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상상하게 된 순간

by Elin

나는 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을까.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남과 북으로 이미 나뉜 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것이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하지만 일상이 깨지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리고 매년 심해지는 황사와 미세먼지는 봄이 와도 반갑지 않은 환경적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새 학기가 시작하는 봄 무렵에 아이 교육을 이유로 이민이나 유학 문의가 증가한다고, 예전에 방문했던 이민박람회에서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이십 대 초반,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있는 거다'라는 말을 많이 생각했고 많이 했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급여가 많지 않은 분야에서 일해 통장의 잔고는 항상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었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변에 부와 명예를 축적한 어른이 많았다. 몇 층 짜리 단독 주택에 도우미와만 지내는 친척 어른들이, 어린 내 눈에는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한 나는, 삶의 가치와 돈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의 토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랬던 나는 삼십 대가 된 후로 자주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을까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 자신의 모습이 싫을 정도로 돈에 대한 이익 관계를 너무 따졌다.


그러다 어느 소설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요지는 내가 이십 대 때 자주 했던 그 말은 돈이 진짜 없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하지 못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돈이 어느 정도 항상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라는 거였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는 특별한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아이였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집은 대문을 열고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본 채가 나오는 단독주택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옆 쪽으로 풀이 깔리고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마당이 있었고 거기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었다. 그네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 오빠와 내가 거기 함께 앉아 즐기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내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안전과 자유, 그리고 지금 그리워하는 평범한 행복 사이의 괴리감이 함께 떠오른다.


당신네들처럼 전문직에 종사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길 바랐던 조부모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돈이라는 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은, 내 선택에 당위성을 주기 위해 내세웠던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누구의 딸이 아닌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일궈놓은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자주 '돈'이라는 것에 집착을 했고, 내가 생각한 만큼 통장에 돈이 없으면 내가 즐거워하며 한 과거의 선택을 후회했다. 만약 어린 시절에 다양함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있었다면 친척 어른들을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너무 당연하게 형성되었던 안락함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른들이 쌓았을 시간들까지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얄팍한 시선으로 한 나의 선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또 다른 성공으로 이끌어갈 대담함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이유를 공유하는 순간 나는 늘 대답을 망설이곤 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지만, 내 이유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한국을 떠난 이유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을까. 분단국가여서도, 미세먼지라는 환경 탓도, 아이의 교육 때문도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 정말 원했던 삶으로 이끌어 주었는지 확신이 없었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점차 안정된 미래를 마련하기 시작한 삼십 대 중반이었다. 지인들은 십 년 정도 일한 경력으로 소위 몸 값을 올려 이직을 하고 갖고 있는 부동산의 수익을 높이는 문제를 고민했다. 나는 어차피 일궈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상한 명분을 다시 내세우며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작가의 이전글이국에서 펼쳐진, 너와 나의 성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