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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Xpaper Aug 22. 2024

우리는 기억에 서툴다

첫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우리는 기억하는 데에 서툴다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누구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기억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런데 뇌 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완전하지 않고 상당히 편의적이며 심지어 왜곡되기 일쑤라고 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지닌 여러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혼자 중얼거린다. 내 기억이 왜곡될 리 없잖아. 그때 그 일은 정확히 그렇게 일어난 게 확실해.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가족이나 친구들과 과거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깜짝 놀란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의 기억이 다른 탓이다. 예를 들어, 그 당시 나는 전혀 화가 난 게 아니었고 그저 약간 당황했던 거였다. 하지만 여동생의 기억은 다르다. 내가 얼굴을 상당히 찌푸렸고 심지어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욕하는 소리까지 내뱉었다는 것이다. 


내가?

응, 오빠가 그랬어. 오빠가 평소와 달라서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어.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중얼거린다. 서로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기억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상당히 왜곡되는 게 흔한 일일지도 몰라. 왜곡은 당연한 일이야. 각자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기억만 남기고, 불쾌하거나 불리한 것은 잊고 싶어 해. 전체 구도는 비슷하지만 각자의 기억 속의 디테일은 상당히 다르게 그려지는 거야.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인 어느 날, 과거의 여러 사건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풀어내는 실험을 해보았다. 대학 일학 년 때에 갑자기 끌려 나간 미팅 사건을 떠올려 보자고 했다. 그날 단체 미팅 자리에는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배우가 된 여인이 나왔다고 모두 기억했다. 하지만 나는 내 파트너에 대한 기억만 있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미녀 배우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 파트너는 동양적인 미인이었고 옷은 최신 스타일 연보라색 양장으로 디자인이 품위 있고 우아했다. 나는 누군가의 대타로 갑자기 끌려 나간 참이었다. 교련 수업을 끝내고 중앙도서관에서 한계효용과 무차별 곡선에 대한 경제 이론을 읽다가, 대타를 구하는 친구에게 급하게 잡혀 나간 거였다. 꽃단장은커녕 교련복을 걸친 빈곤한 행색으로 미팅 자리에 억지로 참석했다. 내 키가 큰 것은 내 탓이 아니지만, 교련복 입고 미팅 나간 것은 순전히 내 탓으로만 느껴졌다. (난 E가 아니고 I라고 한다.)


나는 파트너를 마주하곤 긴장했다. 예의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서 당황스러웠다. 내 파트너는 첫눈에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교련복 입고 나온 남자라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급한 일이 있어 빨리 가봐야 한다고 했다. 나도 재빨리 일어섰다. 나 역시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대타로 갑자기 끌려 나온 것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겠다며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 네 쌍의 선남선녀들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곧바로 떠난 거였다. 


거기 남은 네 명의 여인 가운데 하나가 훗날 절세미인 배우로 TV와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물론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런데 기억 속의 내 파트너는 그 절세미인 배우보다 미모가 훨씬 뛰어났다. (친구들은 내 파트너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버스 정류장에서 가끔) 그녀의 매력적인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 그녀와 나는 광화문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올 때까지 함께 서 있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잠깐 나누기도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랐다.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그녀가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쓸만한 남자인가, 하고 다시 살피는 것 같기도 했고 그냥 인사 대신 예의상 바라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말없이 턱을 끄덕였다. 어서 가세요. 훗날 나는 이 턱짓을 두고두고 후회했는데,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애프터 신청을 해야 했던 게 아닐까?! 나는 애송이였다. 


세월이 흐른 뒤, 떠나려는 여자의 손목을 멋지게 잡는 K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남몰래 비통하고 애수에 젖는다. 확실한 건, 그녀의 기억 속에 나는 첫 미팅에 교련복을 입고 나온 싸가지 없는 남자, 버스 정류장에서 턱짓으로 자신을 무례하게 떠나보낸 남자로 영원히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아니, 잊어버리고 전혀 기억에 없는 남자일 수도 있다. 그저 나 혼자 가끔 늦은 시각 버스 정류장에서 울적한 턱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신파를 연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기억에 서툴다. 서툰 기억의 조각들을 새롭게 편집하고 억지로 끼워서 맞추고 빈자리를 신파로 각색하여 간직한다. 내게는 추억이지만 상대에게는 온통 짜증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애송아, 짜증 나.


