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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22. 2024

잠의 제국, 악몽 프로젝트

콩트로 배우는 경제

이 글은 오래 전 대한상공회의소의 청소년 경제교육 사이트 <하이경제>에 연재하였던 [콩트경제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약간 다듬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잠의 제국, 악몽 프로젝트



“이기심이 없다면 세상은 평화롭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인데 어찌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대심판관이시여. 꿈은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인간들의 꿈을 지배하여 꿈속에서 지속적으로 인간들을 교화한다면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지금부터 잠의 제국에 들어오는 모든 인간에게 이기심을 버리도록 뼈 아픈 교훈의 악몽을 선사할까 합니다.”     


“자네를 <악몽의 사자(使者)>로 임명하니 부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길 바라네.”     


“은혜로운 대심판관이시여. 인간 세계의 행복을 위해 제게 주어진 <악몽의 권한>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잠의 제국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타파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악몽의 사자는 밤마다 수많은 인간의 꿈속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중압감을 주기 시작했다. 악몽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이기심을 버려라. 제발!!     


사람들은 아침마다 창백한 얼굴로 잠의 큰 소용돌이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어떤 사람은 밤새 너무 놀라 아침 식탁에 앉을 때까지도 베개를 끌어안고 있을 지경이 되었다.     


이윽고 자애와 관용이 세상에 넘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마다 무서운 악몽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일터에서 동료나 부하에게 함부로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사라졌다. 만인은 만인에게 순한 양이 되었다. 어린아이들마저 장난감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일이 없게 되었다. 바야흐로 미소와 친절이 넘치는 사회가 도래하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가자 이상하게도 우울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경제가 크게 침체하기 시작했다. 문을 닫는 기업이 늘어나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줄을 이었다.     


기업은 원래 이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체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자애롭게 된 상황에선 기업의 존재 가치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익을 내는 것은 나쁜 일이니까…. 타인의 행복만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더 이상 이익을 낼 수가 없었고 결국 생산에 필요한 물자를 살 돈도 마련할 길이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제 활동을 제대로 영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빈곤 속으로 잠겨갔다. 이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은 없어졌지만, 활기찬 꿈을 꾸는 사람도 더는 없었다. 현실 세계는 빈곤의 그림자에 그늘지고, 잠의 제국은 우울한 정적만 가득했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이 과거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인가?”     

대심판관이 악몽의 사자에게 물었다.     


“제가 보기엔 아직도 인간들이 사악한 마음을 다 버리지 못한 탓인가 하옵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좀 더 창의적인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자네의 악몽 프로젝트가 실시된 이후 지난 일 년 동안 인간들이 꾼 꿈을 분석한 <잠의 백서(白書)>가 여기 있다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기심을 없애기 위해 잠재의식을 통제한 순간부터 인간들의 <창의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군. 예전에는 인간들이 꿈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 일이 많았지. 예술이나 과학에서 꿈이 공헌한 사례가 무수히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0(제로) 상태라네. 아무래도 자네의 악몽 프로젝트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해….”     


“심판관이시여.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사라지고 이제 인간들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회 전체적으로 인간들의 후생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건가? 꿈을 꾸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과거에 비해 90% 이상 감소했어. 난 그들의 한숨 소리를 듣는 일에 아주 지쳐버렸다네.”     


“그럴 리가….” 악몽의 사자가 깊은 신음을 냈다.     


잠시 후 잠의 제국을 지배하는 심판관은 한 장의 편지를 꺼내더니 악몽의 사자에게 툭 던졌다.     


“이게 무엇이옵니까?” 악몽의 사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천국에 있는 어느 경제학자가 보낸 편지라네. 자세히 읽어보게나. 인간의 이기심을 제거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는군.”     


악몽의 사자는 편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잠의 제국 대심판관 나리 귀하


안녕하십니까?

귀하가 다스리는 잠의 제국이 날로 번창하길 바랍니다.     


저의 이름은 애덤 스미스입니다. 제가 지상에 머물던 시절 귀하의 제국으로부터 많은 신세를 진 바가 있습니다. 달콤하고 풍성하며, 모든 것을 증폭시키고 시간을 느리게 만들던 그 꿈의 나라! 귀하의 제국은 경제학을 연구하던 저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어려운 고비마다 새로운 힘을 얻게 해 준 훌륭한 안식처였습니다.     


그 보답으로 저는 <국부론>이나 <도덕 감정론> 같은 책을 집필할 때, 길고 따분한 부분을 삽입하여, 저의 책을 읽는 독자가 순식간에 잠의 제국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저는 인간 세계와 잠의 제국이 모두 깊은 정적의 그늘에 빠져 있음을 알고 큰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그 모든 원인이 잠의 제국에서 추진한 악몽 프로젝트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속세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벌이에 관한 관심 덕분입니다. 아무리 돼지 잡기, 맥주 양조, 빵 굽기 등을 즐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 그 일을 종일 하려 들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인간이 오직 이기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기적 본능이 친절한 마음, 박애심, 희생정신 같은 것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심성의 고귀한 측면에만 사회를 맡기고 미래를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능 중 가장 강한 본능인 이기심을 어떻게 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잘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친구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기심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선호하는 것은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 말은 엄청 충격적인 말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버릴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상의 인간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더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의 이기심을 욕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 본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공익(共益)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결실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 박애심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에 인간들이 깨끗하고 맛있고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잠의 제국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제거하기 위해 추진한 악몽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인간 세상에 커다란 침체와 불행을 초래했습니다. 지금 인간 세상의 재앙은 잠의 제국이 인간 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을 단칼에 잘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사람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할지 고민할 때 진정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     


부디 악몽 프로젝트를 시급히 중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상에서 애덤 스미스 드림    



그 뒤에 잠의 제국에서는 광범위하게 추진하던 악몽 프로젝트를 중지하기로 했다. 악몽의 사자는 더 이상 <악몽의 권한>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을 잠재의식의 감옥에서 다시 해방시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악몽 프로젝트 때문에 관용과 인정과 자애심에만 의존하게 되었던 사회는 점차 경제침체와 빈곤에서 벗어나 다시 회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상의 아침은 일터를 향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발걸음 소리로 다시 가득 찼다.     


요즘도 항상 착하기만 한 당신이 잠들면, 가끔 잠의 제국의 보이지 않는 사자(使者)가 전하는 몽환적인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마음 약한 당신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당신의 이기심도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자원이오.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남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기심은 아주 훌륭한 자원이라오.      


그러니 부디 안심하시고 그걸 사용하시오.

사용하시오….          


사용하라고. 제발!!! 



[해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이 사회가 존속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에도 이 세상은 존속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니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이런 사회야말로 투철한 희생정신에 기초한 사회보다 더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사회적 화합도 잘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서로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돕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런 사상을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표현으로 역설했습니다. 데이비드 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악의에 찬 말을 했지만,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곤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의 완전한 희생을 선택하는 것은 이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데이비드 흄은 균형감각을 지니고 인간의 본성을 파악했던 것이지요.          


스미스의 설명에 따르면, 자애심이란 사회를 감사와 애정이 넘치는 쾌적한 상태로 유지해 주기 때문에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란 그러한 요소가 없어도 존속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애심에 대해서는 남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내가 굳이 남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애심은 단순히 말하면 건물을 아름답게 치장해 주는 장식품 같은 것이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기심은 자유 시장 체제에서 경제 활동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나친 이기심은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건전한 자기중심주의, 즉, 건강한 이기심은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가정은 경제 원리의 기본 전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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