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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Aug 26. 2024

죽음에 대하여, 별 쓸모없는 단상

    

키케로는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음을 대비하는 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몽테뉴 수상록에 적혀 있는 말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꼭 철학이 아니어도 좋다. 죽음을 의연하게 대비하도록 하는 건 그게 뭐라도 ‘철학적’인 것 같다. 영화도 좋고 드라마여도 좋다. 소설에서도 죽음을 배울 수 있다. 아니면, 그저 지인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도 죽음을 배울 수 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명언을 많이 남겼다.
“죽음은 탄탈로스의 바윗덩어리처럼 항상 우리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
그는 정치가이면서도 정치가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한마디 했다.
“정치인은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배설된다.”




나는 혼자 술을 마시다가 죽음에 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술에 취한 채 죽는 건, 좀 아니잖아.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술은 건강할 때 마시자. 정신이 맑을 때에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자.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건강을 잃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가족이나 남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별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21세기인데 왜 죽음은 아직도 상품화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짧은 콩트를 쓴 적이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시속 444킬로>였던가? 자살이 인정되고, 자살을 도와주는 주식회사가 합법화된 미래 세계의 이야기였다. 가족을 잃어버린 한 중년 남자가 삶의 희망을 버리고 이윽고 자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살 도우미 회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다양한 자살 상품을 안내받는다.


주식회사 [천국의 계단]입니다. 고객님, 편히 들어오십시오.


남자가 선택한 것은 수면제 같은 약물도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합법적인 킬러에게 살해 당하는 상품도 아니었다. 자동차를 이용한 자살이었다. 자살 희망자, 즉 자살 상품 구매자들을 위해 건설된 사막지대의 고속도로에서 서서히 속도를 높이다가 초고속으로 장애물에 돌진하는 상품이다. 마치 게임처럼 진행한다. 차를 타고 출발한다. 차의 속도는 자동으로 점점 높아진다. 남자는 핸들을 잡고 눈앞의 장애물을 하나하나 피하며 달려간다. 이윽고 그러다가 감정이 고조되면 장애물을 향해서 돌진하면 되는 것이다. 운전 미숙으로 장애물에 충돌할 수도 있는 매우 드라마틱한 상품이다. 주인공 남자는 죽음을 향해 점점 속도를 높인다. 갑자기 죽은 가족들의 환영이 나타나 남자의 선택을 말린다. 여보, 제발! 아빠, 그만둬! 남자는 마지막 순간에 눈물을 흘리며 자살을 포기하기로 한다. 자살 프로그램 상품을 멈추기 위해 차량에 설치된 스톱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자살 도우미 회사에서는 남자의 선택을 모른 척한다. 남자가 탄 차량이 점점 더 가속하도록 내버려 둔다. 얼마 뒤 사막의 고속도로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진다. 남자가 탄 차량은 충돌로 파괴되고 불길에 쌓인 타이어만 뒹군다. 하늘 높이 까마귀가 선회한다. 정부가 자살 도우미 회사를 허가한 것은 자살을 촉진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노화 방지 기술 때문에 인구가 너무 많아진 시대였기에.      


최신 유행 상품은 가장 드라마틱한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입니다. 현재 최고 기록자는 시속 438킬로까지 기록하셨습니다..이런 광고까지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섬뜩하다.




죽음을 의연히 맞이하려는 정도가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기 죽음을 선택하는 시대가 아마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에는 연령 제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화를 방지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200년이나 300년 정도 되는 과학기술 시대가 도래한다면, 그때는 자살을 선택할 권리를 150살 정도부터는 줘야 할 것 같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은 인류의 희망이긴 하지만, 글쎄, 너무 오래 살다 보면 사는 게 지겨워질 것도 같다.      


노화 방지 기술 덕분에 내 자식과 손자와 손녀와, 또 그들의 자식과 모두 같이 살면서, 외모로는 비슷한 나이처럼 보일 텐데, 서로의 인생관도 100살이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비슷해질 테고, 어느 날 120살 된 손자가 나이를 속이고  최신 자살 상품명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 수도 있다. 법적으로 자살이 보장된 150살이 아직 안 되었는데 왜 미리 죽어버린 것일까? 하며 한탄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노화에 관한 연구를 집대성한 책. 노화를 지연시키는 실제적인 TIP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실천하기 쉽진 않다. 조금 먹고 잠을 푹 자고 찬물 샤워나 냉수욕도 하고...


약물로 노화 방지하는 기술이 나오면 갑자기 모두 젊어 보이는 사람 천지일 것이다. 이 세상의 노인은 노화 방지 기술이 나오기 전에 이미 늙어버린 나의 세대가 전부이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세대는 모두 약물로 20~30대 얼굴을 지니고 돌아다닌다면? 그때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냥 즐겁게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젊은 용모의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하고, 괜히 따돌림당하는 느낌이고, 뭐 그럴 것도 같다.


이런 상상을 하니, 오늘 오후가 상당히 느리고 고민스럽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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