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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Aug 05. 2024

살아있는 죽은 자의 책 읽기

『위험한 책읽기』를 읽고서

아침에 지하철 G 역을 향해 걸어가며 사람들 얼굴을 바라본다. 나는 저기에서 와서 이리로 걷는데, 그들은 이쪽에서 나와 저기로 향해 걸어간다. G 역에서 나온 사람들. 내가 지나 온 등 뒤의 어느 곳을 향해 걷는 사람들. 어느 남자는 무심하고 어느 여자는 입을 삐죽 내민 채 뭔가 곱씹는 표정이다. 어느 학생은 피곤한 기색인데, 그의 뒤에서 다가오는 직장인은 제법 강단 있어 보인다. 각자 무슨 이야기를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 같다. 그게 뭘까,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바쁜 일상에 묻혀 자신의 이야기를 잊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맥락이 없으며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듯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없고,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그들의 삶에는 관점이 부재하며, 그러므로 그들은 자아성찰적인 존재가 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뚜렷한 목표나 방향 설정 없이 끝없는 현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미래도, 이행해야 할 약속도 없어 보인다. 그들은 좀비, 즉 ‘걸어 다니는 사자(死者)’가 된 것이다. ... (중략) ...  

깊이 읽기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우리가 내러티브를 읽는 주된 목적은 데이터나 정보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 그리고 우리를 의문에 빠뜨리는 존재인 타자(우리 자신을 포함하는 타자)에게 과감히 진입하는 것이다. 독자인 우리는 쉽게 흔들리는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이야기 자체의 온기와 책을 덮을 때 ‘실제 세계’로 귀환하며 발견하게 되는 대안적 가능성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갈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로버트 P. 왁슬러의 『위험한 책읽기』(The Risk of Reading)에서 발췌    


로버트 P. 왁슬러는, 깊이 읽기가 없는 삶은 곧 '살아있는 죽은 자의 삶'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죽은 자의 삶은 '죽음과 다름없는 삶'이며, 그러니까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란 것.      

위험할 수 있음

그런가? 그래서 내가 …… 이따끔 걸어 다니며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가 '걸어 다니는 죽은 자'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걷지 않고 방 안에서 죽은 듯 누워 책을 읽기도 한다. 문제는 이 경우에 읽기에 실패하고 곧잘 잠의 나라로 건너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침대 독서이다. 하지만 침대 독서는 굉장히 유혹적이고 매력 있으며, 저세상에서는 모르겠으나, 이 세상에서는 가장 널리 퍼진 독서법 중 하나이다. 이야기 속으로 나른하게 걸어들어가는 죽여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치 꿈길을 걷는 듯 몽롱해지는데, 운이 좋으면, 진짜로 꿈과 소설 속 이야기가 뒤죽박죽 뒤섞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 경험하기 드문 그런 경험을 직접 경험할 때가 없지 않아 있다. (← 이 문장은 <이 달의 우수 좀비 문장>으로 선정된 바로 그 문장이다. ㅎㅎ)      


어쨌든 드문 경험을 하나 여기 소개하기로 한다.      


어느 날 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나는 포의 소설집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말을 타고 어느 낡은 저택의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꿈속의 나는 터벅터벅 걷고 있는 말의 안장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바로 <어셔가의 몰락>이었다. 잠들기 전에 읽던 대목을 지나서 그 뒤의 대목을 읽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둠이 내렸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었다. 주변 세상은 어두웠지만 어스름한 달빛이 내 손에 펼쳐진 그 책 『괴기담』의 문장에 도달했을 때에는 환히 빛났다. 그래서 몰입해서 빠질 수 있었다. 어쨌든 어둠 속에서도 (그리고 꿈속에서도) 그 소설 <어셔가의 몰락>을 계속 읽었던 것이다. 문득 고개를 드니, 어느 낡은 저택의 안마당에 들어와 있었다. 오랜 친구와 그의 여동생이 사는 저택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며칠 뒤에 나는 다시 포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꿈속에서 읽었던 후반부의 문장들이 꿈에서 깨어나 읽는 문장과 한치의 차이도 없이 동일했던 것이다.      


음, 솔직히 젊은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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