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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길 Nov 12. 2020

쫄보 클라이머

한국 등산학교 정규반 93기

손끝, 발끝 몸뚱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짰다. 숨은 터질 듯이 씩씩거리고, 콧구멍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거친 입김이 안경알을 뿌옇게 덮었다. 떨어져 죽기 전에 숨 차서 죽을 거 같았다. 주먹보다 좁은 바위 틈에 발을 들이끼우고 있는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대기", "대기"를  소리쳤다. 

크랙 바깥쪽으로 발을 딛고 짝힘을 이용해서 올라가야 한다는 C 강사님의 티칭을 따르기에는 아직 간이 작다. 대신 크랙 틈바구니 속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바짝 끼어 들어가고 싶었다.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바둥거렸다. 바깥 벼랑 쪽으로 몸이 빠져나가서 팔을 쭉 펴서 버티고 발은 크랙 바깥쪽 홀드를 딛고 일어서야 된다는 지식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 앞에 머릿속 어딘가로 숨어버린지 오래였다. 굼벵이는 꿈틀거리며 있는 힘을 다해 크랙 속으로 파고들었다. 온몸으로 밀고 당기고 기다시피해서 어찌어찌 올랐다. 1피치 확보를 했다. 살았다.


Y는 고소공포증이던 뭐든 그냥 <한국등산학교> 에서 배우다 보면 다 해결된다고 했다. 교육생 시절에 슬랩 중간에서 내려달라고 발버둥 치고, 벌벌 기던 동기들이 지금은 다들 날라다닌나고 했다. 선등만 안 서면 위험 제로 스포츠가 바로 클라이밍이라고도 했다. <한국등산학교>에 가면 다 하게 되니깐  미리 배우거나 준비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Y는  <한국등산학교>를 추천한 직장 후배다.

<한국등산학교>에 오기 바로 전 날까지만 해도 클라이밍에서 후등자는 선등자가 설치한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는 줄 알았다. 거벽 같은 곳에서만 체력 안배를 위해서 서로 등반 순서를 바꿔가면서 오르는 건 줄 알았다. 그래야 후등자는 쉽고  안전하게 클라이밍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야외 수업에서 줄을 잡지 말고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야 내가 올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비는 다 샀고, 환불도 안되니 어쩌겠는가. 


"@##%$%$%%^& 이게 O형 비너"

"*(**^&^^%암벽%$%@@%^%"

"하네스, 로프, #%%#%$#" 

강사님들은 외계인의 언어로 강의를 했다. 낯선 용어나 설명은 습득은커녕 이해조차 난감했다. 빌레이가 뭐고, 후등 빌레이, 선등 빌레이가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현장 실습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요령이 저절로 몸에 밴다는 K 강사님의 말에 위안을 가졌다. 거짓말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몸으로 익히는게 몇 곱절 노력이 더 든다. 집에서 한순서씩  생각하면서 하면 잘 되던 빌레이 작업 지식도 바위 앞에만 서면 머릿속에서 리셋되었다. 매듭을 하고, 비너를 달고, 하강기에 자일을 끼울 때마다 강사님 눈치를 봤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돼? 발 디딜 곳이 없어"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허공에 대고 도움을 외쳤다.

"거기 왼쪽 조금 위에 좋은 홀드가 있어요. 거길 디뎌요"

헬멧 위로 들려오는 후등 빌레이어 A의 반가운 목소리이었다. 알려 준 풋 홀드를 힐끗 봤다. 코딱지 두 개  만한 홀드였다. 발을 딛고 올라서는 순간 주르륵 미끄러 떨어질 거 같았다.  어떡해서든지 바위에 꼭 붙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팔에는 펌핑이 왔다. 발가락을 구부려야 겨우 들어가는 신발은 발가락을 조여왔다. 엄지 발가락이 아프다고 난리다.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바위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야 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뚫고 나오기에는 아직 실력 부족이었다. 팔을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매달리고 있다.

초보 클라이머에게는 중간에 쉬는 것도 죽을 맛이다. 발을 편하게 딛고 숨만 고를 수 있는 홀드만 있어도 행복했다. 자일에 매달려서 쉴 수도 있지만, 고소증이 있는 나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클라이밍은 중간에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내려오지도 못하는 지랄 같은 운동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무조건 A를 믿고 따라야 했다.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용기란 용기를 쥐어쫬다. '해 보는 거야 까잇 꺼' 홀드 위로  왼 발을 올렸다. 신발 바닥이 바위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왔다. 3주 차 오봉 1코스 2피치 완료 10미터쯤 아래였다.

확보 비너를 지지대 확보줄에 끼웠다. 죽을힘을 다해 암벽을 오르느라 잠시 숨었던 고소 공포가 꿈틀거렸다. 허리가 굽어지고 어깨가 움츠려졌다. 손은 확보줄을 꽉 움켜쥐었다. 

"허리와 가슴을 쭉 펴서 확보줄에 몸을 맡기고 자일을 사리세요. 힘으로 그렇게 서 있으면 금방 방전돼요" H 강사님이 무조건 자일을 믿고 매달리라고 하셨다.

