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았던 자책
우울한 감정이 최소 일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자살에 대한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든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에 전화를 하시거나 지역정신건강센터 혹은 학교 내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우울했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현재 힘겨운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에게 이겨낼 수 있는 근거가 되어드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저도 이겨냈으니 적절한 도움과 조치가 있으면 훨씬 건강한 생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책을 자주 했었다. 어렸을 때 장난을 치다가 어른에게 혼나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못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또 남들보다 못난 부분이 보이면 '나는 왜 저것도 못하지?', '난 뭐든지 잘하고 싶어' 같은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열심히 분석하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재능이면 좌절하고 기분이 안 좋아졌다. 잘하는 모습, 멋진 모습만 보여주어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 누구에게도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체육시간 때 친구들이랑 공놀이를 하다가 장난기 많은 친구가 자기한테도 패스해달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줬는데 바로 가지고 도망가길래 쫓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면서 쫓아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진짜 살인충동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 실수로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봤다는 생각에 감정이 확 올라왔던 것 같다. 다른 모양으로는 다른 사람이 싫다고 하는 것은 이 악물고 안 하려고 한다. 이 부분은 사실 지금도 일부분 가지고 있긴 하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든지 장난을 치고 있든지 그 사람이 말로나 표정으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표시하면 다시는 반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책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우는 것은 평소에도 내 에너지를 굉장히 갉아먹었지만 우울감이 심해지고 나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를 옭아맸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해서 우울감이 24시간 내내 우울감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괜찮아질 때도 있지만 한 번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기운이 없어지면 쇳덩이가 깊은 물속에 푹 가라앉듯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위 그림은 보통 사람들의 감정 기복 그래프와 내가 느꼈던 감정 기복 그래프이다. 보통 사람들의 감정 기복도 사실 저렇게 다이나믹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좋을 때도 있고 있고 나쁠 때도 있고 그런 감정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좋을 때는 그냥 살짝 기분이 좋았다가 나쁘면 푹 가라앉아서 벗어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사실 좋을 때도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은 타이밍이라서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들의 대부분은 나의 무가치함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적어놨던 우울 기록 메모를 다시 봤는데 내 스스로를 정말 이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오히려 세상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내가 없어져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못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실제로 할 수 있는 건데 우울증으로 인해 생각도 잘 안 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고 그게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지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평생 그렇게 지내왔으면 그나마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초, 중,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던지라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제 바보가 되어서 영원히 그대로 멈출 것 같았다. 부정적인 생각만 들면 모르는데 그런 생각이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족들에게 얘기했을 때 들었던 응원의 말들, 조언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 동생이 '어차피 안 들릴 거 알지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직도 마음이 지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때 당시에 정말로 내가 믿지 않았다는 게 생각이 나서 잔잔하게 위로하고자 하는 말들 뒤에 꼭 '힘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거고 내가 하는 말들이 믿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괜찮으니까 귀에만 걸어둬라'라고 붙인다.
뭔가 실수하거나 안 좋은 생각이 드는 순간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덮쳐왔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반추'라고 하는데 우울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전에 썼던 글들과는 다르게 무겁고 우울한 글들이지만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나만 유난 떠는 게 아니구나' 하는 작은 안심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건강하신 분들에게는 우울증 환자들이 느끼는 기분이나 생각은 어떤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