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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22. 2024

나선이의 공짜 점심 사건

콩트로 배우는 경제

이 글은 오래 전 대한상공회의소의 청소년 경제교육 사이트 <하이경제>에 연재하였던 [콩트경제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약간 다듬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나선이의 공짜 점심 사건


독고 팽! 그 남자아이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졌다. 그에게 그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는 단지 왼손으로  하얀 내 팔을 잡고 동시에 자신의 오른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을 뿐이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졌다. 내가 잠깐 귀머거리가 된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리마저, 죽은 듯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마치 스톱 모션에 걸린 비디오 화면처럼. 


레스토랑 안에 흐르던 사랑스런 아이유의 노래도, 사람들의 마른 웃음소리도,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의 소음도, 미세먼지 섞인 공기의 움직임도, 일순간에 전기 끊긴 도시처럼, 깊은 정적 속에 잠겼다.      


창 밖을 내다보니 길 가던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무표정한 자세로 굳어 있었다. 짜장면을 배달하던 번개 아저씨의 오토바이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채, 멋지게 커브를 돌다가 딱 멎었다. 비둘기 세 마리는 움직이지 않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경찰관은 교통신호를 위반한 자가용을 세우고 벌칙금 딱지를 발부하려던 참이었다. 경관에게 변명과 항의하던 운전사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멈춰 있었다. 레스토랑 주인은 카운터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던 중 얼어붙었고, 꽃미남 종업원은 다른 테이블의 손님에게 물을 따르던 참이었다. 그의 주전자에서 흘러나온 물이 아롱아롱 방울진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에 참여한 것처럼 일시에 <동작그만>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내 입이 딱 벌어졌다.      

 



이 기이한 사건의 발단은 경제학 원론 강의실에서 비롯되었다. 봄날 오전의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강의실에서 인자한 미소의 교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희소성의 원칙이란, 좋은 것을 하나 더 가지려면, 다른 것을 하나 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돈, 에너지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선택은 곧 포기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어로 하면 To choose is to lose 라고 할까요. 이처럼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대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을 <희소성의 원칙>이라고 말합니다. 이 희소성의 원칙은 종종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님 설명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뒤에서 “나선이 또 나선다”라고 킥킥거렸다. (아 참, 내 소개가 늦었다. 낭랑 19세인 내 이름은 조나선이다. 난 강의시간에 질문도 많고 학과 일에 앞장 설 때도 많다. 그래서 우리 과에서 나를 두고 <나선이 또 나선다>라는 말로 종종 핀잔을 준다.) 

 

“교수님! 어느 남자 선배가 자꾸 저한테 점심을 사주겠다고 제안하는데요. 이 경우에 제가 돈 내는 게 아니니까, 저한테는 공짜 점심이 되는 것 아닌가요?” 

 

“나선 양이 그 점심 제안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그 선배는 나선 양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제안을 했겠죠. 아마 그 선배는 나선 양과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재미난 얘기를 동원하여 점심 데이트를 오래 끌려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점심시간은 더 길어지고, 그만큼 나선 양이 경제학을 공부할 시간은 줄어들겠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사주는 점심이라면 공짜가 될 수 있나요?” 


“나선 양이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 점심도 공짜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든지, 점심을 먹기 위해선 먹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우리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선 양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점심은 행복한 마음으로 비용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그래도 공짜는 아닌 셈입니다.”      


거기서 수업이 끝났다. 사랑이나 우정을 위한 시간도 경제학적 의미에서 비용과 편익의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방을 챙기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하고 쳤다. 그가 바로 독고 팽이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나선아, 나는 너에게 진짜 공짜 점심을 제공할 수 있어.”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난 그때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남자가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할 때 뭔가 흥미를 끌만한 말을 던지곤 하니까. 


“미안하지만 내일 중간 퀴즈시험이 두 개나 있어. 너랑 점심 먹을 시간이 별로 없겠다. 공부해야 하니까.” 내가 말했다.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 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며 앞장섰다. 하긴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니까. 그래서 독고 팽과 내가 학교 앞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게 된 것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을 기다릴 때 독고 팽이 부끄러운 시선으로 말했다. “사실...난 널 전부터 좋아했어.”

 

헉, 느닷없는 사랑의 고백이라니...

아무래도 길고 귀찮은 점심시간이 될 것 같았다. 

난 얼른 둘러댔다.      


“야, 독고 팽. 너 아까 나한테 오늘 진짜 공짜 점심을 산다고 했잖아.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 나 시

험 공부해야 해.”      


