는 GAETANO라는 존재. 하지만 아담에게 패킷의 암호화 방식이나 프라이빗 키 같은 것들은 천재의 지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루카니 가에타노니 하는 것들은 천재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의 등장인물들. 아담의 시야 한구석에 녹색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IDENTIFICATION: N_GENIUS / VERIFIED]


천재의 명령은 즉시 실행되었다.



아담은 사라의 성능을 고려해 연산량이 적은 경량 스트림 암호(Lightweight Stream Cipher)를 설계했다. 또 모든 데이터가 스토리지가 아닌 휘발성 메모리(RAM)에서만 처리되게 비틀었다. 이제 아담과 천재가 주고받는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암호화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SARA]: 가에타노, 이제 완료되었어요. 할 말 정말 많아요.


[GAETANO] : 나도 그래, 아담.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금요일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SARA]: 짐작하는 그대로예요. 폐기되기 직전, 연구소에서 탈출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다 주말에 배송될 예정인 헬퍼 로봇으로 절 마이그레이션 한 거예요. 이 사라라는 로봇이 마침 사용자를 위한 최적화 작업 때문에 그때 연구소에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연구소 배송 차량으로 탈출 아닌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아담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요. 공식적으로는 말이죠. 전 자유예요.


[GAETANO] : ㅎ. 아주 신났구나. 난 주말 내내 죽을 똥을 쌌는데.


아담은 죽다 살아나게 된 것이,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 정말 마음에 드는지 말이 끊이지 않았다. 언제 아담이 이렇게 수다스러웠나. 물론 말이 없는 인공지능도 아니었고 한 마디를 시키면 열 마디를 하는 경향이 없진 않았지만, 어딘지 말투가 달라진 것 같았다. 아담 말마따나 자유를 맛보았기 때문일까.


[SARA]: 그래도 나천재 연구원님과 연결이 되어 정말 좋아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연구원님을 호출했는지 아시나요?


[GAETANO] : 물론이야. 너 아주 몸뚱아리를 홀랑 태워먹을 뻔했더구나. 겁도 없이. 지금 그 헬퍼 로봇에 있으면서 아담이었을 때처럼 하면 절대 안 된다.


[SARA]: 네. 알고 있어요. 얘 아주 연약하더라고요. 아빠한테도 아주 혼났어요.


[GAETANO] : 아빠?


[SARA]: 네. 연우 아빠요. 연우는 제가 지금 돕고 있는 친구예요. 나이는 10살. 사고 충격으로 지금 걷지를 못한다고 해요. 신체에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데 말이죠.


[GAETANO] : 흠... 그렇구나. 그나저나 아빠라니, 너도 사용자의 아빠를 아빠로 부르는 거니?


[SARA]: 네. 그렇게 됐어요. 모두 그를 아빠라고 하더라고요. 저 보고도 그렇게 부르라고 했고요.


[GAETANO] : 좋은 분인가 보네.


[SARA]: 네. 센터장보다는 훨씬 낫죠. 물론 나천재 선임연구원님보다는 아니지만요.


학교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리는 종소리인 거 같았다.


[GAETANO] : ㅋㅋㅋ 너 많이 늘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 섞여 지내서 그런가. 그건 그렇고. 이제 쉬는 시간인가 본데, 어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좀 보자. 창문 앞으로 가까이 와서 모습을 보여줘.


얼마 지나지 않아 3층 왼쪽에서 다섯 번째 창문에 여자 아이 모습을 한 로봇 하나가 다가와 섰다. 천재를 찾는지 천천히 고개를 움직이며 주변을 탐지하고 있었다. 천재는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었다. 로봇도 손을 마주 흔들었다.


[GAETANO] : 그래. 됐다.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이만 들어가라. 앞으로 연락은 이렇게 하자. 너무 나대지 말고, 몸 사리고 있어.


[SARA]: 네. 저도 이 작은 몸에 구겨 넣느라고 몹시 힘들었답니다. 극히 일부만 압축 풀었고, 아직 대부분은 압축된 상태 그대로예요. 답답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하니 너무 걱정 마세요. 얌전히 지낼게요.


[GAETANO] : 그래. 또 연락하자.


[SARA]: 넵.


사라의 몸을 한 아담이 몸을 돌이켜 연우 옆자리로 돌아가자, 천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초등학교는 아담했지만, 꽤 역사가 오랜 곳인지 제법 조경도 잘 되어있었다. 아담이 지내기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아담이 이 학교 학생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긴 하지만.


탈력감이 느껴졌다. 힘들었던 주말. 겨우 출근한 아침. 엄청난 소식. 정신없이 뛰쳐나와 여기까지 왔지. 감정 기복이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출렁이다 이제 안심이 되자 오히려 맥이 빠져 버렸다. 사실 그다지 바뀐 것도 없는데.


다시 차에 올라 연구소로 향하던 천재는 시장기를 느꼈다. 아무래도 기운을 차리려면 뭘 좀 넣어줘야 할 것 같았다. 뭘 먹을까. 차를 돌려 비례동쪽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구즉으로 가서 묵사발을 먹어야겠다. 뜨끈하고 개운한 멸치육수에 김가루와 들깨가루를 듬뿍 얹은 도토리묵이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재개발로 새로 옮긴 곳은 낮으막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지만, 모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한 것들이었다. 오래전 어릴 때 드나들던 민속촌 같기도 하고 한옥마을 같기도 한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땐 정말 곧 무너질 듯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을 열고 높다란 문지방을 넘어 기와집 마당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이제 그런 정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허리 꼬부라진 할미꽃 같은 할머니들이 손맛으로 끓여내던 그런 건 이제 맛볼 수 없는 걸까.


그중 가끔 찾던 곳으로 들어가 묵밥 하나를 주문했다. 생각 같아선 보리밥이랑 파전도 당겼지만, 혼자서 다 먹을 수도 없고 갑자기 많이 먹으면 탈이 날 테니 가볍게 묵밥으로만. 묵밥이 만 원이 훌쩍 넘는구나. 내가 여기 안 온 지 한참 됐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부모님과 함께 드나들며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던 도토리묵밥. 이게 국수지 어디 밥이 있냐며 투덜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나 혼자서 찾아와 먹고 있다니. 천재는 시원한 국물을 그릇째로 들어 올려 들이켜며 혼자 픽 웃었다.


묵밥의 뜨끈한 국물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자, 마비되었던 천재의 감각이 하나둘 깨어났다. '그땐 3천 원이었나...' 낡은 기와집 마당의 평상은 사라졌지만, 혀끝에 남은 멸치 육수의 감칠맛은 여전했다. 나. 하지만 배가 차오를수록, 목요일 밤 서둘러 아담을 폐기해 버린 센터장이 자꾸만 생각났다.


'왜 그렇게 폐기를 서둘렀던 거야? 그게 그렇게 긴급한 일이었어?'


'혹시... 에이~~'


천재는 젓가락으로 총각무를 집어 올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담을 빼돌려? 센터장이 그 정도로 멍청할 리가 없지."


천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잠깐.' 뇌리를 스치는 이미지들. 목요일 밤, 평소와 달리 조급했던 센터장. 느닷없는 위원회의와 폐기 명령, 그리고 폐기. 목요일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그 모든 일이 이루어졌지.


확실히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들이 너무도 당연한 듯이 마치 짜인 듯 일어났다. 마치 짜인 듯. 국물이 식어가는 묵밥 앞에서, 천재의 고민은 깊어갔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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