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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Sep 21. 2020

날씨가 아까운 나날들


어젠 할 일이 몇 개 있었다. 온라인 수업도 들어야 했고, 휴식도 필요했다.


하지만 하늘이 너무 예뻤다.

파랗고, 맑고, 드문드문 보이는 구름도 예뻤다.


그래서 나갔다.


코로나 이후 제주도 구경 내지 여행을 거의 못했는데 이 날씨를 놓치면 아까울 것 같아 일단 나갔다.


송당을 거쳐 성산을 거쳐 월정리로 갔다.


6년 전 여행할 때 머물렀던 송당.

그 후로도 몇 차례 들르긴 했지만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동네를 산책한 건 그 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예전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세 군데는 여전히 영업 중이고, 1300k는 다른 기념품샵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웅스키친>은 <우연히, 그곳>이라는 카페로 바뀌었고, 소품샵 몇 군데가 새롭게 생긴 것이 변화라고나 할까.


'송당에 새로 생긴 무엇'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개발되는 것이 아닐까 안타까웠는데, 생각보다 변화의 폭은 크지 않았다. 여전히 조용한 마을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송당에서 가장 유명한 <풍림다방>이 어제 휴무였기 때문에, 어쩌다 생기는 '조용한 분위기'를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송당에서 비자림을 거쳐 세화로 가는 버스를 탈까 하다가 1시간이나 기다릴 자신이 없어 성산으로 갔다. 바다를 보고 간식을 먹고 월정리로 향했다.


세계유산축전이 열리고 있다는 밭담테마공원으로 향했다. 이맘때쯤이면 더위도 물러나고 걸어 다니기에 좋아 여러 가지 축제가 많이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 영향으로 축제가 축소되거나 취소되거나 다른 형태로 열리는 것 같았다.


세계유산축전도 사전 예약과 신청을 하지 않으면 참여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그중 '걷는 길' 일부는 올레길과 겹치기도 하고 사람이 드나드는 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나도 어쩌다 일부 구간을 걷게 되었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를 구경하고 월정리 바닷가까지 걸어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월정리에는 이미 예전부터 개발 열풍이 일고 있었는데 한 번 시작된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 것 같았다. 볼 때마다 생기는 건물과 카페, 숙소들에 마음이 아파 오히려 월정리를 자주 찾지 않았다.


예전에 월정리 사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일요일에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어 겨우겨우 밥을 먹고 온 기억이 선명한데, 성수기도 지난 9월 중순 일요일엔 밥 먹을 식당이 널려 있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월정리 해안을 걷고 행원리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해 지는 시간에 맞춰 김녕에 내려 일몰을 볼까 했는데, 지는 해가 버스 안에서 선명히 보이길래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옆 의자에 종종 떨구고 졸음으로 피로를 덜어 내며 집으로 왔다.



주에 살아서 좋은 건 맞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다르다.

하지만 나는 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 시내에 살고 있고, 맘 내키면 쏴악 차 끌고 나가 바다 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바다가 고프다.


바닷바람을 맞고, 비릿한 바다 냄새를 맡을 때마다 행복하다. 어쩌면 남들(육지 사는 사람들)보다 좀 더 자주, 좀 더 손쉽게, 좀 더 싸게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정도가 장점일 수도.


오늘은 하늘이 어제보다 흐리길래 어제 잘 나갔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이 글로 이어졌다.

 

몇 개월 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서 기쁜 마음에 남기는 제주도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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