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

by Elin

런던이라는 도시는 어떤 곳인지 살펴보기 위해 2018년 가을 추석연휴 기간에 답사 겸 캐나다에 여행을 왔었다. 다섯 시쯤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해 하루가 짧았지만, 맑은 날의 한 낮은 제법 따뜻했다. 도시가 작아서 그런지 오히려 대중교통이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여러 곳을 많이 걸어 다녔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에도 숙소로부터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상점들을 구경 갔다가 버스를 오랫동안 기다리기보다 천천히 걷는 걸 택했다. 대충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꺼내 본 휴대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가야 할 길 중간에 꽤 큰 공원이 있는 것을 봤다. 지도 곳곳에 커다란 녹지가 있으니 보기 좋다며 빠르게 걸어 도착한 그곳은 공동묘지였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확인해 보니 그곳이 맞았고 지도에도 묘지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글자를 눈여겨보지 않고 대충 위지만 파악해서 시선에 띄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처음 들어가 본 시체안치실은 그보다 더 어릴 때 엄마와 자주 갔던 정육점 뒤쪽에 있는 냉동고처럼 보였다. 우리가 주문한 고기를 꺼내기 위해 정육점 사장님이 열던 그 철제문안에 엄마가 누워있었다. 시체안치실과 정육점 냉동고의 동일시 후유증은 제법 커 한동안 음식을, 특히 고기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몇 달 동안 소화제와 함께 살았다. 엄마는 화장을 해 선산인 강원도 문막에 뿌렸다. 차를 타고 가면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지만 대학생이 되자마자 땄던 운전면허증도 십 년 가까이 고이 보관만 하던 나에게 문막은 너무 멀었다. 엄마의 재를 뿌린 곳까지 올라가는 길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아무렇게나 쓰러진 나무 틈새를 휘젓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그전에도 더러 갔었지만 '죽음'이라는 실체에 대해 현실성은 없었다. 그런 열아홉의 나는 엄마의 흔적이 쉽게 닿을 수 없는, 현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그리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게 할 이야기가 많아졌고, 그럴수록 엄마는 내가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선택을 했던 과거의 나를, 그리고 주위에 있던 어른들을 원망도 해 보았지만 내 곁에 둘 한 움큼의 재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에 납골당이 생긴다고 할 때 깃발을 들고 반대하는 이는 있어도 환영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텐데 왜 그리도 꺼리는 걸까. 죽은 자들의 영혼의 내 주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하고, 세상에 한이 남아 이승에 머무는 귀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반대는 공포나 무서움이 아닌 정확하지 않은 어떤 나쁜 감정이다. 어느 순간 많이 생긴 납골당도 도시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주로 위치해 있다. 그런 문화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길을 걷다 아파트 단지 끝자락에서 만난, 지도 속 녹색 공간이 공동묘지라는 점은 퍽 놀라운 사실이었다. 게다가 두 팔을 넓게 벌려도 내 품에 다 들어오지 않는 큰 나무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잠시 쉬어가라는 듯 안락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람에 따라 하늘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볕은 평화로웠다.


캐나다에 오기 얼마 전, 공동묘지에 거주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책을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나름의 소신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 주인공을 현실 부적응자 혹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비겁한 겁쟁이로 여겼다. 관라인이 있는 묘지에 몰래 거주하는 설정은, 아무리 소설이어도 너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외국 공동묘지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선입견에 불고했다. 공동묘지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잠든 아주 고요하고 아름다운 장소였다. 부지가 무척 크고 출입구가 여러 개라 한눈에 관리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처럼 정갈하게 정리된 구획은 내 가족이 사후에 편히 머무르는 마을이었다.


이제 항상 운전을 하고 다니는 탓에 어딘가를 오가며 공동묘지 안을 지나다니는 일은 드물어졌다. 하지만 슈퍼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공동묘지를 수시로 지나치고, 어떤 날에는 특정 위치에 있는 공동묘지에 사슴이 산다고 해서 아이와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묘지가 주는 스산함이 밤에는 조금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만 산책하듯 내 가족을 만나러 가는 그 길이, 언제는 나를 따뜻하게 반겨줄 것 같은 포근한 공원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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