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하고 매혹적인 언어의 마술사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비즈니스 이메일을 쓰거나 직장에서 공지 사항을 메신저로 보낼 때,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런 경우 나는 최대한 간략하게 썼다. 오독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주어와 동사와 목적어와 시제 등을 최대한 명료하게 썼다.
비즈니스가 아닌 경우에는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소설이나 수필 같은 것을 쓸 때도 되도록 짧고 명료하게 쓰는 게 좋다. 낭만적이고 웅장하고 감성적인 문장이 지나치게 많으면 구식으로 읽히고, 독자의 눈은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문을 싫어하는 편이다. 아주 멋진 문장이 드물게 등장하면 감탄한다. 하지만 단락마다 멋진 문장이 등장하면 이내 싫증이 난다. 소설에서 서사가 궁금한데, 느닷없이 멋진 문장 하나로 장면을 마무리해 버리면 솔직히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내가 미문을 쓰면 유치해 보인다. 처음 습작을 시작했을 때에는 단문을 주로 썼다. 직유나 은유도 될 수 있으면 절제했다. 묘사와 전개 방식에 어느 정도 능숙해지면 장문이나 은유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한다.
등단도 하고 책도 냈다면, 만연체와 직유와 은유와 낭만과 격정과 권태 등 작가 마음대로 섞어 쓰거나 가지가지 실험적인 문장을 개발해도 딱히 뭐라고 탓할 사람이 별로 없다. 평론가와 독자가 싫어하면 청탁이 끊기는 위험이 있긴 하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뒤늦게 인정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오늘은 앤절라 카터의 문장을 조금 살펴보았다. 이 작가의 문장에는 미문이 있음에도 이상하게 거부감이 별로 들지 않는다. 단편 <피로 물든 방>은 여러 번 읽은 작품이다. 그동안 재미로 읽었으나 오늘은 금맥을 캐는 광부의 심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문장을 자세히 읽었다. 앤절라 카터의 문장이 전부터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앤절라 카터의 소설집 『피로 물든 방』을 먼저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태생의 이 작가는 널리 알려진 동화를 가져와 전복적으로 재구성하는 스토리로 명성을 얻었다. 마르케스나 보르헤스처럼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에 속한다. 여성의 주체성과 내면의 욕망 등 페미니즘 분위기도 강하게 풍긴다. 고전 동화를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고, 강력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것이 약간 더 깊고, 더 어둡고, 더 성적이다.
무대장치는 항상 터무니없을 정도로 연극적이고 극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혹하지는 않으며 종종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카터의 작품 세계를 진정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특징은 바로 저자의 멋지고도 풍부한 언어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대담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관능적이다.
로마 밀러(책임 편집) 『문학으로의 모험』에서 <피로 물든 방> 서평 (p226)
이제 카터의 문장을 보자. 표제작 <피로 물든 방>의 첫 단락을 보자.
아, 그전에 잠깐!
카터의 소설 첫 단락을 읽기 전에 생각했다. 똑같은 내용을 만약 내가 쓴다면 어떤 문장이 나올까? 궁금했다. 그래서 내용을 읽고 내 스타일로 한번 써봤다. 아래처럼 멋없고 건조한 문장이 나왔다.
그날 밤 나는 결혼을 앞두고 흥분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결혼식을 올리는 도시를 향해 빠르게 달리는 침대차에서 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뺨은 달아올랐고 심장은 두근거렸다. 엄마와 함께 살던 파리를 벗어나 기차는 밤새 달렸다. 나는 이제 처녀시절을 뒤로하고 결혼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향해 맹렬히 가고 있는 거였다.
이제, 존경하는 앤절라 카터의 문장을 읽어보자. 위에 내가 쓴 문장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뛰어나고 매혹적인 스타일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밤 잔뜩 흥분한 나머지 부드럽고 달콤한 황홀감에 젖어 침대차에서 잠 못 들고 누워 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달아오른 뺨을 새하얀 베갯잇에 파묻고, 기차를 끊임없이 달려 나가게 하는 거대한 피스톤이 고동치는 것처럼 내 심장도 쿵쾅거렸다. 그 기차는 파리로부터, 나의 처녀시절로부터, 엄마랑 살던 집의 하얗고 안온한 고요로부터 나를 멀리멀리 알 수 없는 결혼의 나라로 밤새도록 실어 나르고 있었다.
카터는 단문만 고수하는 것도 아니며, 은유나 직유를 절제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흥분한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그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뭔지 모르게 불안한 분위기가 스며있다. 번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 옮긴이 이귀우 교수가 작가의 매력을 정말 잘 살렸다.