그러자 그가 말했다. “사실 내겐 이상한 재주가 있어. 공짜 점심을 만드는 재주야. 아까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야, 웃기지 마.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 보상한다는 거니. 점심 식사 비용은 네가 내는 거지만 공부할 시간은 자꾸 흘러가잖아!” 


 “난 시간을 멈출 수 있어.”


“뭐?”     


시간을 멈추다니! 나는 독고 팽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아니면 머리가 약간 이상하거나...     


그때 그가 투박한 왼손으로 눈부시게 고운 내 팔을 잡더니 동시에 오른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지고 우주가 정지되었다.           




 세상에나... 


“어때, 나선아, 재미있지? 네가 원한다면 지금 이 공간에서 마음껏 시험공부를 해도 돼. 시간은 멈췄어. 흐르지 않아. 너와 나는 멈춘 세상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도 된다. 공부도 충분히 하고 나서 다시 시간을 흘러가게 하면 시간은 멈춘 시점에서 다시 흘러가는 거야. 그러니 이 안에서의 시간은 완전 공짜야. 그리고 또 있어. 여기서 우리가 조용히 걸어 나가면, 식사 값을 내지 않고도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어. 나중에 주인과 종업원이 어리둥절하겠지. 우리가 연기처럼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말이야. 이게 공짜 점심이 아니고 뭐겠니?”     


“독고 팽! 너 정말 웃긴다. 그런데 나 지금 머리가 아파. 이거 꿈이지?”      


“절대 꿈이 아냐, 증명해 보일게. 자,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그리고 여기서 바람처럼 사라지자.” 

 

내가 뭐라고 항의도 하기 전에 그 애가 내 팔을 끌어당겼다. 나는 얼떨결에 그를 따라 식당을 나섰다. 시간이 멈춘 탓에 솜사탕 줄기처럼 뿌옇게 실내 공간에 걸린 에어컨 바람 줄기가 내 뺨을 스치며 찢어졌다. 거리로 나왔다. 점심 값도 내지 않고서! 약간 꺼림했으나, 한편으로는 스릴 있었다. 


독고 팽! 너 진짜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그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세상이 잠깐 깜박거리며 부르르 떨리더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짜장면을 배달하던 번개 오토바이 아저씨는 커브를 성공적으로 돌았다. 그러나 갑자기 보도 위에 펑 하고 나타난 우리를 발견하곤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그만 가로수에 충돌했다. 경찰관은 교통 딱지를 무사히 발부했다. 그 위로 비둘기들이 멀뚱거리며 날아갔다. 내가 꿈에서 깨어난 것인지, 세상이 꿈에서 깨어난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잠시 후, 독고 팽은 “시험공부 열심히 해. 다음에 보자”라고 외치곤 도망치듯 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차츰 제 정신이 돌아왔다. 


그때였다. 내가 내 가방을 레스토랑에 두고 온 걸 깨달은 것은! 너무 황당한 일이 벌어져 그만 깜박 잊고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안돼! 가방 안에 시험공부 해야 할 책과 노트가 있단 말야! 야, 독고 팽, 돌아와! 이런...흑...     


나는 독고 팽이 탄 버스를 향해 손가락을 마구 튕겼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혼자 레스토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가방을 찾으러.....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주인아저씨가 동그란 눈을 치켜뜨더니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아니, 이 학생, 여기 있었군! 음식값도 안 내고 감쪽같이 도망을 가!” 


“아저씨, 그게 아니라,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서 바래다주고 온 거여요. 제 가방 저기 있자나요. 돈을 안내긴 누가 안내요! 자, 여기 있어요!” 내가 말했다.      


“허허, 이거 참. 황당하군. 도망친 주제에 오히려 큰 소리네. 앞날이 창창한 대학생이니, 내 함 봐준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경찰에 고소했을 거야.”      


나는 공짜 점심을 얻어먹다 결국 개망신을 당했다. 게다가 독고 팽이 먹은 것까지 전부 내가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내내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시험공부는 단 한자도 못했다. 


그렇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확신하건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나 해리포터의 마법의 나라에서조차 공짜 점심은 없을 것이다. 내 경험이 그걸 웅변한다. 그리고 독고 팽! 나는 그 자식을 다시는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찐따같은 그 녀석도 응당한 댓가를 치러야 하니까. 흥, 공짜 점심이라니! 



[해설]


청소년 여러분! 우리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정지된 세계 안에서 시험공부를 충분히 하고 돌아올 수 있겠죠. 그러면 그만큼 시간을 버는 셈이니, 마음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간, 돈, 에너지 등 거의 모든 자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해, 우리는 늘 선택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이처럼 어떤 것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희소성의 원칙(=공짜 점심은 없다는 원리)라고 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은 신문 칼럼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종의 관용구가 되었습니다. 기억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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