술을 마시면 기억이 더욱 찬란해진다 ㅎㅎ

     

하지만 가끔 기억이란 것이 놀랍기도 하다.    

  

언젠가 필립 들레름의 에세이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이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서점에 갔다. 작은 책자였다. 나는 책을 펼치고 수록된 수필 제목을 살폈다. 그 가운데에는 내가 좋아하는 <첫 맥주 한 모금>도 있었다. 그것을 읽었다. 그런데 과거에 내가 읽은 것과 약간 느낌이 달랐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뭔가 조금 감흥이 떨어졌다. 부사 하나가 거슬렸다. 그래서 그 책을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첫 맥주 한 모금>을 읽었던 책을 찾았다. 『세계의 유명작가 명수필』이라는 책이었다. 확인해 본 결과 나의 감이 맞았다. 두 번역의 문장들이 약간씩 달랐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이란 놀랍지 않은가. 마지막 문장 부사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느끼다니. 그런데 이건 정확히 문장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감흥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내가 원래 읽었던 문장
이제 맥주를 마실수록 기쁨은 더욱더 줄어든다. 그것은 쓰라린 행복이다. 우리는 첫 잔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새롭게 번역된 문장
이제 맥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기쁨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이것은 씁쓸한 행복이다. 우리는 첫 모금을 잊기 위해 계속 마신다.      


부사까지 동원한 후자가 더 정확한 번역일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게는 전자의 문장이 더 감흥적이다. 만약 내가 후자의 문장을 먼저 읽고 감흥을 느꼈다면, 전자의 번역 문장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용도 좋고 번역도 좋다. 보르헤스 수필도 여기에 수록(번역)된 것들이 맛깔스럽다.


<첫 맥주 한 모금>은 무척 좋아하는 수필이다. 짧기에 여기 전문을 옮겨 본다. 


첫 맥주 한 모금 by 필립 들레름     


  중요한 것은 딱 한 잔이다. 그 다음에 마시는 맥주는 시간만 점점 더 길어지고, 평범해진다. 그 다음 잔들은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하고, 지리멸렬하게 흥청댈 뿐이다. 마지막 잔은 어쩌면 끝낸다는 환멸의 감정 덕택에 어떤 힘 같은 것을 되찾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맨 처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첫 잔은! 목구멍이라고? 첫 잔은 목구멍을 넘어가기 전에 시작된다. 입술에서부터 벌써 이 거품 이는 황금빛 기쁨은 시작되는 것이다. 거품 때문에 맥주는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쓴맛을 걸러낸 행복이 천천히 입천장에 닿는다. 첫잔은 아주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벌컥벌컥 금방 마셔버린다. 첫 잔은 본능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맥주 첫 잔이 주는 기쁨은 하나의 문장처럼 모두 기록된다. 이상적인 미끼 역할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많지도, 지나치게 적지도 않은 적당한 맥주의 양이다. 맥주를 들이켜면, 숨소리가 나고, 혀가 달싹댄다. 그리고 침묵은 이 즉각적인 행복이라는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다. 무한을 향해서 열리는, 믿을 수 없는 기쁨의 느낌…. 동시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기쁨은 벌써 맛보아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술잔을 내려놓는다. 네모난 압지로 만들어진 컵 받침 위에 올려놓은 뒤, 저만치 밀어 놓기까지 한다. 우리는 맥주 색깔을 음미한다. 가짜 꿀, 차가운 태양. 우리는 모든 지혜와 기다림을 동원해서 지금 막 이루었다가 또 지금 막 사라져 버린 기적을 손에 넣고 싶어한다. 우리는 우리잔 바깥에 쓰여 있는 맥주 이름을 만족스럽게 읽어 본다. 컵과 내용물이 서로 질문을 던져 대고, 텅 빈 심연 속에서 서로 무언가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우리는 순금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주문으로 만들어 영원히 소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양이 와서 빛의 방울을 흩뿌려 놓은 하얀색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실패한 연금술사는 황금의 외양만을 건져 낼 수 있을 뿐이다. 이제 맥주를 마실수록 기쁨은 더욱더 줄어든다. 그것은 쓰라린 행복이다. 우리는 첫 잔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첫 맥주 한 모금은 개인적으로 호가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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