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일이 생겨 한국인인 집주인이 들렸다. 아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중 이름의 한자뜻을 궁금해하셨다. 한자 의미를 신중하게 고려하며 지은 이름이 아니고, 몇 년 동안 한자를 쓸 일도 없었던 탓에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나와 아이의 한자 이름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었다.
우리가 택한 리안이의 '리'한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다다를 리, 벼슬 리. 그리고 흔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서 망설임 없이 '편안할 안'이었다.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한자를 급히 고르면서 나름 의미를 부여했던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편안함에 다다르는 것이던지, 아니면 무언가를 이루어 그로 인해 편앙ㄴ해지는 것이던지, 결국은 편안함이라는 생태가 가까운 삶이길 바랐다. '편안함'. 항상 반짝이며 빛나기보다는 조용하고 고요하게 삶을 받쳐주는 그 기본적인 상태가 중요했고 지금도 그 바람은 바뀌지 않았다.
내 이름은 발음이 굉장히 센 편이다. 어릴 때 짓궃은 남자아이들의 놀림 대상이 자주 되곤 했다. 이름 하나가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을지 몰라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꽤 많은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내 아이의 이름은 둥글둥글하고 쉽게 별명이 생기지 않을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었다. 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아이의 이름을 지으며 풀었다. 그때는 의미나 사주보다 중요한 것이, 그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불려지고 모나게 들리지 않는지 여부였다. 남편의 성 옆에 모든 자음과 모음을 붙혀보며 가장 부드럽게 나오는 소리를 골랐다. 그리고 의미를 찾았다. 마치 삶이 그러하듯이, 소리는 일상을 이루고 의미는 그 일상을 조금씩 해석하게 해준다. 우리는 그렇게 '리안'이라는 이름을 아이에게 주었다.
캐나다로 이사오고 난 후에 아이의 영어 이름이 따로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은 자주 들었지만 한자 뜻을 물어본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새삼스레 기억을 더듬게 됐다. 아, 내 아이 리안이는 편안하게 살았으면 했지. 가진 것이 많아 편안하기 보다는 마음이 항상 편안했으면 했다. 가진 것이 많아도 지키기 위해 애쓰거나 더 가지기 위해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부족함이 많아 보여도 마음이 잔잔한 사람이 있다. '편안함'이라는 상태는 어쩌면 삶의 가장 단순하고도 어려운 숙제다. 리안이라는 이름은, 그 숙제를 늘 곁에 두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의 하나였던 것도 같다.
그렇게 나는 리안이 엄마가 되었다. 세고 거칠고 남자스런 나의 이름을 잊어갈 때쯤 내 이름에 아무런 편견도 없는 캐나다에 왔다. 내 이름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외국인도 있었다. 'ㅐ'모음이 모국어에 없는 사람은 '태'를 말하는데 많이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이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기쁠 희', '클 태'. 돌림자 '태'가 포함된 내 이름을 지을 때 그 앞에 어떤 의미를 붙혀줄지 부모님조 많이 고민했겠구나 싶었다. 내 삶에 큰 기쁨이 항상 넘치지는 않더라도 기쁨을 찾아갈 수 있는 여유를 바라지는 않으셨을까. 캐나다에 와서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던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런 이름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다.
최근, 임신한 친구가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남편과 의견이 다르다고 했다. 친구의 남편은 아이의 이름을 철학관에서 받아오길 원했고 친구는 스스로 고른 느낌 있는 이름을 원했다. 그래서 둘의 합의점은 이름의 소리를 먼저 정하고 그 뜻을 철학관에서 정하는 방식으로 절충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의 이름과 한자뜻을 정하는 것은 마치 아이의 삶 전체를 결정짓는 순간처럼 신중하다. 그리고 부르는 소리가 같아도 다른 의미를 가진 이름이 생긴다. 한자의 의미에 따라 부모님의 소망과 기원이 다르게 담기는 아이의 이름 짓기는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하고 신비롭다.
아이를 부르며, 오랜만에 그 이름 속에 담았던 나의 바람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내 이름을 지으며 담았던 소망을 기원하며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을 소망, 그리고 내 아이가 가장 많이 들을 소망. 우리가 기쁨을 찾아가고 편안함을 가까이 둘 수 있는 삶을 살기를. 그 소망이 이름처럼 오래도록 불리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