다음 문장도 보자. 남편 푸른 수염의 눈길이 아내를 향하고 있다. 숨 막힐 정도다. 그 섬뜩한 눈길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날아와 가슴 한가운데에 고스란히 꽂히는 느낌이다.
금박 거울에 비친 나를 쳐다보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경주마를 감정하는 전문가의 감식안, 심지어 시장에서 잘라놓은 고깃덩어리를 자세히 바라보는 가정주부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난 그전까지 그의 그런 시선을 한 번도 보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완전히 육체적인 탐욕. 그리고 그것은 그의 왼쪽 눈에 걸린 외알 안경 때문에 이상하게 확대되어 보였다. 욕정으로 날 쳐다보는 그를 보았을 때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눈을 돌리다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나는 그가 쳐다보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 창백한 얼굴, 내 목의 근육이 마치 가느다란 철사 줄처럼 튀어나온 것을 보았다. 그 잔인한 목걸이가 내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보았다. 그리고 순진하고 고립되어 살아왔던 내 생애 처음으로 내 안에 있는 타락의 잠재성을 느끼고는 숨이 막혔다.
그다음 날 우린 결혼했다.
여기에서는 강렬한 단문이 동원되고 있다. 작품 전체를 장문으로만 끌고 갈 수 없다. 단문으로만 끌고 갈 수도 없다. 카터는 배경이나 장면, 상황이나 심리 등 묘사하는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문장의 변화를 준다. 리듬과 박자가 있다. 과장법의 연출로 분위기가 고조된다. 한편 '고깃덩어리를 보는 가정주부의 눈'이라는 은유는 놀라울 정도로 어울리는 묘사다. '이상하게 확대된 외알 안경'도 기이한 욕정의 눈길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게다가 '생애 처음으로 내 안에 있는 타락의 잠재성'이라는 표현도 훔치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 문장은 더 경탄스럽다. 그다음 날 우린 결혼했다, 라니! 푸른 수염과 결혼하는 여자의 운명을, 불안을, 뭔가를,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문장은 단순하고 짧은데, 읽는 내 심장은 복잡해지고 맥박은 멈췄다가 이내 길게 늘어진다.
이제 이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장 통쾌한 문장을 읽어보자.
엄마처럼 거센 사람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모자가 바람에 실려 바다로 날아가서 엄마의 머리카락은 마치 흰 갈기털 같았고, 검은 망사 스타킹을 신은 다리는 허벅지까지 드러나고, 치마는 허리춤에 끼워져 있고, 한 손은 뒷다리로 일어서는 말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아버지의 권총을 잡고 있었으며, 엄마 뒤에는 사나운 정의의 목격자처럼 거칠고 무정한 바다의 파도가 보였다. 남편은 엄마가 메두사라도 되는 양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서 있었고, 박람회 같은 데서 유리 상자 안에 '푸른 수염'의 극적 장면을 묘사한 태엽 장치에서 보는 것처럼 칼을 아직 머리 위에 쳐들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일어난 일은 한 호기심 많은 아이가 구멍에 동전을 집어넣어 모든 것을 작동시킨 것 같았다. 그 육중하고 수염 난 인물이 크게 고함을 질렀고 분노로 소리쳤으며 마치 죽음이 아니면 영광이라는 식으로 그 명예로운 칼을 휘두르며 우리 세 명 모두를 향해 달려들었다.
열여덟 살 생일날 엄마는 하노이 북쪽 산에 있는 마을을 습격한 식인 호랑이를 처치한 적이 있었다. 지금 엄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버지의 권총을 들어 겨냥한 다음 남편의 머리에 흠잡을 데 없는 단 한 방의 총알을 쏘았다.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 긴 문장을 동원한다면, 앤절라 카터처럼 리듬과 박자를 맞추면 된다. 만연체는 복잡한 의식의 흐름 묘사에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위와 같이 급격한 액션 장면에도 효과가 뛰어나다. 슬로우 모션 영상처럼 다가온다.
딸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성난 엄마의 모습은 큰 파도처럼 장대하고 강렬하다. '엄마는 바다의 파도처럼 거칠게 달려왔다'라는 식의 밋밋한 내 스타일의 표현보다 '엄마의 뒤로 거칠고 무정한 바다의 파도가 보였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멋있다.
그러고, 단 한 방의 총알이다. 정녕 흠잡을 데가 없다.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훌륭한 마침표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