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캐나다 이민의 실패담도 성공담도 아니다. 그저 어찌어찌 순간의 선택들을 하며 살다 보니 8년 가까이 캐나다살이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고,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이에 엄마를 따라 캐나다에 와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산, 9세 딸의 이야기다.
2019년 4월, 거리가 한산했던 온타리오의 런던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서울은 이미 완연한 봄이었고 맑은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런던에 와서 거의 매일 우산을 들고 다녔다. 그렇다고 비가 하루 종일 오는 날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잠깐 왔다 그쳤고, 비가 그친 뒤에는 해가 눈부셨다. 가본 적 없지만 많이 들어서 익숙한, 그렇게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영국의 런던을 떠올리며 그래서 이 도시의 이름이 런던인가 추측해 봤다. 도시가 한산했던 이유는 대학교가 방학을 시작해서였다는 것을 9월 첫 주가 되어서야 알았다. 4개월가량 이 도시는 교통량도 많지 않고 사람이 북적이지도 않아 한가롭고 여유롭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이곳에 머무는 것이 딸이 한국에서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내 삶에도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구나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는 엄마 아빠는 뭐든지 뚝딱뚝딱 다 할 줄 안다는 착각. 십 대에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수능이 끝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이십 대에는 내가 하는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 삼십 대에는 내가 몸 바쳐 일하는 회사가 내 전부일 거라는 착각. 사십 대는 이제 막 시작해서 잘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건강할 것이라는, 내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아이들도 잘 알고 구김살 없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거라는 그런 류의 착각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렇지만 그런 착각들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고, 여전히 꿈꾸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어로 완벽한 소통이 되지 않는 내가 캐나다에서 컬리지 학위를 받았고, 손재주는 하나도 없으면서 케이크 장식을 하는 흉내를 내며 베이커리에서 3년 동안 일했다. 때때로 한 주에 몇 시간씩만 파트타임으로 일해 온전히 3년을 일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캐나다의 또 다른 공식 언어인, 나에게는 세 번째 언어가 된 프랑스어도 배웠다. 영어나 프랑스어 둘 모두 그 언어를 사용해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대화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피곤함이 급격히 몰려오고 완벽한 소통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미심쩍은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런던에 살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도시를 때때로 여행하며 대자연을 접하고 경험의 폭을 넓혔다. 딸은 캐나다 정규 교육의 첫 시작인 JK(junior kindergaeten)부터 학교 생활을 시작해 벌써 4학년의 절반이 지났다. 딸이 생각하는 폭포의 규모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기준이고, 산이라 하면 6월에 갔는데도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던 록키산맥의 웅장함을 떠올린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참으로 다채롭다. 그리고 매년 한 해가 끝날 무렵 그다음 해에는 캐나다에서의 우리의 신분이 조금 더 명료해지기를 바라왔다. 어느 날은 이런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 아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캐나다 정부가 나더러 이제 그만 떠나라고 하면 떠나야 하는 이방인인 주제에 마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마냥 그런 고민을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캐나다 살이가 언제 끝나든지 아쉬움이 없도록 우리는 내일도 런던에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