"네, 네" 대답은 대답일 뿐. 나는 스스로 서 있으려고 다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어떻게 한낱 나일론 줄 하나를 믿는단 말인가. 알루미늄 비너도 깨질 수 있고, 확보대 나무가 뿌리째 뽑힐 수도 있지. 골프채나 테니스라켓도 까딱하면 부러지는데 말이지' 

찰나의 시간이 지났다. 벼랑이 조금은 편해졌다.

"알려주지 않았으면 아직도 저기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거야. 땡큐 땡큐"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거칠게 뱉으면서 그제서야 A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지난번 보다 공포심이 조금 작아진 거 같기도 했다.

"제가 오를 땐 안 보이던 홀드가 여기서는 커다랗게 잘 보이더라고요" A가 말했다.

"잘 하셨어요", "파이팅".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S의 힘찬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후등 자일을 사리기 시작했다. 확보줄을 가운데 두고 자일 한 쪽이 길게 사려졌다. 바닥에 닿아 늘어지면서 꼬이려는 듯했다. 큰 형님 L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늘어져 꼬인 자일을  한 줄씩 걷어올렸다. 내 확보줄 양쪽으로 가지런히 포개 얹었다.


우리 조 말번 O가 내려왔다. 오봉 등반이 끝났다.  O의 모습이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하네스 고리에는 쇳덩이 장비들을 빽빽하게 달고 있다. 허리 아래를 짧게 두른  장비들은 마치 하와이 원주민의 풀잎 치마처럼 치렁치렁 했다. 장비들 이름은 모르지만 척 보기에도 무거웠다. 말 번은 장비 수거를 하면서 등반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제 서야 알았다. 맨 몸뚱이로 오르는 것도 죽을 맛인데 O는 장비를 수거하고, 챙겨 메고 올랐다. 그녀는 디스크가 있다고도 했다. 하산 길에  살짝 끙끙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등산학교>에 들어온 이유는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싶어서였다. 대충 훓터보고 인증 사진 몇 장에 목매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 숨결을 느끼는 그런 여행. 끝없는 길을 따라 걷고,  물속을 다이빙하고, 산을 넘고 암벽을 타면서 대자연을 느끼는 그런 여행. 그렇다고 거창하게 대자연에 도전하고 나를 극복하겠다는 목표는 애초부터 없었다. 여행을 마음껏 즐기기 위한 도구로써 등반을 배우고 싶었다. 내 여행의 종착역 남미의 파타고니아나 토레스델파이네에 갔다고 상상해 보라. 정상은 아니더라도 암벽 맛보기는 좀 해야하지 않을까. 지구 반바퀴나 돌아가서 멀찌감치 쳐다보다가 돌아선다면 가성비 턱도 없는 여행 아닌가. 

백패킹은 여러 해 다녔다.  스쿠버다이빙은 50살이 넘으면 심장이 정상이라는 진단서가 있어야 오픈워터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오키나와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오키나와 한 달 여행에서 스쿠버 다이빙 코스를 뺏다. 나에겐 서울대학병원도 모르는 가끔 찾아오는 심장 통증이 있다. 결국 자격증 코스가 아니라 관광 스쿠버 다이빙을 했다. 겁 대가리 없는 물개였다.

등반도 스쿠버다이빙이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하면 초보 기술은 습득할 줄 알았다. 등산을 비롯한 모든 운동은 잘은 못해도 즐길 수는 있다는 생각이 이 번 클라이밍에서 산산 조각났다. 고소증으로 백운대에 오르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나다. 

바위 앞에 서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그 한 숨 옆에는 서로에게 생명줄을 맡기고 바위를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저 마다의 사연을 안고 들어온 <한국등산학교> 93기들이다. 

그중에서도 <60이 넘어서 등반을 배우는 L형님.  설악산 밑에 살아서인지 등산은 훨훨 난다>,<나처럼 멋모르고 들어와서 고생하는 S. 강심장이라 실력이 빠르게 는다>, <등반 장비점 따라다니면서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는 A, 내성적이지만 안면을 트자 입도 트인다>, <훤칠한 키와 몸매가 클라이밍에 딱 맞아 보이는 O, 우리 팀 에이스다> 4명의 팀원을 만났다. 

"그런데 말이야 이 쉐이를 죽여 살려?" 나에게 이곳을 소개한 Y. 준비할 건 없고 그냥 가기만 하면 다 된다고 했던 Y. 그 쉐이 때문에 이 고생이다. 키 180이 넘고 100킬로에 육박하는 거구. 강사님들은 다 아는 한등 88기 학생장 출신 예병x이다.

오늘 같이 점심을 먹었다."근데 형님 클라이밍 계속하려면 로프도 사야 하는데. 1인 1로프거든요" 그 쉐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뭐? 뭐라고? 뭘 또 사라고? 이 번에 이사 가는 집은 베란다도 없단 말이야. 집이 작아서 지금 짐들도 내다 버려야 할 판인데. 구린내 나는 로프를 어디다 놔두라고? 또 아내에겐 뭐라면서 뭘사?"

'으음, 가만, 가만있어 보오자... 허락보단 용서가 쉽다지? 일단 질러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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