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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Jul 30. 2024

아내를 고공행진 주식으로 착각하는 남자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등장

인간이 얼마나 기이한 존재인지를 내게 각인시켜 준 책은, 1993년에 처음 번역·소개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교양을 키우려는 의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나는 가난하고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문득 남들처럼 주식투자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으로 갔다. 처음에는 주식투자에 관한 실무적인 투자 안내서를 고르려고 했다. 그런데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지닌 나라는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투자에 관한 지혜나 철학’이 담긴 책을 고르고 있었다. 일단 철학을 터득하고 실무를 접해야 고수가 되지 않겠니, 중얼거리며 혼자 근본주의에 물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선을 끈 책이 바로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이었다. 책을 들고 여기저기 읽어 보기 시작했다. 저자는 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인간과 세상을 보는 넓고 깊은 시각을 지녀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이토록 근본을 중시하다니!      


내가 감동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저자는 곧바로 과학, 인문학, 심리학, 문학 등의 책을 폭넓게 읽으라고 권유했다. 책의 뒷부분에는 추천 도서 목록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지닌 나는 책을 즉시 샀다.      


그리고 이 책에서 권장한 도서들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를 읽었다. 흥미로웠다. 다음으로 골라 읽은 책이 더 흥미로웠는데, 그게 바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읽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준 책이었다.      


       1993년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16년 재출간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지금은 널리 알려져 이 책의 내용을 잘 아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뇌과학이란 게 본격적으로 소개되지도 않았고 신경학과 심리학을 연결한 이론은 (나 같은) 무외한에게 생소한 영역이었다. 


놀라운 이야기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음악적인 재능도 놀라운 어느 지식인 남자가 뇌의 이상으로 사람들의 얼굴과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올리버 색스와 상담을 마친 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를 진짜 ‘모자’로 착각하고 아내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자기 머리 위에 모자를 쓰려고…… 책 제목을 일종의 비유로 믿다가, 말 그대로 진짜 사람 아내를 진짜 사물 모자로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책은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임상 기록, 다양한 병리학적인 기록을 엮은 것이다. 영화 메멘토에서와 같이 기억을 잃은 환자, 신체의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 환자, 갑자기 색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 환자 등등 기이한 사례들을 읽으며, 우리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의문에 빠지기 시작했다. 환자에 대한 임상 기록이라고 하여 전문용어와 딱딱한 기록체의 문장이라고 여길 수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올리버 색스의 훌륭함은 문학인이 아니면서도 정서적인 감동이 담긴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당시의 내게 충격이었다. 환자를 환자로만 관찰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다름없는 하나의 생명으로 대한다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훗날 깨달았다.


뇌가소성의 기적을 설명하는 책! 『기적을 부르는 뇌』

그 뒤로 나는 (바빠서) 뇌과학에 관한 책을 자주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0년 전 즈음 노먼 도이지의 『기적을 부르는 뇌』를 읽곤 다시 감동하였다. 


뇌의 적응력을 의미하는 ‘뇌가소성’에 관한 여러 사례를 접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었다. 


뇌졸중과 자폐, 뇌성마비 등 불치의 뇌 질환을 스스로 치유하는 기적적인 사례들은 읽을 때마다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비록 뇌 질환을 앓고 있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나쁜 습관이나 여러 불필요한 중독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일상에서 활력을 잃고 매너리즘에 젖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 변화의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는다. 


    



     

내게 교양 과학의 세계를 열어주었던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은 언젠가 분실하고 말았다. 누군가 빌려 간 것 같은데, 그게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새롭게 다른 제목(『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으로 포장되어 재출간되었다. 


주식투자는 여전히 못 하고 있다. 그 당시, 나 대신 아내가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책을-멀리-하자-철학의 대표주자인 아내는 어느 날 과감하게 20~30만 원을 동원하여 어느 주식을 네 주나 매입했다. 그러곤 세월이 흘렀다. 그때 아내가 매입한 주식은 이제 엄청나게 올라 몇 년 전에 액면 분할했다. 그때 그 주식 네 개가 지금은 200주가 되었다. 삼성전자라던가, 암튼 뭐라고 하던데, 하하. 지혜와 성공의 길라잡이 같은 건 전혀 참조하지 않고도, 아내는 높은 수익률을 달성한 셈이다. 그럼 나는?


나는, 여전히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지닌 나는, 그 뒤로 교양 과학에 물들어 암흑물질이나 양자 요동 같은 근원적이고 우주적인 고민에 빠져 지낸다.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 허먼 멜빌, 버지니아 울프, 이디스 워튼 등 고전 소설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가난하다.  


부자 아내와 사는 게 여간 다행이 아니다. 이따금 아내가 책 좀 걷어차라고 잔소리한다. 그래도 나는 인내한다.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마다, 나는 아내가 ‘고공행진하는 주식’이라고 뇌새김 한다. 가능하면 이런 착각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며 살고자 한다.      

  

출처 The New Yorker Cartoons - 캡션(대사)은 원작과 다르게 본인이 맘대로 고쳤음

                    


* 2021년에 쓴 것을 오늘 수정하여 여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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